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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전력 민영화, 도로아미타불?
[포커스] 전력 민영화, 도로아미타불?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3.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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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남동발전 매각 대안 물색…정책 불확실성 등 회의론도 고개


새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일정이 처음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첫 매물로 나왔지만 포스코와 SK(주) 등 경쟁 4개사가 일제히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매각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랫동안 공들여온 전력산업 민영화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직상장과 민영화 펀드 등 대안을 물색하고 있다.
이른바 ‘선상장 후매각’ 방식이다.
이로써 정부의 민영화 작업은 기약없이 물 건너가고 말았다.

정부는 우선 남동발전의 지분 10~20%(장부가격 1500억~3천억원)를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다.
산업자원부 최민구 경쟁기획과장은 “10~20%를 상장하면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지분이 줄어들어 향후 매각이 쉬워질 것”이라며 “증시에 물량 부담을 주지 않고 공모가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적정선”이라고 말했다.
이번주에 주간사 선정 공고를 거쳐, 올해 말까지 상장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남동공단 등 5개 화력발전회사 주식의 10%가량으로 ‘발전회사 민영화펀드’를 조성, 운용하는 방안을 5월 중 처음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의 경우는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특히 전력업종에서 펀드, 모기지론 등에 장기투자하는 모델이 널리 퍼져 있다.
펀드로 조성될 5개사 지분 10%의 장부가는 약 9500억원이다.

정부는 민영화 펀드와 관련, 두가지 방식을 놓고 저울질중이다.
하나는 공모를 통해 뮤추얼 펀드를 만든 뒤, 증시에 상장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연기금을 비롯한 소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모펀드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최민구 과장은 “여유자금이 비교적 많은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이 주요 모집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동발전 매각이 좌절된 일차적 이유는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졌고, 포스코와 SK 등에 내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정부의 민영화 의지와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부랴부랴 민영화 펀드 안을 내놓은 것도, 정부의 매각 의지가 변함없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산자부 관계자도 “국내 전력시장이 이제 형성단계여서, 시장에 굳건한 신뢰를 주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시인한다.

DJ 정부를 거치며 대세로 굳어졌던 공기업 민영화 일정은 올해 초 인수위에 민영화 신중론자 내지 회의론자가 대거 참여하면서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이때 가스산업 민영화 계획이 백지화되기도 했다.
그나마 전력산업의 경우 발전부문 5개사를 모두 매각하고, 2004년 4월부터 배전부문을 6개사로 분할, 매각하기로 정한 바 있다.

대표적 신중론자로 인수위에서 민영화 논의를 이끌었던 김대환 인하대 교수는 4일 “민영화도 공기업 개혁의 유력한 방안”이라고 전제하고, 남동발전 매각 지연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그러나 “독점 공기업, 특히 망산업과 같은 유틸리티 분야는 소유권을 넘기는 데 급급하지 말고 경제력 집중 여부, 노사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특유의 신중론을 폈다.
그는 배전부문 분할매각 여부도 앞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전력은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발전 자회사간 경쟁입찰 방식을 유도하기 위해 전력거래소를 만드는 등, 민영화 전제작업에 1천억원이 넘는 비용을 이미 쏟아부은 상태다.
하지만 3월30일 골드만삭스증권은 “지금 경제상황과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볼 때, 한전의 남동발전 매각 능력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은 제쳐놓고라도, 정부가 민영화를 둘러싸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사회적 비용과 혼선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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