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서베이]스탠더드앤드푸어스·무디스·피치, 세계금융 쥐락펴락
[서베이]스탠더드앤드푸어스·무디스·피치, 세계금융 쥐락펴락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3.03.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본시장 파수꾼인가, 신용평가 무한권력인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익히 알려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다.
오늘날 수많은 국가와 기업, 은행들이 이 3대 기관이 판정하는 신용등급 하나하나를 놓고 일희일비할 정도로 이들의 파워는 막강하다.
더욱이 그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영락없이 세계 자본시장의 ‘민간 감독자’로 군림하는 모습이다.
재경부 국제금융과 김이태 서기관은 “전윤철 부총리는 지난해에만 국내외에서 3개사의 평가단을 8번이나 만났고 실무자급의 접촉 횟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라며 우리 정부의 국가 세일즈 노력을 설명했다.
이들 3개사에는 국내 언론사에 배포되는 보도자료까지 거의 매일 보낸다고 한다.



SEC 공인 등에 업고 ‘빅3’ 과두 체제


그럼 세상에는 신용평가기관이 이들 업체뿐일까. ‘빅3’말고도 우리나라와 일본 등 세계 30여개 나라에 약 50개 신용평가기관이 존재하지만, 그 입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공신력과 지명도가 생명인 이 바닥에서 오랜 역사와 경험, 그리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공인을 등에 업은 3대 신용평가기관에 대적할 만한 상대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지난 2월말 미국 SEC가 캐나다계 ‘도미니온 본드 레이팅서비스’에 4번째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 자격을 부여한다고 발표했지만, ‘빅3’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미국 신용평가시장의 역사는 1세기가 족히 넘는다.
반면 유럽은 1970년대 후반에나 신용평가제도를 본격 도입했고, 일본과 우리나라에는 80년대 중반 이후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금융연구원 김동환 연구위원은 “이런 현격한 시간적 차이는 미국에서 직접금융시장이 일찌감치 발전한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은 은행 중심의 경제구조여서 담보나 보증제도는 발달했지만 신용평가제도의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의 신용평가기관은 80년대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가 S&P와 무디스에 하나둘씩 흡수, 합병된다.
그나마 런던과 뉴욕에 각각 본사를 둔 피치가 유럽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로컬 업체가 살아남아 현상유지라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국내에는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정보, 서울신용평가정보 등 4개사가 정부의 지원 아래 시장을 나눠갖고 있다.
이 중 서울신용평가정보는 회사채를 제외하고 기업어음과 자산유동화증권(ABS) 평가만 제한적으로 허가받았다.
일본의 경우, JCR와 R&I 등 2개사가 초창기부터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고 돈의 힘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두드려왔지만, 결과는 시장의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빅3’가 세계시장을 장악하며 급성장한 것은 유럽 신용평가시장이 팽창한 무렵인 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여기에는 75년 미국 NEC가 과도한 경쟁의 부작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NRSRO라는 지정제도를 도입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시장에 튼튼한 진입장벽을 구축하며, 소수 과점회사들의 배를 불려주는 토양이 된 것이다.



△ S&P

S&P의 연혁은 186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회사채와 국가 등급평가를 시작한 것은 1916년부터다.
현재 세계 18개국 24개 지사에서 약 1250명의 애널리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발행되는 채권물량의 50% 이상과 약 90개 나라의 신용등급을 평가한다.
1957년 도입된 S&P500 주가지수는 다우존스지수나 나스닥지수보다도 뉴욕증시의 동향을 넓게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사무소는 2000년에 설립됐지만, 본격적 신용등급 평가가 아닌 홍보, 마케팅 등 업무에 머물러 있다.
채정태 S&P 한국사무소 대표는 “무디스나 피치처럼 국내에 합작회사를 만들 것인지, 도쿄나 홍콩과 같은 지사를 설립할 것인지 검토중”이라고 말해, 머지않아 국내시장을 본격 공략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평가 황인덕 홍보팀장은 “S&P의 국내 진입 시기는 우리 국가등급이 언제 AA로 상승하느냐와 우리 채권시장의 규모확대 정도에 달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 무디스

1900년 설립된 무디스는 S&P보다 앞선 1909년부터 채권신용평가를 시작했다.
무디스의 명성은 1929년 대공황에 크게 힘입었다.
대공황 이전 무디스가 감시등급으로 판정했던 채권은 거의 부도가 난 반면, 투자적격 등급을 내린 기업은 대부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채권물량의 70% 이상을 신용평가할 정도로 높은 권위를 누리고 있다.
16개국에서 지사를, 한국 등 6개국에서 합작사를 각각 운영중이며, 약 800명의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판정은 S&P에 비해 더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이 짜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주춤했지만, 최근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98년 한국신용평가에 지분 10%를 출자했던 무디스는 2001년 말 지분을 크게 늘려 현재 50%+1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신평의 경영권은 한국쪽에 남아 있지만, 내년부터는 무디스가 공동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또 2005년에 무디스가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받으면서, 신용평가 기준도 무디스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한신평 이연재 기획팀장은 “2005년부터는 한신평이 무디스의 현지법인 성격으로 바뀔 것”이라며, “무디스가 직접 평가를 하면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이 뚝 떨어지는 등 일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 피치

1913년 설립된 피치는 1922년 AAA등급부터 D등급에 이르는 현행 등급부호를 처음 도입했다.
피치는 이 부호 사용권을 1960년 S&P에 판매함으로써, 양사의 등급부호는 지금까지 거의 동일하다.
피치는 97년 금융기관 평가에 강한 IBCA를 합병했고, 2000년 각각 세계 4위와 5위 업체이던 DCR, 톰슨뱅크워치를 차례로 합병했다.
이런 4사 합병을 거치면서 S&P나 무디스에 비해 절대 열세였던 피치는 단숨에 ‘빅3’로 부상하게 된다.


피치는 2000년 초 한국기업평가 지분의 7.42%를 확보하며 국내에 발을 디뎠지만, 제휴 정도는 무디스에 미치지 못한다.
한기평 임형섭 평가기획팀장은 “피치는 현재의 출자지분으로 만족하는 듯하다”며 “현재 피치의 아시아지역 헤드가 한기평 사외이사를 맡고 있지만, 그나마 곧 한국인으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양자의 관계를 설명했다.
피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가장 먼저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지금도 2개사보다 한단계 높은 A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 최근 독일 정부는 ‘S&P가 독일 최대 철강회사인 티센크룹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떨어뜨린 것은 명백히 편파적인 조처’라고 반발하며, S&P와 무디스에 맞설 강력한 유럽 신용평가기관 설립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한·중·일 3국과 아세안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권의 이익을 대변할 신용평가기관 설립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2월27일 보도했다.
이 논의는 일본 R&I가 주도한 아시아신용평가기관협의회(ACRA)를 중심으로 지난해 여름 처음 시작됐다.


이런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빅3’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일개 민간업체에 불과한 이들의 영향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일종의 ‘음모론’이 유포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월스트리트 음모론’은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가 S&P와 무디스를 앞세워 저평가받은 외국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앵글로색슨 룰’과 ‘아메리칸 스탠더드 룰’ 등도 떠돌고 있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국가는 대부분 미국에 우호적인 소수 앵글로색슨 국가들이라는 지적이다.



영향력 커지면서 각종 음모론도 횡행


독일의 반발도 ‘독일이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3대 회사에 대한 일본의 도전은 눈물겹다.
일본 대장성은 1998년 무디스 등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들을 직접 ‘역평가’하겠노라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4월 S&P는 보란 듯이 26년만에 일본의 국가등급을 낮췄고, 잇따라 무디스는 5월 국가등급을 두 단계나 떨어뜨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 6월 이종구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무디스와 S&P가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평가사업을 확대하려는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 경제를 자꾸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김이태 서기관은 “어차피 완벽한 평가방식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들만의 평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라며, “신용평가 분야는 소수 엘리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2001~2002년 중 국가등급이 하락한 나라가 상승한 나라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1997년 12월 투기등급인 B등급으로 무려 10단계나 급락한 지 겨우 4년여만에 3사 모두로부터 A등급을 회복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나라가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의 등급상승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1998년 서울을 방문한 존 번 전 무디스 회장은 “우리는 오로지 투자자의 안전을 위해 일할 뿐이며, 국가신용등급의 하향조정으로 그 나라가 망해도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냉엄한 정글의 법칙이 횡행할수록, 정부는 우리의 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