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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차세대 컴퓨팅 ‘저비용’ 경쟁
[비즈니스] 차세대 컴퓨팅 ‘저비용’ 경쟁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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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hp·썬 등 앞다퉈 새 전략 발표…“상품 없는 마케팅 구호일 뿐” 비판도

요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른바 ‘장사 좀 해보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말들이 있다.
@총소유비용(TCO)@이나 투자수익률(ROI)과 같은 말들에서부터, 민첩성(Agility)과 맞춤형(Adaptive) 같은 단어들이다.
그리고 이들 단어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한다.
바로 ‘비용절감’이다.


e비즈니스 환경이 바뀌고 있다.
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기업들은 더이상 설비나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오히려 기존 시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서비스 업체를 막론하고, 이른바 ‘비용절감’을 내세우지 않고는 더이상 상품을 판매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 IT 업계의 현실이다.
수익보다는 생존이 더 시급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맞게 주요 컴퓨터 업체들이 이른바 ‘차세대 컴퓨팅’ 전략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재구성하고 기능을 보강한 마케팅 전략에 가깝다.
“지금의 IT산업 환경에선 혁명보다 진화가 중요하다”고 외치며, 호황기에 잇달아 내놓았던 제품과 서비스를 재활용해 고객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이들 전략의 공통된 요지다.


가장 먼저 한국IBM이 지난 3월5일 ‘e비즈니스 온 디맨드’(e-Business On Demand) 전략을 국내에 정식 발표한 데 이어, 5월19일에는 한국hp가 ‘어댑티브 엔터프라이즈’(Adaptive Enterprise·AE)란 전략을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도 네트워크 기능을 강조한 ‘네트워크1’(N1) 전략을 앞세워 빈곤에 허덕이는 IT기업들의 호주머니를 흔들어대고 있다.
여기에 SAP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불황기 비용절감 마케팅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IBM ‘온 디맨드’에 hp ‘디맨드 모어’ 응수

우선 주요 업체들이 앞세운 차세대 컴퓨팅 전략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차세대 컴퓨팅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IBM은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의 역량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자사의 컨설팅·솔루션·서비스 역량을 통합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IBM쪽은 우선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업무 혁신을 가져다줄 개방적이고 통합·자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IBM은 통합된 전산환경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유틸리티 컴퓨팅’ 등의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해 21세기형 기업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런 3대 주요 서비스를 위해 IBM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컨설팅 전사’들이 나섰다.
지난해 인수한 세계 최대 규모의 회계법인인 미국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사용한 만큼 돈을 내는 가격체계를 갖춘 z·p·i·x시리즈의 4대 서버 제품군, 아웃소싱 사업을 전담하는 글로벌사업부 등이 주축이 됐다.
이것이 IBM이 주창하는 온 디맨드 전략이다.


IBM의 재빠른 행보에 대해 한국hp는 최근 AE 전략을 발표하면서 “단순히 고객의 요구(On Demand)뿐 아니라 원하는 것 이상(Demand More)을 준다”는 모토를 앞세워 IBM의 온 디맨드 전략을 교묘히 겨냥했다.
hp의 AE 전략은 1년6개월 전에 이미 발표한 바 있는 어댑티브 인프라스트럭처(AI) 전략을 수정·보완·확대한 것으로, 핵심은 민첩성과 신뢰성 그리고 ROI에서 착안한 새로운 개념인 IT투자회수(ROIT)다.
역시 새로운 IT 인프라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기존 인프라의 활용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hp는 급변하는 환경을 남들보다 빨리 측정하고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인프라를 설계·통합하는 한편, 재구성된 시스템을 관리하고 통제하면서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에 확장·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기존 hp의 유틸리티 데이터 센터(UDC)를 활용해 고객이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한편, 오라클·SAP·시벨 등과 협력해 안정적이고 검증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김병두 한국hp 부사장은 “AI 전략을 기반으로 조직과 기업이 가져야 할 차세대 비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AE 전략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밖에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은 데이터센터를 효율적으로 구축·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을 뼈대로 한 N1 전략을 내세우는 한편, 올해 초 관련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인 SAP코리아도 최근 통합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인 ‘넷위버’를 발표하면서 IT 인프라 관리를 단순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한국MS 또한 차세대 서버용 운영체제 ‘윈도우 서버 2003’을 최근 발표하면서 자사의 닷넷 서비스와 연계해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각 기업들이 주창하는 전략들 사이에 공통점이 나온다.
우선,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얼마나 신속히 대처하고 적응하느냐가 생존을 위한 핵심요인이라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선 예전처럼 더 나은 기술이나 단일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는 대신, 다양한 제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전체 프로세서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데 모두들 동의한다.
신속성, 안정성, 지속성 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것이다.


이와 함께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성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하나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규모 시스템을 설치하는 대신, 필요한 서비스만 아웃소싱 방식으로 이용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유틸리티 컴퓨팅’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하드웨어 측면에선 기존 서버들을 통합해 TCO를 줄이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기존 제품을 재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솔루션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업체간 차별성 없고 밑그림에 그쳐

하지만 한국hp가 내놓은 AE 전략과 한국IBM의 온 디맨드 전략 사이에 차이점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업계에선 심지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며 “두 전략 모두 사실상 비용절감을 내세운 마케팅 경쟁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굳이 차이점을 따지자면, 한국IBM이 자체 기술과 자사 제품들을 중심으로 온 디맨드 밑그림을 그리는 반면 hp는 다양한 제휴를 기반으로 범용성을 높인 게 다른 점이다.
그나마 한국썬의 N1의 경우 이들 두 업체와 달리 서비스보다는 하드웨어 기반의 네트워크 연결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했음에도 막상 전략의 ‘몸체’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IBM과 hp 전략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각 업체별로 특정 기능을 구현한 제품들은 존재하지만, 차세대 컴퓨팅 전략이란 밑그림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제품이나 서비스는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략을 구체화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추상적”이라는 비판이다.
업체들도 이 점에 대해선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IBM쪽은 온 디맨드 전략을 발표하면서 ‘개념이 추상적이다’는 비판에 대해 “변화된 시장의 요구에 대한 IBM의 대답이자 선언으로 봐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한국hp 또한 몇몇 솔루션을 내놓긴 했지만 기존 AI 전략과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기껏해야 “AI가 기술적 측면에 치우쳤다면, AE는 비즈니스 컨설팅을 강화한 통합 전략”이라는 설명에 그치고 있다.
발표회장에 참석했던 한국hp 관계자는 “이번에 소개한 전략을 제대로 구현한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앞으로도 1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당분간은 기존 유틸리티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유틸리티 컴퓨팅 서비스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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