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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불황기 약아지는 경품 마케팅
[비즈니스] 불황기 약아지는 경품 마케팅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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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가 경품 앞세워 고객 이목집중…이업종간 제휴 통한 윈윈전략 눈길

“자자~, 공정한 경품추첨을 위해 고객이 직접 뽑도록 하겠습니다.

4월15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시계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키자 쇼핑중이던 고객들이 삼삼오오 베르테르거리로 몰려온다.
쇼핑객들만 눈에 띄는 건 아니다.
백화점 고위간부들은 물론이고 인근 역전파출소에서 나온 경찰도 한명 보인다.
추첨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특별히 백화점쪽이 경찰 입회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곧이어 눈가리개를 한 고객 한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응모권 중에서 한장을 뽑아든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뒤늦게 뛰어온 몇몇 주부들은 벌써 추첨이 끝났느냐며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초고가 경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시가 8300만원짜리 호텔식 오피스텔(12평형)은 이런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에서 20대 후반의 한 여성에게 돌아갔다.


지난 4월1~13일까지 열린 세일기간동안 롯데 영등포점은 일체의 다른 경품행사를 마련하지 않고 오피스텔 경품에만 집중했다.
자잘한 행사들은 일체 뒤로 미루고 고가의 부동산 경품으로 고객들을 사로잡기로 한 것이다.
영등포점에 따르면 응모권을 써낸 사람만 대략 3만명 이상에 이른다.
롯데백화점 신재호 판촉팀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영등포점을 찾은 고객 수가 평소보다 10% 정도 늘었다”고 전한다.
주요 백화점이 올 봄 정기세일기간 중 IMF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전년대비 2~3%나 줄어든 것에 비춰보면 꽤 재미를 본 셈이다.



3억원대 아파트로 신규회원 유치

유통업체들만 경품행사에 매달리는 건 아니다.
불황기 경품행사는 기업들에게 반짝 효과를 가져다주는 영양제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신제품 출시가 잦은 제과업체, 신규회원을 끊임없이 유치해야 하는 카드나 증권사 등도 경품과 관련해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롯데제과는 최근 새로나온 빙과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폴크스바겐의 뉴비틀 자동차를 내걸었다.
또한 굿모닝신한증권은 고객유치 차원에서 계좌개설 여부와 관계없이 지점 방문 고객들에게 명품가전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경품 마케팅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롯데그룹은 단일품목으로는 최고가의 경품을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그룹 내 백화점, 호텔 등 계열사 정보가 망라된 포털사이트 ‘롯데타운’ www.lottetown.com을 오픈하면서 48평형 아파트를 경품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아파트의 시가는 2억8천~3억3천만원. 22일간 이벤트를 벌인 롯데타운은 150만명의 신규회원을 모집하는 성과를 올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98년 모두 3억원어치에 해당하는 아토스 63대를 경품으로 제공해 당시 30% 정도 내점고객을 늘리는 효과를 봤다.


나름대로 기업들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경품행사는 확실히 늘고 있다.
경품정보 사이트 찬스잇 www.chanceit.co.kr에 따르면 경품 이벤트의 신규 발생건수는 98년 하루 평균 11건에서 2002년에는 37건으로 늘어났다.
찬스잇 김억 기획팀장은 “전체 경품시장의 규모를 보면 2002년에 약 500억~6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각종 쇼핑몰 이벤트까지 합하면 실제로는 1천억원대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지난 99년 경품 관련 정부규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경품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신세계백화점 정병권 판촉팀장은 “지난 3~4년 동안 새로 문을 여는 점포가 크게 늘면서 경품행사는 주요한 판촉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았다”며 지금은 경품을 내걸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사실 기업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경품행사를 벌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른바 ‘경품 마케팅’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유통업계에선 흔히들 점포가 문을 열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신세계 유통연수원 안에 있는 상업사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경품의 역사는 일제점령기였던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화신백화점은 1원어치 이상 물건을 산 고객들을 대상으로 황소 1마리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이후 경품의 종류도 다양해지기 시작하는데 자동차나 아파트는 물론이고 우주여행권, 성형수술권, 주식계좌까지 시대별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상품들이 경품으로 내걸렸다.


최근 들어서는 계속되는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각 업체들의 경품 마케팅도 실속을 챙기는 쪽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판촉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제휴 마케팅이 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내걸었던 오피스텔 경품도 마찬가지다.
이번 행사는 분양업체 코업쪽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백화점은 경품인 오피스텔을 무료로 제공받았기 때문에 8300만원에 이르는 판촉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분양업체는 전단광고와 이벤트를 통해 홍보효과를 얻었다.
윈윈전략인 셈이다.


코업 마케팅지원팀 박희운 과장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양시장이 극도로 침체를 겪고 있어 고전적 마케팅으로는 타개하기 힘든 상태였다”고 말한다.
세일기간중에 코업은 영등포점 내에서 100세대에 대한 분양을 받은 결과 2주일 만에 70%가 완료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휴 마케팅은 건설업체뿐 아니라 여행사나 공연기획사, 외식업계 등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구매 고객 위주, 경품설계는 까다롭게

경품 선정을 까다롭게 하는 것도 최근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워낙 높아졌고, 똑같은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해 갈수록 치밀하게 경품설계를 하는 것이다.
칼슨마케팅그룹코리아 조택연 기획팀장은 “경품 경쟁도 치열하다 보니 업체들이 경품 선정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말한다.
실제 한 유통업체는 대형 경품이나 ‘소비자경품’으로 불리는 사은품 목록을 정하기 위해 보통 2개월의 시간을 들이는데 말단직원부터 임원까지 20여명이 200개 정도의 후보상품 중에서 최종 5개를 고르게 한다.
철저한 사전품평회를 거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충분한 고객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 들어 가전제품 일색에서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 상품권, 여행상품 등의 경품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철저한 사전조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구매 고객 위주로 경품행사에 참여시키는 흐름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사실 아파트처럼 구매와 상관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공개현상경품’은 관심을 유발시키는 효과가 큰 데 비해 매출로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경품에 당첨될 가능성도 그만큼 희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은품’은 별도의 추첨절차가 있지 않고 구매한 사람에게 모두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백화점들은 연간 6차례 정도 구매고객을 상대로 사은행사를 벌인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한번 사은행사를 할 때마다 10~30% 정도의 매출증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은행사는 100% 자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아니다.
신세계 정병권 팀장은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의 구매빈도와 객단가가 줄어드는 만큼 결국 사은품의 횟수와 단가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20만원과 30만원, 50만원 이상 구매고객들을 차별화해서 사은품을 지급했던 데 비해 요즘은 20만원 이상 구매고객들에게 동일한 사은품을 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똑같은 사은품을 주더라도 고객들은 종전과 변화가 없다고 느끼도록 해야 하는 고도의 전술도 필요하다.
예컨대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를 주더라도 70m짜리를 50m짜리로 주는 식이다.


기업들은 불황이라는 방패를 뚫기 위해 경품이라는 창을 사용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불황 속에서 하나라도 더 실속을 챙기려 안간힘을 쓴다.
경품 마케팅에는 불황기 경제의 만화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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