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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잇단 악재에 꼬여가는 SK
[컴퍼니] 잇단 악재에 꼬여가는 SK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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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어 해운까지 분식회계 의혹…그룹·지주회사 신뢰도 추락 가속화

SK(주)가 SK글로벌 문제로 SK텔레콤의 지배권까지 위협받으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SK해운쪽에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한쪽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도 벅찬 판에 다른 쪽 둑이 계속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SK해운의 결산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SK해운에 ‘한정의견’을 냈다.
삼일회계법인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SK해운은 지난해 미결제 기업어음(CP) 2392억원을 손실로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SK글로벌에 제공한 CP 29장(4800억원어치)도 폐기처분했다.


삼일회계법인은 “SK해운이 CP 29장을 SK글로벌에 제공하고 현재 전량 폐기한 것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른바 ‘감사제한에 따른 한정의견’인 것이다.
만약 SK해운이 상장회사였다면 주식거래가 중단되고 1년 동안 관리대상종목으로 남아야 할 정도로 한정의견은 기업 입장에서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SK해운은 그다지 주목을 받을 만한 회사가 아니다.
일단 상장이나 등록회사도 아니다.
게다가 자산규모도 1조1천억원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
SK그룹 입장에서 봤을 때 구심점 역할을 하는 회사도 아니다.
그런데 특화된 해운회사로 알려져 있던 SK해운의 분식 의혹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던 SK글로벌 사태에 석유를 뿌린 셈이 됐다.
SK(주) 입장에서는 SK글로벌만으로도 벅찬데 SK해운이라는 골칫덩어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SK(주)는 SK해운의 지분을 48.81%나 갖고 있는 대주주다.



글로벌 ‘땜방’하다 SK해운마저 부실

실제 SK해운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분식 의혹을 살 이유가 없다.
현대증권 박대용 연구원도 “SK해운만큼 수익구조가 안정적인 회사도 드물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SK해운의 수익구조가 단순하면서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SK해운의 매출구조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예컨대 SK해운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15% 정도는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 운반료로 지불하는 돈이다.
한국가스공사가 공기업인 점을 고려하면 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셈이다.
전체 매출액의 40%는 SK(주)의 원유 운반료가 차지한다.
이 역시 모기업을 등에 업고 하는 사업이라 안정적이다.


문제는 SK해운의 분식 의혹이 시한폭탄인 SK글로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SK해운은 손실처리한 2392억원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한정의견을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SK글로벌 지원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단정한다.
현대증권 지형석 수석연구원은 “사업구조와 수익구조가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달리 돈이 새어 나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SK해운이 폐기한 CP 29장의 사용처도 SK글로벌에서 비롯한 것이다.
SK글로벌은 98년 실체가 불분명한 특수관계사 (주)아상에 지급보증을 선다.
그러나 (주)아상이 99년 말 망하게 되자 SK해운은 SK글로벌의 지급보증채무를 대신 갚아준다.
이 과정에서 SK해운이 CP 29장을 발행했고, 이것을 폐기한 것이다.
때문에 SK해운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510억원의 흑자를 예상했지만 분식회계 사건 때문에 실제로는 당기순손실 2200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SK그룹은 SK글로벌을 지원할 기업으로 왜 SK해운을 점찍었을까. SK그룹 가운데 ‘변방’으로 평가받는 SK해운이 SK글로벌 사태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SK해운이 비상장회사라는 것을 첫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SK해운과 같은 비상장회사는 상장회사와 비교해 주주들이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애널리스트들도 대개는 비상장회사를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명하지 못한 회계처리에 대해서도 은폐가 쉬운 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SK해운이 현금이 풍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SK해운은 SK(주)의 석유를 운송해주는 고정거래가 매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SK해운 입장에선 SK(주)의 수요만 확보해도 기업을 유지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셈이다.
실제 SK해운은 회사채를 거의 발행하지 않아왔다.
평소에는 굳이 자금을 수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관심영역에서 떨어져 있고, 안정적으로 현금 확보가 가능한 회사라는 점을 이용해 SK그룹은 SK해운을 계열사 지원의 도구로 사용한 셈이다.


어찌됐든 SK그룹이나 SK(주) 입장에서 보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둑을 막아야 하는 꼴이 됐다.
특히 SK해운의 분식회계 사태는 SK(주)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SK(주)가 SK해운의 지분을 47.81%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해운의 장부상 손실분은 SK(주)의 지분법평가 손실로 그대로 반영된다.
결국 SK해운이 손실처리한 금액의 절반인 1422억원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SK해운, 사태 수습책 다각도로 모색

이보다 더 큰 문제는 SK해운 사태가 SK(주)와 SK그룹의 신뢰도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증권 박대용 연구원은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주)의 신뢰도 하락은 SK그룹 전체의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말한다.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수석연구원도 “상황이 악화되면 금융시장에서 SK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채권까지 회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동안 안정된 사업구조 덕분에 속 편하게 지내던 SK해운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단 부채비율을 낮추는 게 급선무다.
부채비율 375%로 비교적 건전한 회사로 평가받던 SK해운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면서 부채비율 1875%의 부실 회사로 전락해버렸다.


SK해운은 일단 보유한 현금을 총동원해 단기 CP를 상환할 계획이다.
당장 SK해운은 보유하고 있는 현금자산 600억원으로 2003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CP들을 상환할 참이다.
일단 4월18일 만기도래 어음은 200억원을 상환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래하는 단기차입금은 금융권에 만기연장을 부탁할 계획이다.


물론 자산매각도 빠질 수 없다.
SK해운은 수도권에 있는 300억원대의 토지를 매각하기 위해 현재 매입자를 물색중이며, 선박 가운데 일부도 매각할 계획을 내놓고 있다.
SK해운 관계자는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도 상반기에 돌아오는 단기 CP 2935억원을 막기에는 무리다.
따라서 SK(주)에 구원의 손길을 뻗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SK해운은 현재 SK(주)에 유상증자를 부탁하고 있다.
유상증자를 통해 1천억~15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수혈받고, 만기연장이 되면 상반기는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단 SK(주)가 유상증자를 거부할 것 같지는 않다.
SK해운이 문을 닫으면 당장 SK(주)의 주력사업인 석유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부실 규모가 손쓰기 힘들 정도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 SK글로벌과는 달리, 비교적 처리가 간단하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SK글로벌 문제로 만신창이가 된 SK(주)의 주주들이 유상증자를 반대한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SK해운은 동아줄을 달라고 조른다.
손벌리는 사람이 너무 많은 SK(주)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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