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BS워버그 한국시장 전략담당 이승훈 상무는 거래소 상장 주식의 35%가 넘는 외국인 지분율을 눈여겨본다.
“언론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고 쓰고 있지만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해부터 큰 변화가 없었어요. 이젠 지분율이 높아져서 97년처럼 쉽게 ‘셀 코리아’를 할 순 없을 겁니다.
” 외국인 투자자의 매매패턴을 알려면 먼저 그들이 누군가부터 알아야 한다.
이 상무는 외국인 투자자를 크게 두 집단으로 구분한다.
한국 주식에 투자할 필요가 있는 집단과 한국 주식에 투자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집단.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중 극동아시아펀드, 이머징마켓 인덱스펀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펀드(Asia ex-Japan) 투자자들은 한국 투자를 피할 수 없다.
반면 글로벌 펀드와 헤지펀드는 선별적으로 한국 주식을 편입한다.
‘바이 코리아’ 열풍을 일으키는 외국인은 이들 중 후자, 즉 글로벌 펀드들이다.
헤지펀드는 최근 우리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으므로 논외로 친다 해도 글로벌 펀드는 통상적으로 전체 규모가 이머징마켓 펀드의 10~30배, 즉 10억~30억달러에 이른다.
이 중 3%만 움직여도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은 유동성에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글로벌 펀드들은 한국 주식이 한창 매력적이던 2001년 여름, 삼성전자를 평균적으로 2~3%까지 편입한 바 있다.
그뒤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하자 해당 펀드의 삼성전자 비중은 7%까지 올라갔고,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주식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투자기준상 해당 펀드들은 삼성전자를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국 주가 조정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세계 주식시장이 급랭하면서 펀드 환매 압력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주식도 더 사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꾸준히 한국 주식을 다뤄온 아시아펀드들은 종합주가지수 600~650 사이에서 대량의 한국 주식을 매입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주식을 관찰했던 이들로선 이 정도면 저평가 매력이 상당히 높은 구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 주식은 97년 외환 위기도, 2002년 세계경제 침체의 덫도 잘 헤쳐나온 전력이 있지 않은가. 이 상무는 5~8월께 한국 증시에 상승 랠리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다고 ‘셀 코리아는 없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이 상무는 강조한다.
대세가 바뀔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10%만 내던져도 한국 주가는 급락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주의깊게 바라보는 것은 북한 핵위기 처리 속도와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3월말,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펀드 운용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 상무는 의외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고 있더라고 전한다.
이들은 그보다는 출범 초기의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할지를 궁금해했다.
또 집단소송제 등 증권관련법 개정 소식은 반겼으나 그 자체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국 시장이 국제적 투명성을 갖췄다고 믿고 있던 외국인 투자자한테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 대만 등 아시아 다른 나라의 회계 관행과 비춰보면 한국 기업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점은 아시아펀드 운용자들도 부인하지 못한다.
아시아 다른 기업들도 장부를 펴놓고 대조해보면 실제 매출과 장부상 매출이 다른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 상무는 아시아펀드 운용자들이 한국 주식에 상당히 높은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펀드 운용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한국 주식을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와중에서도 한국을 잘 아는 일부 글로벌 펀드 운용자들은 한국 주식을 내던지지 않았다.
그러면 한국 주가가 세계 증시에 크게 흔들리면서 매번 종합주가지수 1000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 상무는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의 연기금 운용자를 만나 물었다.
“왜 한국의 연기금이 한국 주식을 안 사는 거요?” “주식 투자는 위험하잖아요.” 외국인 투자자의 일갈. “당신들이 안 사니까 한국 주식이 위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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