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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북핵 문제 풀 경제해법, 엑손 프로젝트
[커버 스토리]북핵 문제 풀 경제해법, 엑손 프로젝트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3.03.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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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최종적으로 거부한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핵사찰을 요구하는 한편, 경제제재를 결의한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핵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잇따라 미사일을 시험발사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 재처리 시설이 있는 곳으로 의심되는 영변에 국지전을 감행한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북핵 사태 관련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성하면 대충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북미 두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운전대 방향을 돌리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드문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4일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불거진 북핵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우선 1월10일 북한의 NPT 탈퇴에 이어 최근 들어서도 아슬아슬한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예컨대 북한은 2월24일 신형으로 보이는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해 주변국들에 무력시위를 벌였다.
지난 3월2일에는 미국의 정찰기에 대해 미그기를 긴급 발진시켜 추적하도록 했다.
미국도 여기에 질세라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 대비 등을 이유로 항모 칼빈슨을 한반도 해역으로 파견하고 24대의 B-52 폭격기를 괌에 배치하도록 했다.
3월4일부터는 북한이 또 다른 팀스피리트 군사연습이라고 비난하는 독수리연습과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을 잇따라 전개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 북한과 미국


이런 북미간의 정치적 대립은 남한 경제에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지난 2월 중순 ‘북핵 위험성’을 꼬투리 삼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나 내렸다.
무디스의 발표로 국내 증시는 며칠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라크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북핵 관련 위기가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감도 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명확한 징후는 없지만 최근 증권사 보고서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하는 빈도 수가 많아지고 있다.
북핵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풀 수 있는 경제적 해법은 없는 것일까.

사실 북한과 미국의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먼저 북한은 미국에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보장해달라는 주장인 셈이다.
미국도 북한에 핵문제 투명성,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의 폐기, 전방 배치된 재래식 무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을 발가벗어라”, 즉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다.


김정일 체제 보장(북한)과 정권교체(미국)라는, 양립할 수 없는 양쪽의 요구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핵 사태는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1994년 제네바 협정 체결 당시보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현재 핵재처리 시설에 대해서만 동결을 요구했다.
게다가 지금 미국의 행정부가 대북 문제에 강경한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갈등의 골도 깊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커녕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양쪽 모두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다.
우선 북한도 부시 행정부가 불가침조약을 맺어줄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의회의 입법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일인데다, ‘악의 축’으로 지목해왔던 북한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요구하는 ‘무장해제’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의미한다.
북한이 가장 완강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단 북핵 사태 돌파구는 정치적 해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나 ‘NPT 복귀’를 선언하든지, 미국이 “국지전을 포함해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확답을 해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연구교수는 “일단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 한쪽이 먼저 반의 반발짝이라도 물러나야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체제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현재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적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라는 분위기 조성용 카드가 필요하다.
아울러 북미가 일단 테이블에 앉게 되면 정치·군사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들이 패키지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르게 된다.
경제 프로그램, 정확하게 얘기하면 북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대가로 지원할 경제지원책들이 조만간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94년 제네바 협정 당시의 경수로 지원도 이러한 경제지원책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경제적 해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경제지원책은 북한이 흑연감속로 핵시설을 가동하는 경제적 명분을 상쇄시킬 수 있다.
북한은 경수로 건설의 지연으로 발생한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이수훈 교수도 “실제 북한 핵문제는 안보 관심과 함께 경제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경제 지원,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에너지 지원이 북핵 문제를 푸는 핵심고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경제적 지원으로 정치적 결단 유도


일단 경제해법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최근 ‘북한판 마셜 플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북한판 마셜 플랜이란 한마디로 ‘북한 현대화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정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시설과 에너지, 농업 등을 모두 지원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선 마셜 플랜이라는 용어만 있을 뿐이지 실체는 없다.
용어 자체도 몇년 전부터 재탕 삼탕으로 나온 것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연구교수는 “제네바 협정은 10년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지금 핵 해결 프로젝트도 최소한 그만큼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핵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는 10년 뒤에나 마셜 플랜이 가능한 얘기라는 뜻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도 “아직은 현실성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마셜 플랜이 얘기꾼들의 말장난 정도라면 사할린 가스운송관 사업은 좀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할린 가스운송관 사업이란 사할린 가스전에서 극동러시아를 거쳐 북한을 관통한 뒤 남한과 일본까지 가스관을 잇는 사업 구상을 말한다.
남한까지는 대략 2400km에 이른다.
현재 사할린 가스전은 7공구까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1공구는 미국의 엑손모빌이 30%의 지분을 갖고 있어 ‘엑손 프로젝트’로 불리기도 한다.


사할린 가스운송관 사업은 ‘카드’로서 몇가지 효용성이 있다.
우선 북한은 가스를 활용한 화력발전소를 지어 당장의 에너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가스관 통관에 대한 대가로 현금을 받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일석삼조인 셈이다.
아울러 남한, 북한, 미국 모두 핵개발 의혹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제 북한이 지금은 경수로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분석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은 송배전망이 낡아 전력 손실률이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훈 교수는 “경수로를 통해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배전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20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추정한다.
경수로를 짓는 비용이 46억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게다가 제네바 합의 틀에는 여기에 대한 분담 주체가 없어 북한으로선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에 비해 화력발전소를 소규모로 여러개 지으면 송배전 손실률이 줄어들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두번째로 남한 입장에서도 두마리 토끼를 잡는 사업이다.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도 전력지원 사업이나 다른 에너지 지원 사업을 펼치면 북한에 일방적으로 지원한다는 반대여론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스운송관 사업은 국내 여론 부담이 없다.
이수훈 교수는 “남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 문제 해소와 중동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에너지 조달체제의 다변화라는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세번째로 가스운송관 사업은 북한과 남한은 물론, 주변국들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우선 러시아는 개발 허용 대가로 판매하는 가스의 30%를 현물로 받으므로 개발하면 할수록 좋다.
중국도 석유수출국에서 석유수입국으로 바뀌어 가스 의존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일본도 역시 아킬레스건인 부존자원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미국 자본인 엑손모빌,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사인 셸 등 유럽 자본까지 참여하고 있다.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양문수 교수는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해법인 동시에 미국 기업까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비용 분담·북측 수용 여부가 관건


마지막으로 가스운송관 사업은 건설비가 27억달러로 경수로보다 적게 드는 편이다.
공사기간도 경수로보다 짧다.
사할린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는 이미 운송관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극동러시아에서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만 건설하면 된다.
그 다*용어설명: 치킨게임(Game of chicken) 60, 7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누가 더 남자다운가를 겨루던 게임이다.
주말 밤시간이나 교통량이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두명이 각자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한다.
이때 젊은이들의 선택은 충돌 직전에 운전대를 꺾어 생명은 구하는 대신 동료들로부터 ‘chicken’(겁쟁이)이라고 놀림을 받든지, 충돌해서 ‘chicken’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대신에 장렬하게 개죽음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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