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편집국] 에디터스메모
[편집국] 에디터스메모
  • 박형영
  • 승인 2003.05.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C형에게 C형!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도울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던 석달 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 또한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우리 386세대의 코드와 가장 잘 맞는다고 맞장구를 쳤죠.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요. 보수적인 사람들이나 진보적인 사람들이나 노 대통령 얘기가 나오면 나름의 잣대로 열을 올립니다.
특히 방미활동에 대해선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이나 한총련, 전교조 등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법을 제시합니다.
C형도 이런 여론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C형으로서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이 될 겁니다.
물론 이 고민이 바로 노 대통령의 고민이겠지만요. 오죽했으면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모든 게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데 저마다 목소리만 높이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난감하겠지요. 그 심정은 십분 이해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행은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함석헌 선생이 살아생전에 들려줬던 말이 떠오릅니다.
옛날 왕이 쓰는 예모(禮帽) 중 면류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사극을 보면 가끔 나오기도 하죠. 둥근 모자 위에 학사모처럼 사각형의 판이 있고 이 사각형 앞뒤에 구슬을 꿴 줄이 발처럼 여러개 매달려 있는 그 모자 말입니다.
이 구슬줄을 유(旒)라고 하는데 함 선생 말로는 임금이 사소한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큰 것만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난 요즘 노 대통령이 이 지혜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대통령이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귀는 키우고 입은 줄여야 한다지만 귀가 얇아져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길을 계속 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예측이 안 되니까요.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이 일관되고 힘있게 개혁을 해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장점이 뭡니까. 뚝심 아닙니까. 남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해도 뚝심 하나로 정도를 걸어오신 분 아닙니까. 원칙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그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각인된다면,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어떤 외교적 태도를 취했는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가 될 거라고 봅니다.
C형! 안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나까지 괜한 소리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조만간 소주나 한잔 하지요. 청와대 사람들의 고민도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