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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의 세상읽기] 참교육과 NEIS
[임재경의 세상읽기] 참교육과 NEIS
  • 임재경
  • 승인 2003.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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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에서 해방, 그리고 남북 분단 초기(1943~49)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네차례 학교를 옮겼다.
생소한 학교에서 동무들을 새로 사귀는 시간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으며 더 괴로운 것은 옮겨간 학교의 담임선생이 지나가는 말투로 “너 이 학교에선 얌전하게 굴어야 해” 하는 소리였다.
전학할 때 떼어간 학적부 품행난에 “장난이 심하다”고 적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정말 지긋지긋한 것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 때였다.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알아보겠다는 의도인데 학생의 집안사정을 파악하여 개별지도의 자료로 삼겠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무직자거나 가정 형편이 변변치 못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심리적 상처나 열등감은 덮어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다.


최근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NEIS는 이를테면 참외 서리 하다 들켜 혼쭐난 10대의 치기에 어린 ‘전과기록’을 국가통합전산망에 영구히 남기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인권위원회가 NEIS의 재고를 요청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라 믿는다.


정보의 전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행정부의 의욕을 나무랄 것까지는 없겠으나 관료들이 이런 속도로 나가다가는 ‘전산화 만능병’에 걸리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첫번째 징후로서 주민등록 정보의 전국 통합구축안이 나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주민등록 전국 통합전산화보다 NEIS의 경우가 해악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하필 왜 교육 관료들이 인권침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에 나섰는가 하는 점이 우리들의 관심거리다.


김대중 정부가 초고속인터넷 망을 까는 데 주력하여 인터넷 보급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어떤 명분, 어떤 형태의 기술발전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 즉 인권 존중을 압도할 수 없다는 근대사회의 기본원리를 깜박했던 것이다.
교육부의 명칭을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꾸었을 때 이미 그 위험성이 배태되었는데 IT에 한창 미쳐 돌아가던 시절이라 아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자라나는 새싹의 ‘사람다운 사람 만들기’라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외면하고 생산요소(노동력) 공급과정으로 교육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층의 취업률이 늘어났는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어서 교육부의 ‘인적자원 조성’ 측면은 공회전(空回轉)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긴 교육부 관료에게 취업을 위한 교육에 나설 용기를 기대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초중등학교 선생님과 영리 기업체의 인사과장, 혹은 총무부장이 하는 일은 전혀 다르고 심지어 서로 반대의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선생님은 옳지 않은 일을 볼 때 주저함없이 고발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회사의 신임받는 총무부장은 절세(탈세)를 위해 허위장부를 작성하라고 신입사원에게 지시해야 할 입장이다.
사회정의가 실현되려면 올바른 인성교육의 결과가 사회의 잘못된 관례에 항의하는 시민적 자세로 확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인적자원부의 관료들은 이런 모순된 측면을 해소하는 데 NEIS의 데이터베이스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시 믿었던 것은 아닐까. 무슨 그런 것까지? 천만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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