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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생존경쟁에 내몰린 지방대학을 가다
[현장 리포트] 생존경쟁에 내몰린 지방대학을 가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3.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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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수입하는 시대 오려나 경기 남부에 있는 여주대학을 찾은 3월4일, 꽃샘 추위로 기온이 영하권으로 급강하한 캠퍼스에는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불었다.
통학버스가 꼬리를 물고 들어서 학생들을 한무리씩 풀어놓고 가자 교정은 금세 왁자지껄한 활기로 가득 찼다.
오후에 열린다는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온 새내기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인테리어디자인과 신입생 안병호(20)씨는 “캠퍼스가 생각보다 깨끗하고 깔끔해 마음에 든다”며 “웬만한 4년제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한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눈치다.
조금 ‘깨는’ 질문을 던졌다.
“대학 지원자가 줄고 있다는 거요? 알고 있어요. 영호남에 있는 지방대 중에선 문 닫는 곳도 생길 거라고 봐요. 하지만 서울 근방은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 과는 취업률도 높아요.” 거침없이 답변을 쏟아낸다.
하긴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은 대부분 서울과의 거리에 따라 결정된다.
학생도 교수도 모두 이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그동안 학생 부족 현상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부 영호남 4년제 지방대학에 한정된 문제로 머물러왔다.
하지만 ‘입학정원 역전’ 원년인 올해, 대규모 미달 사태가 마치 봄꽃 소식이 북상하듯이 단숨에 수도권까지 밀고 올라왔다.
여주대학을 포함해 경기남부 7개 전문대학이 신입생을 채우지 못해 3월말까지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
수도권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신호다 ‘먹고사는 문제’ 수도권도 안전지대 아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실무영어과의 한 교수는 캠퍼스를 짓누르고 있는 위기감을 좀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우리 과도 추가모집 중이에요. 지난해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숨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상황을 공개하고 뭔가 자구책을 찾아야죠." 배정된 정원마저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해당학과 교수들이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신입생 확보는 곧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대학들도 몇년 전부터 변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모르겠어요. 그건 이제부터 공급자인 학교가 아니라, 소비자인 학생들이 판단할 몫이겠죠.” 학생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미달 사태가 걱정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대학 가기가 그만큼 쉬워지고, 선택이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다니던 과가 없어지거나, 학교가 문을 닫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여주대학은 전체 25개 학과 중 12개학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학교측에서 밝힌 부족인원만 3월3일 현재 전체 정원의 7% 수준인 200명 정도다.
학교측은 올 입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추가모집이 끝나는 3월말이 돼야 알 수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주간, 야간 모두 추가모집 공고를 낸 전기과의 김태형 학과장은 “올 입시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안 좋다”며 “수도권에 포함돼 있어, 지원율만 좀 떨어질 것으로 봤는데 안이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신입생 추가모집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입시는 1년 장사예요. 이제 수확하는 시기인데 갑자기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죠. 옆집 가서 훔쳐올 수도 없는 일이고요.” 인근 고등학교에 협조 요청을 해 졸업생들에게 연락도 취해보지만 효과는 기대 이하다.
추가모집 자체도 실효성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원서가 아무리 많이 와도 실제 등록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입시철 반짝홍보에서 연중 홍보로 1차 추가모집에서도 10명이 원서를 냈지만 단 2명만 등록의사를 밝혔다.
“다들 더 유리한 곳 공고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원서를 낸 인원도 언제 빠져나갈지 알 수 없죠. 그러다보니 매일매일 통계가 달라져요.” 김태형 학과장은 수도권 이외 대학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고 전한다.
“대외비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학생이 한명도 없는 곳도 이미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정원의 50%도 못 채운 대학이 30~40개는 족히 되고요.” 그는 여주대학이 그래도 사정이 좋은 편이지만, 이 상태로 다시 입시를 치르는 것은 ‘모험’이라고 단언한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학과 교수회의를 소집해놓았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역시 주간, 야간 모두 추가모집을 하고 있는 토목과 양승룡 학과장을 찾아갔다.
마침 토목과 교수 6명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야기는 이공계 기피현상에서부터 이어졌다.
“학교 전체적으로는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고 보지는 않아요. 학생들이 이공계 학과를 기피하는 게 더 문제예요. 쉽고 화려한 것만 ??요즘 세태 탓이겠죠.” “솔직히 아직은 비수도권 대학 같은 위기의식은 못 느껴요. 사정이 어려워진 비수도권 대학들이 수도권에 분교를 내려고 하는 게 걱정이죠. 가뜩이나 대학이 많은데 정부에서 자꾸 허가를 내줘선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임시방편으로 학과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뭔가 첨단 분위기를 내자는 거죠. 예전엔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참 서글픈 현실이에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안 할 수도 없죠.” “학교를 경영하는 측에선 문제겠지만 교육을 위해선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만큼 원론적으로 보면 양질의 교육이 가능해지죠. 학생들 놓치지 않으려면 전보다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테고요.” 대책회의라고는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학생 못 끌어오면 문 닫으라는 경쟁원리를 대학교육에 그대로 적용하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수험번호 추첨해 경품으로 승용차 주고 휴대전화 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학생 빼내가기 경쟁이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아요. 올 입시부터 실업고 입시전환이 처음 적용됐는데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봐요. 4년제 대학이 먼저 실업고를 훑어 학생들을 엄청 빼갔어요. 전 같으면 대부분 전문대로 왔을 학생들이죠.” “내년 입시는 좀 낫지 않을까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돼 재수가 불가능해지니까요. 그런다고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교수들의 열띤 토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토목과 교수들은 올 입시 때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접수창구를 교대로 지키고, 필요할 땐 수시로 전화 회의를 열며 열심히 뛰었다.
교수 1인당 4~5군데 고등학교를 돌며 기동력있게 홍보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이 ?틂?구체적 대책이 있을까. “이번 학기중에는 뭔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어요. 다른 대학의 움직임도 점검해봐야 하구요.” 취재 막바지에 어렵게 만난 대학본부 기획실 조일혁씨는 이번 입시를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전에는 정원을 늘리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나마 확보한 정원을 지키는 게 더 문제예요. 일부 전문대에서는 중국 학생을 끌어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여주대는 특성화로 방향을 잡았다.
전문대는 대부분 4년제 전환을 목표로 해 설립됐지만 지금으로선 실현 가능성이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해 특성화 대학으로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홍보에 대한 관심도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전에는 보통 4년제 대학이 1년에 10억~15억원, 2년제 대학이 2억원 정도를 홍보비로 쓰는 게 보통이었죠. 그것도 입시철에 편중해서요. 지금은 2년제나 4년제나 비슷한 수준이 됐어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연중 홍보다.
입시철에만 하는 반짝 홍보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올 입시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벌써 내년 입시 준비가 시작됐어요. 전 같으면 정원이 책정되고 수능 날짜가 잡히는 8~9월은 돼야 시작하던 일이죠.” 올 미달사태가 가져다준 위기의식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획실을 나오니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신입생환영 행사가 교내 체육관에서 한창이었다.
인기가수 리아와 김장훈이 초대손님으로 왔다.
레이저 광선과 멀티비전까지 동원된 무대는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1, 2층을 가득 메운 신입생들은 색색의 풍선을 흔들며 가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연신 함성을 질러댔다.
모두 아무 걱정 없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귀가 멍했다.
다시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만이 이들의 감성을 사로잡기 위한 대학들의 목숨을 건 생존 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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