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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시승마케팅-취객도 미래 고객이라구요?
[현장리포트] 시승마케팅-취객도 미래 고객이라구요?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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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오전 8시 한겨레신문사 앞. GM대우 ‘라세티’ 한대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대우자동차판매에서 전국에 2천여대를 운행하고 있는 ‘택시형 시승마케팅’ 행사차량이다.
이 회사 홍보실에 연락해 동행취재하겠다고 하자, 대환영하면서 직접 ‘모시러’ 온 것이다.
취재시작이 이렇게 순탄한 건 행운이다.


도착해 있는 ‘라세티’에 올라타자 대우자판 직원이 반색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저희 시승차에 탑승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즐겁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취재에 동행할 여의도지점의 베스트영업맨 신동호(30) 대리가 건네는 첫마디에 승객으로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는 곧바로 기자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며 정중하고도 간곡하게 얘길 잇는다.
자신의 시승차에 적힌 휴대전화번호(011-9893-4491)를 기사에 꼭 실어달라는 것이다.
휴대전화번호를 알리는 것이 시승마케팅의 생명이라는 얘기다.


궁금증이 생겼다.
휴대전화번호가 시승마케팅과 무슨 관계지? 설명인즉 이렇다.
시승마케팅에 운행되는 차량은 영업맨들 소유이고 이들은 시승 행사를 영업활동과 겸하고 있다.
시승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영업맨들의 수첩에 ‘미래 고객’으로 등록된다.
결국 기자도 차에 타는 순간부터 신 대리의 ‘미래 고객’ 명단에 오른 셈이다.
그러니 미래고객과 영업맨을 잇는 전화번호는 생명줄이 된다.



24시간 대기중…언제 어디든 달려간다

시승차가 마포를 지나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지날 때쯤이다.
갑자기 찻길로 나와 손을 흔들며 시승차를 세우는 여성이 있었다.
신 대리는 첫 손님이라며 신이 나서 차를 세운다.
택시를 탔을 때 합승하는 기분이 든다.
신 대리는 처음 시승했을 때 기자에게 건넸던 인사말을 이 손님에게도 똑같이 건넨다.
주부라고 밝힌 손님 김승희(32)씨는 “아닙니다.
제가 감사하죠. 급한 일이 있는데 택시도 안 잡히고…”라며 고마워했다.
이어 신 대리가 기념품과 시승소감서를 건넨다.
영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취재중임을 밝히고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떻게 시승차인지 알고 세우게 됐어요?” “TV광고에서 보고 알았죠. 막상 이렇게 탑승해보니 참 좋네요.” 김씨는 답례로 시승차를 부녀회에 알려서 함께 타보겠다고 했다.
신 대리는 마냥 즐겁다는 눈치다.
김씨에게 차에 대한 느낌을 물어봤다.
“겉보기엔 작아 보이는데 타보니 넓고 안락하군요.”

목적지인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다.
신 대리가 다시 말을 건넨다.
“일을 마치고 나오시면 다시 출발지로 모셔드리겠습니다.
” 김승희씨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기자도 조금은 놀랐다.
신 대리는 “부담 가질 필요 없으니 편하게 생각하라”며 기다리겠다고 재차 권유했다.
기다리는 동안 신 대리에게 “과잉친절이 아니냐”며 슬쩍 떠보았다.
신 대리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고객이 100% 만족할 때까지 모시는 게 시승마케팅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시승마케팅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자동차업계 최고의 홍보전략으로 평가받아왔다.
예컨대 르노삼성자동차는 대대적으로 ‘SM5’ 시승마케팅을 해 덕을 톡톡히 봤다.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2월부터 5개월간 ‘SM5 시승마케팅’을 진행했다.
시승테스트에 참가한 사람은 1만여명. 이들 중 테스트 직후 곧바로 구매결정을 내린 고객이 7천여명에 이른다.
이 덕분에 SM5는 베스트셀링카 ‘뉴EF쏘나타’를 추월했던 유일한 모델로 꼽히며 지금도 명성이 자자하다.
이 다음부터 시승마케팅은 신차가 발표될 때마다 으레 동반되는 필수 행사가 됐다.


김씨를 태워주고 이번에는 여의도 증권가로 향했다.
신 대리가 일하는 여의도지점에서 점심 때면 꼭 실시하는 시승마케팅 홍보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한기남 여의도지점장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히려 “한달 정도 시승마케팅을 전개하면서 여의도지점의 판매실적이 30%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신이 난다”며 더욱 의욕을 보이는 눈치였다.


한참을 홍보활동에 몰두하던 신 대리가 급히 시승차에 올라탔다.
허겁지겁 뒤따라가 사연을 물어봤다.
휴대전화로 시승차를 타보겠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시승차에 적혀 있는 연락처를 보고 연락한 손님이 고마 워 급히 달려간다는 것이다.
급히 차를 몰아 국회앞 민주당사 앞에 도착했다.
잠시 후 회사원 정원영(32)씨가 탔다.
시승차를 부른 이유를 물었다.
“마침 차를 교체하려고 했는데 직장 동료에게 시승차 얘기를 들고 시승 후에 마음에 들면 라세티로 결정하려고요.” GM대우가 아닌 다른 업체의 차량으로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시승마케팅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얘기다.
여의도 지하차도를 지나 대방역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정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며 곧바로 구입 의사를 밝혔다.
시승마케팅을 통해 또 한건의 실적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신 대리가 행사과정에서 있었던 재미난 사연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식목일이었던 지난 4월5일에는 아침부터 시승차를 타겠다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어머니 산소에 성묘가려던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시승마케팅 소식을 듣고 휴일시간을 활용해 타보겠다고 연락한 고객이었다.
신 대리는 망설임없이 약속시간을 잡고 세차까지 마친 후 고객에게 시승차를 선보였다고 한다.



“영업 활동 겸해 고객 확보 쉬워져”

대방역에서 차를 돌려 여의도 LG빌딩에 도착했다.
신 대리는 이번에는 시승차를 세워놓고 건물로 올라갔다.
지난번 시승 행사 때 알게 된 고객과 오늘 드디어 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다.
“시승마케팅이 없을 때는 무조건 찾아가야 했지만, 행사 이후 거리에서 고객을 만들 수가 있어 영업하기 더 쉬워요.” 23층 로비에서 만난 윤수영(28)씨는 신 대리의 설득과 친절에 결국 차를 사기로 결정했다.
그는 “색다른 시승마케팅 때문에 전에 차를 구입할 때보다 계약을 쉽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역시 시승마케팅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진촬영을 위해 사진기자와 미리 약속한 63빌딩쪽으로 향했다.
신 대리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객을 100%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영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믿음이 갔다.
그는 저녁 퇴근길에는 ‘미래 고객’이 너무 많다며 웃는다.
밤이 되면 술취한 고객들이 시승차를 알아보고 손을 드는 경우가 많다.
취객들에게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신 대리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단다.
“이번 행사가 ‘택시형 시승마케팅’ 아닙니까. 고객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대기하다 달려갑니다.


이렇듯 대우차판매의 ‘라세티’ 시승마케팅은 불황에 빠진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큰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쟁사들도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르노삼성의 ‘SM3’ 시승 행사에는 4만여명의 고객이 참여했다.
현대차도 개량형 경유엔진인 VGT를 탑재한 신형 싼타페와 트라제XG를 앞세워 지금까지 1만8천여명의 고객을 시승시켰다.


상황을 종합하면 시승마케팅이 판매실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시승마케팅이 업체들의 일시적인 판매대수 늘리기 작전이 아니느냐는 지적도 간간이 들린다.
시승마케팅이 업체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와 업체가 윈윈하는 방법인가. 이는 업체와 영업맨들의 서비스 정신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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