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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SK그룹, 주인 없는 배 되나
[진단]SK그룹, 주인 없는 배 되나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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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 경영권 채권단 일단 인정… SK글로벌·SK(주) 향배 따라 좌우될 듯 SK그룹의 소유구조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SK주식과 워커힐주식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배임혐의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될 때만 해도 파문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부당내부거래를 한 SK글로벌이라는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을 때만 해도 시장은 맹장수술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일까. 검찰 수사로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암이 퍼져 곤란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검찰조사 결과 SK글로벌은 1조5천억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출을 부풀리고 매입을 줄여 의도적으로 당기순이익을 높여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는 이번 사건이 ‘제2의 대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글로벌의 분식회계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과정에서 자칫 재계 3위인 SK그룹이 ‘주인 없는 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SK(주)는 SK글로벌과 함께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주)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난해 자신이 갖고 있던 워커힐 지분 325만6천주를 SK C&C에 넘겼다.
대신 SK C&C가 갖고 있던 SK(주) 주식 646만3911주를 인수했다.
SK(주)만 장악하면 SK그룹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의 SK글로벌에 대한 분식회계 결과 발표 이후 SK그룹은 여론을 의식해 이 같은 주식맞교환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때문에 최 회장의 SK(주)에 대한 지분율은 5.2%에서 0.11%로 낮아져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은 SK글로벌의 분식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모든 회사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았다.
최 회장이 담보로 제공한 주식은 1200억원가량에 이른다.
어찌됐든 사실상 채권단에 백기를 든 셈이다.
SK글로벌, 최악의 경우 청산할 수도 이런 상태에서 SK그룹에 대한 최 회장의 경영권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일단 채권단은 최 회장이 나름대로 성의를 보임에 따라 SK의 경영권은 당분간 유지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SK그룹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도 “우리는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고 SK글로벌 채권회수만을 신경쓰고 있다”고 말한다.
최 회장의 경영권은 인정하겠다는 뜻인 셈이다.
따라서 현재 채권단의 자세에 비춰볼 때 아직까지는 최 회장이 경영권을 잃는 사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아울러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이 적용되면 SK글로벌이 정상화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현실적으로’ 최 회장이 다시 경영권을 쥘 수밖에 없게 된다.
SK글로벌도 1차 자구안을 내놓으며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SK글로벌의 정상화 여부가 최 회장의 경영권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SK글로벌은 1조5천억원의 유동성자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주유소 사업권 매각, SK텔레콤 지분 매각, 전용회선과 단말기 유통사업 부문 매각 등으로 SK글로벌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SK글로벌이 그동안 경영을 못한 것도 아니고 흑자를 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한다.
대우처럼 사태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인 셈이다.
하지만 SK그룹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자신하기에는 이르다.
한화증권 이창호 책임연구원은 “SK글로벌이 자구안을 진행시키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SK글로벌 자구안의 뼈대는 SK글로벌이 갖고 있던 계열사의 보유자산을 해당사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SK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독립경영 성격이 강한 상태다.
따라서 각 계열사 주주들이 SK글로벌 자산을 매수하는 것에 동의할지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자산실사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여기에 SK글로벌의 신용도 하락으로 옛날처럼 차입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있다.
이에 따라 SK글로벌이 현대종합상사처럼 자산을 모두 팔아버리고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경영권에 문제가 없지만 채무상환이 한꺼번에 몰리면 의외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구안에 포함된 자산매각이 모두 실행되면 부실회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른바 돈되는 사업을 모두 매각하면 남는 것은 껍데기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악의 경우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은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SK(주) 적대적 M&A 가능성 배제 못해 실제 애널리스트들은 최 회장의 경영권 이야기가 나오면 “SK글로벌이 너무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애널리스트들은 SK글로벌의 구조조정안이 치밀한 계산없이 “은행이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다”는 식이라고 얘기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채권단이 현재 SK글로벌사태의 진행에 따라 강수를 둘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 채권단이 자구안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SK글로벌을 청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최 회장의 경영권 유지는 물 건너가는 것이 된다.
한편 SK그룹의 경영권이 의외로 외국인에게 넘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한편에서는 SK그룹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틈타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워커힐주식과 SK(주)의 주식맞교환이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최 회장의 SK(주)에 대한 지분율이 0.11%로 낮아진 점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노릴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SK(주)에 대한 외국인 지분은 32.18%에 이른다.
이들 외국인 지분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만일 자금력을 갖춘 외국계 기업이 SK(주)에 적대적인 M&A를 시도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과 관련해 아직까지 표면에 드러난 것은 많지 않다.
단지 SK그룹 관계자가 “SK그룹이 완전한 지주회사 형태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정도다.
하지만 부채비율 및 지분비율 조정 등 이것 저것 여러 가지 조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인다.
SK글로벌이 1차 자구안을 내놓았을 때 채권단 내부에서 “자구 계획안에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수라고 볼 수 있다.
어찌됐든 열쇠는 채권단이 쥐고 있다.
그리고 채권단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SK글로벌의 추가적인 자구안뿐이다.
여기에 최 회장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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