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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국제 금융시장서 (주)한국 레벨업?
[포커스] 국제 금융시장서 (주)한국 레벨업?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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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평채 성공적 발행 불구 신용평가사 냉담…북 경제가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할 듯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을 보고 있는 걸까. 뉴욕시각으로 5월29일, 한국 정부는 10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억 달러를 예상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재정경제부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발행물로는 세계적으로 최저 금리”라고 평가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의 한국물 매수가 크게 늘었다.
외국인은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5월28일부터 사흘 내리 5천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사들였다.
이로써 외국인은 5월에 한국 주식 순매수로 전환한 것으로 집계됐다.
2월 이후 3개월 내리 팔아치웠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한국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외평채 발행팀을 이끌고 있는 재정경제부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은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한국 경제를 현재 신용등급보다 높게 평가한 만큼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도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위기 이후 해외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했을 때 이번처럼 금리가 낮은 적이 없었다는 게 그의 논거다.
“타이밍 좋아 성공했다” 목소리도 해외시장의 반응을 보면 외평채 발행팀이 이렇게 들뜰 만도 하다.
발행팀이 첫 로드쇼(순회설명회) 장소인 런던에 도착했을 때 한국 외평채 투자 요청은 벌써 발행예정액 10억달러의 두배에 달하는 20억달러에 이르렀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합해 48억달러의 자금이 한국 외평채를 사겠다고 주문을 냈다.
애초 105~110bp로 예상됐던 외평채 가산금리가 92bp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한국과 국가신용등급이 비슷한 칠레의 국채 가산금리 수준은 128bp. 양국간 금리 차이는 한국 외평채에 대한 국제적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 정도면 북한 핵 논란으로 야기된 한반도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사그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한국시각 5월30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성공적인 외평채 발행이 국가신용등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전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현재 S&P가 ‘A-’, 무디스가 ‘A3’로 평가하고 있다.
신용등급 전망은 S&P가 ‘안정적’(stable), 무디스가 ‘부정적’(negative)이다.
무디스는 2월 북한 핵무기 개발 우려를 이유로 한국의 신용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재경부의 낙관과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덤덤한 전망 사이에서 국내 시장 참가자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논란, 카드채 대란 공포 등 국내 경제 불안요소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물 투자가 느는 건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다른 해외변수가 좋지 않아서”라는 인식이 국내에 퍼져 있는 탓이다.
대한투자신탁증권 경제분석팀 김종수 연구원은 “한국 시장 평가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좋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변수도 좋았다고 덧붙인다.
최근 국제적으로 채권 발행금리가 낮아져 발행여건이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의 채권시장에선 한국 외평채가 미국 국채 수익률 하락 덕에 어부지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5월말 미국 주식시장이 상승 랠리를 보이고 국채시장이 주춤거리자 미국 국채 비중이 높았던 투자자들이 뭔가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의 외평채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시아지역의 높은 유동성 덕도 봤다.
이번 한국 외평채 발행에 투자를 신청한 자금을 보면 아시아지역이 30억달러, 유럽이 10억달러, 미국이 8억달러로 아시아지역이 압도적으로 많다.
외평채 발행팀은 아시아에선 로드쇼조차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투자수요가 몰린 건 최근 아시아지역에서 달러 표시 국채가 거의 발행되지 않은 탓이다.
기축통화가 따로 없는 아시아는 전세계적으로 달러 표시 채권의 수요가 가장 많다.
국내기업 외화차입엔 유리한 영향 발행 타이밍이 좋았든, 한국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든 한국 외평채의 성공적 발행은 외화 차입을 앞두고 있는 국내 은행과 기업들한테는 희소식이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보통 외평채를 기준으로 국내 채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중장기 한국물에 대한 긍정적 벤치마크를 형성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국내 기업, 금융기관들은 말을 아낀다.
뭔가 논평을 내놓기엔 시장이 민감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 리스크 때문에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던 기업들은 6월부터 줄줄이 해외자금 조달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SK글로벌, 카드채 사태를 겪으며 자금 수요가 높아진 국내 은행들의 조달 규모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한국물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외평채를 비롯한 한국물 전체의 가산금리가 점차 상승할 수도 있다.
더 큰 위기는 한반도 북쪽에 도사리고 있다.
붕괴 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 말이다.
4월 기준 북한 쌀값은 1kg당 190원을 넘나들고 있다.
지역에 따라 300원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지난해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른바 7·1조치 직후 1kg에 44~50원이었던 데 비하면 엄청난 상승세다.
북한에서 안정된 직업으로 꼽히는 간호사 월급이 1천원이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투자전략실장은 “조만간 북한의 아사자가 100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북한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한국 경제의 짐은 북한 핵이 아니라 북한 경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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