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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시대 열리나
[포커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시대 열리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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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5월 공개, 삼성SDI 등도 뒤 이을 듯…LG전자·LG화학은 준비작업 진행

회계보고서만으로는 이제 2%가 모자란다? 삼성전자가 5월 중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국내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준비를 거친 보고서 초안이 4월말 이전에 완성될 예정이며 내부검토를 거쳐 5월 중 공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란 기업의 재무성과만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공개하는 종래의 회계보고서와는 달리,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 환경, 인권, 보건안전 등 기업활동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에 따라 계량화해 정례적으로 공개하는 보고서를 말한다.


삼성전자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하기까지는 그룹 최고위층의 의중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준비작업이 극도의 보안 속에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뒤를 이어 삼성SDI와 삼성전기도 보고서 공개작업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여타 국내기업의 움직임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곳은 LG다.
LG전자와 LG화학을 중심으로 보고서 준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성과만을 담고 있는 회계보고서와는 별도로, 기업들이 사회적 성과를 공개하는 일은 1990년대 들어 활기를 띠어왔다.
환경보고서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환경보고서를 공개하는 국내기업들의 수는 대략 30곳을 넘는다.
국제적으로는 기업들이 환경보고서 이외에도 사회보고서, 보건안전보고서 등을 공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 추세는 이처럼 특정영역에 치중된 각종 보고서를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로 통합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재무성과를 단순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쪽에 방점이 찍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재계쪽에선 이런 식의 보고서 도입을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여전히 역력하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당시)는 지난해 9월 열린 사회보고제도 도입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해 “또 하나의 규제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사회보고’제도 도입을 주장해온 좋은기업만들기시민운동의 최정철 박사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는 것은 결코 또 하나의 규제가 아니며, 기업이 사회적 성과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는 일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기업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역사를 거쳐 회계보고제도가 자리잡았듯,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공개도 아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일련의 부정회계 스캔들 등 신뢰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법제화하는 움직임이 현재 활발한 편이다.


여기서 세계 메이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단순히 홍보(PR)수단이 아니라 적극적인 IR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의 중요성이 절대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공개하는 일 자체가 직접금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에 투자하는 길만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회책임투자(SRI)의 문제의식이 세계 금융시장에서 지반을 넓혀가고 있는 현실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IR전략기획팀을 중심으로 보고서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보고서 기준을 확립하는 일이 시급한 편이다.
통일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재량권이 과도하게 넓어질 여지가 큰 탓이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게 바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난 97년 기관투자자, 투자전문가단체 등이 모여 만든 비영리기구 CERES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해 창설된 GRI는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보고서 역시 GRI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보고서제도와 사회책임투자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평가와 검증분야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회계보고서 제도가 신용평가기관과 회계법인으로 이어지는 꼭 짜여진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듯, 이 시스템을 보완하는 산업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 국내에서도 회계보고서 독점시대는 분명 막을 내리고 있다.
좁은 의미의 재무성과에서 시야를 더욱 넓힘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것은 물론, 사회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세계적 추세 속에 삼성전자의 발빠른 행보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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