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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마일리지 축소 “누구 맘대로?”
[비즈니스] 마일리지 축소 “누구 맘대로?”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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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항공사 “경영압박 요인” 주장…시민단체 “고객 무시한 일방통행” 반발


단골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가 바로 마일리지 제도다.
항공회사에서 시작돼 신용카드와 통신,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최근엔 커피전문점, 중국집, 동네 슈퍼마켓에까지 확산될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하다.
심지어 고객에게 마일리지를 주지 않는 업체는 버텨내기 힘들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최근 경기불황에 따라 마일리지가 업체들의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나 가장 먼저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항공사들에 마일리지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항공사들은 가장 먼저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하고 나섰다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항공업계는 요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한 항공사들의 약관에 대해 6월초 전체회의에서 심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발단은 이렇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에, 아시아나항공은 올 2월에 “앞으로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존 혜택을 줄이는 조처도 포함된다.
이들은 “최근 경기불황이 지속돼 항공업계에 마일리지가 상당한 경영압박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마일리지는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서비스 전략’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영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고 이들 업체들은 근거를 내세운다.



공정위도 “약관변경은 부당” 결론

하지만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여기에 반발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경영압박은 “스스로 선택해 무리하게 운영해서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근거로 내세우는 경영압박의 실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객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항공사들이 약관을 변경한 데 대해 일방통행이라며 일단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정위는 사전조사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마일리지 혜택 축소 조처가 부당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존에 쌓인 마일리지까지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약관법에 분명하게 저촉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6월초 전체회의에서는 시정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항공사들은 “과거에 마일리지 혜택을 조정할 때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가 이제 와서 문제를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항공업계의 불황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항공사들의 경영압박이 약관 변경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일단 전문가들은 항공사들에 반대표를 던지는 쪽이 우세하다.
대우증권 남옥진 연구원은 “마일리지는 현금성이 높은 대체 지불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들이 경영상 이유로 마일리지 혜택을 대폭 축소하고 이용에 제약을 두는 것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꼴이다”고 지적한다.
그는 “오히려 이번 조처가 ‘자충수’가 되어 기업 이미지에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비자들이 항공사의 마일리지 혜택 축소 조처에 크게 반발하는 것은 이 조처가 고객과의 신뢰를 일방적으로 깨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이 단기수익을 위해 만든 제도를, 자신들의 여건 때문에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이다.
아울러 충분한 홍보를 통해 해외여행 등의 상품으로 마일리지를 소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선택하지 않는 속셈이 의심스럽다는 게 중론이다.


항공사가 주장하는 근거가 투명하지 못하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컨대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마일리지 축소를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한항공은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지나친 마일리지 혜택이 경영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엄살로 비치는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역시도 지난해 순이익이 흑자로 전환했다.
아시아나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다 올해 2월 대한항공의 전략에 편승해 마일리지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결국 항공사들은 스스로가 주장하는 경영압박의 정확한 근거를 투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한 고객들의 원성을 피하기는 힘든 처지다.


소비자단체 등의 비난에 대해 항공사도 할 말은 있다.
소비자들이 마일리지 제도에 대해 잘못 인식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마일리지 서비스는 항공사의 서비스 프로그램이므로, 이번 같은 제도 변경이나 폐지는 항공사가 적법하게 실행할 수 있는 절차라는 것이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한국 사람들은 마일리지를 자신들의 권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항공사가 주는 공짜 서비스”라고 주장한다.
쉽게 설명하면 마일리지는 ‘덤으로 주는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국적항공사가 외국 항공사와 달리 마일리지 사용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고객을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항공사 “덤으로 주던 것 없앨 뿐”

그는 외국 항공사와 형평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적항공사의 약관을 지적하기에 앞서 외국 항공사의 약관에 대해서도 동등한 법의 잣대를 대라는 주문이다.
외국 항공사가 마일리지를 축소하거나 폐지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고 단지 상대하기 쉬운 국적항공사만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부터 공정위가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혜택 폐지를 문제 삼아놓고도 아직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문제가 초래된 것은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제도를 ‘구먹구구식’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어떤 업체도 회원 확대에만 집착했지 마일리지 제도의 가격 대비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다.
특히 회계처리에서 마일리지가 늘어나는 만큼 부채(대손충당금)가 커진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누적 마일리지가 800억마일, 아시아나항공은 400억마일에 달한다.
이 규모는 210만명이 인천∼뉴욕노선의 일반석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단순계산하면 대략 4조원어치가 넘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회원들이 일시에 마일리지를 쓰겠다고 나서면 항공사는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마일리지 논란은 6월초에 열릴 공정위 전체회의에서 일단락된다.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제도 변경은 불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처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항공사들의 조처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인 것도 분명하다.
“고객의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떤 경영활동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기업들도 일방적인 경영활동보다 고객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공정위 관계자의 말을 항공사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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