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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유라시아 프로젝트
[커버] 유라시아 프로젝트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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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북한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눈은 차갑다.
자꾸 이러면 북핵 문제와 남북교류협력 문제를 연계시켜 대응하겠다는 태세다.
북핵과 남북교류를 분리해 진행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선언 무효화를 공언한 만큼 우리도 유연한 대응 카드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해선 안 된다.
” 물론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말을 전제로 깔았다.


미국 매파들은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강경 보수주의자인 척 다운스 전 미국 국방부 아시아정책국 부국장의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펼 때 미국은 어떤 대북 옵션도 가질 수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압박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이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핵 시설에 대한 부분 폭격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정치, 사회, 경제적 압박을 해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에 정치, 사회, 경제적 압박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한반도에 불안감이 이리 고조되었단 말인가? 압박을 가한다면? 한국의 시장참여자들은 등골이 서늘해진다.
무조건적 포용도, 폭력을 불사하는 압박도 아닌 다른 카드는 없을까? 여기 미국의 한 정치인이 새로운 카드를 내놨다.
‘유라시아공동체’ 혹은 ‘6강 공조체제’.

2003년 5월13일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 미국의 한 대통령 후보 캠프는 워싱턴에 와 있는 청와대 김만수 부대변인에게 두장짜리 문건 하나를 전달했다.
제목은 ‘한국의 유라시안 랜드브릿지를 위한 라루시의 6강 계획(Six Power Plan)’. 이 단독입수한 이 문건의 요점은 이러하다.


“라루시는 이미 증명된 단 하나의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다루기’를 제안한다.
먼저 경제적 발전을 가져다줌으로써, 그들의 산업 기반을 현대화시킴으로써. 전쟁은 결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북한에 있는 과학자들과 현대화 추진세력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 먹혀들 수 있는 전략이다.
중국에서 그랬듯 그들은 북한을 변모시킬 수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북한 내 비판자들을 좋아 보이게 만들어 그의 힘을 계속 약화시키지 않는다면, 그를 계속 낭패로 몰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반도 주변국끼리 뭉쳐라

어떻게? 문건은 6강-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두개의 한국-이 한국전쟁 종전조약에 사인하라고 제안한다.
그것이 북한 내 현대화 추진세력을 강화시키고 평양의 매파를 약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매파-딕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어 종전조약 체결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이 있단다.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에 사인하고 ‘철의 실크로드’를 깔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감히 한반도에 선제공격을 가하지 못하리라고 이 문건은 조언한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 매파가 자꾸 방해하면 한반도 주변국끼리 뭉쳐 잘 해보라는 이야기다.

자국을 제쳐놓고라도 한반도 평화부터 이루라는 화끈한 조언을 내놓은 이 정치인은 린든 라루시,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다.
이 문건을 작성해 김만수 부대변인에게 전달한 캐시 울프는 과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지역적 협력의 힘이 없이는 한반도에는 평화도, 경제발전도 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라루시가 편집·발행인으로 있는 시사주간지 의 동북아시아 담당이사다.



-‘6강 계획’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1994년 한반도 위기 때부터 셀리그 해리슨부터 라루시에 이르는 수많은 아시아 전문가들이 6강의 공조를 제안했다.
3월말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에게 6강이 참여한 단계적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것을 거절하고 대신 UN 안보리에 대북 제재안을 상정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4월 방한한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미국, 중국과 함께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을 보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주요 핵 보유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북한 체제 보장에 대한 보증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좋은 뉴스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협력한다면 새로운 슈퍼파워를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잘만 되면 미국도 협력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는 건가.
=6강 계획의 목적은 6강이 한반도횡단철도(TKR) 기반을 발전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바노프가 한국에서,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에서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인프라의 구축은 중국 서부와 러시아의 저개발 지역을 발전시키는 열쇠다.
당신이 북한, 중국 서부, 시베리아를 거쳐갈 때 당신은 성장의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광대한 처녀지를 열게 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게 미국한테 어떤 이익이 있는가.
=우리의 지도자가 합리적이라면 미국이 얻을 경제적 이익은 무수하다.
그건 윈윈 전략이다.
일본, 한국, 중국이 새 시장을 갖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연 4500억달러, 하루 15억달러씩 외채를 빌려올 필요가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지역에 어떤 공장을 다시 열 수 있다.
유라시안지역은 거의 50억명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한텐 완벽한 수출지다.
미국의 항공산업, 실리콘밸리, 실직 위기에 처한 서부 사람들한텐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다.
미국이 대공황을 벗어난 건 전쟁이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덕분이다.


캐시 울프는 미국이 대륙횡단철도로 광대한 국토를 하나로 묶으면서 거대한 경제권을 가지게 됐듯 뉴실크로드가 유라시안지역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도쿄에서 부산, 서울, 평양,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독일, 프랑스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중국과 북한 등 저개발지에 발전소와 운하를 건설한다는 방대한 프로젝트다.
이미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유라시아 많은 나라가 저마다 육상의 다리를 놓으며 유라시안의 허브(중심)를 자처하고 있다.
한국한테는 거대한 배후시장이자 잠재적 경쟁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사정은 북한도 비슷하다.
아니 북한의 사정은 더 긴박하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을 방패 삼아 미국에 대드는 이유는 뭘까? 또 러시아, 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미국의 대북 강경 노선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경제중심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대북정책, 외교정책을 좀더 ‘경제적’ 측면에서 봐야 할 것 같다.







린든 라루시는 누구?



린든 라루시(Lyndon H. LaRouche)는 76년부터 92년까지 다섯차례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로 나섰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20여년 이상 경영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시사주간지 (Executive Intelligence Review)의 편집인, 경제학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98년엔 아시아 외환 위기의 근본을 해결하려면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이 주축이 된 뉴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든, 경제학적으로든 소수파에 속하지만 그는 국내외에 상당히 열성적인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월21일부터 사흘간 EIR-쉴러 연구소(EIR-Schiller Institute) 주최로 독일에서 열린 ‘유라시안 랜드브릿지와 세계경제의 재건’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한국해양수산개발연구원 진형인 부원장은 “한창 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모임을 보는 것 같았다”고 전한다.
참여자들의 반응이 그만큼 열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반전, 반IMF주의자인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한국에 와 있는 한 미국 기업인은 “대통령에 당선되기엔 지지 기반이 작고 나이가 너무 많다”고 평한다.
라루시는 올해 여든살이다.










유라시아 프로젝트 추진 경과


1993년 중국, 시베리아철도에 이은 제2의 유라시안 랜드브릿지 건설을 국가 과제로 천명

1994년 EU 집행위원장 자크 들로르, 서유럽 철도를 동유럽으로 확장하는 ‘들로르 계획’을 제안했으나 펀딩에 실패

1997년 1월 미국 시사주간지 , ‘유라시안 랜드브릿지:뉴실크로드, 세계경제 발전을 위한 기관차’ 발간

1998년 11월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 러시아와 중국 양국의 유라시안 랜드브릿지인 노보시비르스크를 방문. 또 일본 오부치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중국 렌윈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잇는 광역경제권을 구축하는 유라시안 랜드브릿지 건설에 대해 일본의 차관 등 경제협력을 약속받다.


1999년 5월 중국, 툴판에서 타지키스찬의 고대 실크로드 카시를 잇는 1451km 전략적 구간을 연결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평양에서 만나 양국 철도 연결을 서약

2001년 5월 러시아 교통부장관 세르게이 프랑크, 유라시안 철도 구축 촉진과 시베리아철도 현대화를 위한 유라시안교통연합(EATU) 창설 선언

2002년 9월 남북, 도라산역-임진각역 연결공사 등 서울-평양-신의주-중국을 잇는 한반도횡단철도(TKR)의 복원 시작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뉴실크로드 조속 실현 선언. 또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인들 사이에서 한일 해저터널 건설 이슈가 다시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

2003년 5월 미국 부시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국의 동북아경제중심 구상에 환영과 지지를 표명. 실현을 위해선 무역 개방, 투자, 시장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데 양국이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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