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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車연비거품 이젠 사라지려나
[비즈니스] 車연비거품 이젠 사라지려나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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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측정기준 바꾸고 관리 강화…업계, 설전 속 대대적 광고전 돌입할 듯


최근 새로운 기준으로 측정된 자동차 연비가 공개되면서 그동안 소비자단체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왔던 연비거품 논란이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서는 아직도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 등 소비자단체들은 “대부분의 차종에서 새 연비가 과거 연비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그동안 연비에 거품이 너무 많았다”고 항의한다.
이에 비해 자동차업체들은 “연비 측정기준이 새롭게 변경됐기 때문일 뿐”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사의 연비가 우월하다는 업체간 ‘연비 우위’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새 연비는 지난 5월1일부터 ‘자동차의 에너지 소비 효율 및 등급표시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발효된 데 따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식연비 측정기준이 기존의 ‘6400㎞ 주행 후’에서 ‘160㎞ 주행 후’로 바뀐 것이다.
또한 정부당국이 사후연비검사에서 허위로 기재한 사실을 적발할 경우 해당업체에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연비관리가 한층 강화됐다.



논란 일던 ‘연비 거품’ 사실로 드러나

이번에 개정된 규정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존의 ‘차 길들이기’(break-in)를 통한 연비 측정은 체감 연비와 차이가 크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자동차업계가 새롭게 발표한 신규 연비가 대다수 모델에서 기존 연비와 큰 차이를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예컨대 베스트셀링카 아반떼XD가 11.8%, EF소나타 2.0DOHC가 23.6%씩 연비가 낮아지는 등 평균 하락폭이 10~20%대에 이른다.
등급도 많게는 3등급씩 떨어졌다.
기아차 비스토와 카렌스 1.8 LPG는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기록했다.


이런 수치로만 보면 그동안 제기돼온 ‘연비 거품’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업계는 연비거품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그간의 공인 연비는 최소의 무게로, 최적의 주행여건으로 실험하기 때문에 실제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며 “새 측정기준은 자동차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보통의 상태에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함으로써 대부분의 연비가 이전보다 훨씬 나빠졌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체간 연비순위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차는 알파엔진을 튜닝한 VVT엔진을 개발해 장착함으로써 전 차종의 연비 등급을 1등급씩 올렸다.
쌍용차는 전 차종이 3등급 이내에 들었다고 강조한다.
준중형차급 경우는 연비 우위를 둘러싼 설전이 가장 뜨겁다.
동급 3위를 차지한 아반떼XD의 현대차는 연비가 월등하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서 입증받겠다며 이미지 설정에 주력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SM3의 연비는 라세티에 이어 2위로 나타났지만 곧 1위임이 밝혀질 것이라며 이의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에 GM대우는 라세티의 우수성이 입증됐다며 대대적인 광고전을 계획하고 있다.


연비 다툼은 차세대 엔진개발을 촉진시키고 있다.
연비 거품을 차세대 엔진개발로 만회해보겠다는 계산이다.
현대차는 커먼레일 직분사 디젤엔진을 업그레이드시켜 ‘2003년형 디젤엔진’을 내놓았다.
기아차는 유럽시장을 겨냥한 직분사 터보엔진을 개발해놓았다.
쌍용차 경우는 디젤승용시대에 대비한 직접분사방식의 디젤엔진 개발에 분주하다.
르노삼성차는 모회사인 르노의 멀티형 디젤엔진 도입을 검토중에 있다.



수입차 신규 연비는 오히려 좋아져

하지만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업계가 소비자단체들이 제기한 ‘연비 거품’ 논란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수입차의 경우 개정규정에 따라 새 연비를 측정한 결과 하락폭이 국산차에 비해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 모델은 신규 연비가 더 좋아진 경우까지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E320(신형)이 7.7㎞/ℓ에서 8.4㎞/ℓ로 9%가 높아졌다.
도요타는 SC430와 IS2000의 연비 등급이 1등급씩 높아졌다.
폴크스바겐 역시 전 차종에서 5.2~10.4%씩 향상됐다.
국산차에서 연비 거품이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녹색소비자연대는 “그동안 자동차업체가 교묘한 방식으로 공인 연비를 높였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며 “향후 자동차업계에 연비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자동차업체가 발표한 공인 연비를 믿고 차량을 구입했다가 더 많은 기름값을 지불했던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법적문제를 검토해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도 예전의 공인연비에는 문제가 많았다고 인정한다.
자동차공업협회 유기홍 환경기술팀장은 “소비자들이 공인연비와 실제연비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며 “다만 개정된 연비 측정방식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상당히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연비거품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공인연비, 어떻게 측정했길래


자동차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자동차가 카달로그에 적혀 있는 공인연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어봤을 것이다.
급제동과 급가속 등을 피하면서 운전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공인연비가 나올 수는 없다는 것도 느껴봤을 것이다.


이런 의문은 모두 국내 연비 측정방법의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사용중인 공인연비의 측정기준은 1975년 미국이 마련한 ‘LA모드’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CVS75모드’방식이다.
이 방식은 400km를 주행한 차량을 1875초 동안에 가·감속하거나 기어를 연속적으로 변화시켜 평균 시속 34.1㎞, 최고 시속 91.2㎞로 17.4㎞를 주행해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서울의 도심 평균 주행속도가 시속 20㎞ 정도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공인연비와 체감연비의 차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기존의 공인연비는 국내의 도로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측정치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건교부도 오는 7월초 체감연비에 근접하는 업그레이드된 한국형 연비측정 모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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