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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디지털방송 ‘잡음 또 잡음’
[비즈니스] 디지털방송 ‘잡음 또 잡음’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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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재검토 발언에 전송방식 논란 다시 가열…정통부 미국식 입장 고수



“미국식으로 계속 가야 한다.
” “더 늦기 전에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


디지털TV(DTV) 전송방식을 두고 미국식(@ATSC@)을 고수하는 정보통신부와 유럽식(@DVB@)으로 변경할 것을 주장하는 언론노조·시민단체의 갈등이 좀체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6월 들어 언론노조와 KBS·MBC노조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DTV 전송방식을 변경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와 DTV 전송방식 변경을 위한 소비자운동(이하 DTV 소비자운동),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8개 방송·시민단체들은 지난 6월4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식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을 하루빨리 변경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뒤이어 6월11일에는 DTV 소비자운동이 주축이 돼 프레스센터 앞마당에서 ‘지상파 전송방식 변경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정통부의 독선과 과장이 디지털방송을 망치고 있다”며 정통부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공영방송으로 그동안 정통부의 정책에 대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KBS도 최근 이런 정통부와 별도로 유럽식과 미국식을 놓고 면밀한 저울질에 들어갔다.
지난 5월16일 정연주 KBS 사장은 DTV 전송방식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언급해 정통부를 당혹케 했다.
이에 부응하듯 안동수 KBS 부사장은 최근 “직원들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DTV 전송방식에 대한 KBS의 입장을 다시 결정할 계획”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유럽식 전송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혀 양쪽의 논쟁에 풀무질을 해댔다.
안동수 부사장은 국내 방송계에서 최초로 유럽식 DTV 전송방식을 주장한 엔지니어 출신 첫 KBS 임원이다.
이쯤 되자 방송·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DTV 전송방식에 대해 “방송 현업인들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밝힌 것까지 들춰내며, 이번만큼은 유럽식으로 방향을 틀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일 기세다.



시민단체 “유럽식이 수신율 좋고 경제적”

그렇다면 쟁점은 무엇일까. 우선 두 방식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양쪽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미국식은 유럽식보다 화질이 좋은 반면, 높은 지형지물이 없는 평지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탓에 수신율이나 콘텐츠 전송 기능 등에 있어서 유럽식보다 뒤처진다는 평가다.
걸어다니거나 차를 몰면서 TV를 시청할 수 있는 이동 중 수신 기능은 아예 지원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유럽식은 고층건물이나 산악지대 등 국내 지형과 비슷한 조건에서 실험했기 때문에 수신율이나 콘텐츠 전송 기능 등이 뛰어나며, 집밖이나 이동 중에도 수신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시민단체와 방송협회 등은 지금이라도 국민 부담을 줄이고 유럽식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식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통부는 “디지털방송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정통부 방송위성과 이재홍 과장은 “유럽식 전송방식은 고화질 방송을 위해 출력을 높여야 하는데, 그 경우 수신율이 떨어진다”며 “실제 방송환경을 고려하면 사실상 고화질 방송은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미국방식이 오히려 약한 신호에도 수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난시청 해소에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동 중 수신 기능에 대해서도 “유럽식으로 방송하더라도 고화질방송과 이동서비스를 동시에 안정적으로 제공하기는 힘들다”며 “이동서비스는 지상파 디지털오디오방송(DAB) 등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럽식을 주장하는 쪽은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일축한다.
언론노조 DTV 특별위원회 박병완 위원장은 “브라질·호주·홍콩·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들이 두 방식을 비교·실험했지만, 미국식의 수신율이 좋게 나온 결과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이동 중 수신 기능 또한 “지상파 방송이 이동 중 서비스를 못하게 될 경우 다른 매체를 통해 별도로 서비스해야 하는데, 그 경우에 드는 추가 비용을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쳤다.
이들은 “정통부가 공개적으로 두 방식을 비교·실험한 적이 한번도 없으면서 미국식이 좋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며 정통부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했다.


정통부는 1997년,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미국에서조차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ATSC 방식을 일찌감치 국가표준으로 채택해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시민단체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이 미국방식이 수신율이 떨어지고 이동 중 수신이 안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재검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1년 6월에는 미국식과 유럽식을 놓고 우리처럼 논쟁을 벌여온 대만이 무선통신과 콘텐츠 전송 등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유럽식으로 변경하면서 국내에서도 전송방식 변경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2001년 12월, MBC가 방송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필드테스트를 거친 결과 유럽식이 수신율이나 이동 중 수신 기능 등에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자 양쪽의 대립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유럽식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언론노조는 지난해 DTV 소비자운동을 발족시키고 정통부 앞 1인시위 등을 통해 전송방식 변경을 정통부에 조직적으로 요구했다.
지난해 9월에는 김원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미국식을 고수할 경우 50조원의 추가 비용부담이 든다”며 전송방식 선정의 문제점을 강력히 비판해 사회를 들썩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부가 이 모든 움직임을 외면한 채 미국식을 강하게 고수하자,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3년이 다 되도록 전송방식 개선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미국 내 사정도 한몫 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개발한 ATSC 방식의 기술결함을 인정하고 지난 2000년 7월부터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목표 시한인 2002년 1월을 훌쩍 넘기고도 수신율이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동 중 수신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이 화질을 떨어뜨리는 대신 수신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작업을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통부의 입지도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KBS도 유럽식 지지 땐 변경 가능성”

양쪽이 서로 다른 방식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배경에는 대형 국책사업에 투입되는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유럽식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방송단체는 정통부가 수신율이 떨어지는 미국식을 고수할 경우 난시청에 따른 추가 부담이 4조8천억여원, 이동 중 수신을 위한 유료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31조5천억원, 유럽식보다 세배나 비싼 미국식 기술사용료 6500억원, 유럽식의 주파수 자원활용 가치가 11조6천억원 등 모두 50조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든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오히려 미국방식이 더 경제적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유럽식으로 전송방식을 바꿀 경우 제조·방송설비 및 이미 보급된 수상기 등 13조8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며, 소비자 또한 바뀐 방식에 따른 수상기 추가 구입 비용으로 5조8천억원 가량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전송방식 변경에 따른 규격제정과 채널 재배치 등으로 디지털방송의 실시가 최소 2년 이상 지연돼, 세계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잃게 된다며 미국식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양쪽의 논란은 해를 거듭하면서도 좀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참여정부 출범을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나온 KBS의 전송방식 재검토 발언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통부는 미국식 강행 방침을 변경하지 않을 기세다.
하지만 MBC에 이어 KBS마저 유럽식을 지지하게 되면 정부에서도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고 시민사회단체 등은 보고 있다.
DTV 특별위원회 박병완 위원장은 “MBC가 이미 지난 2001년 비교시험 이후 유럽식을 지지할 의사를 밝힌 만큼, KBS까지 가세하면 정부도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며 “KBS쪽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향후 투쟁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식은 한국·미국·캐나다 등 세 나라가 채택한 반면, EU 국가와 싱가포르·호주·홍콩·브라질·대만 등 상당수의 나라는 유럽식을 채택하고 있다.








@용어설명@


▲ATSC : 1982년 발족한 미국 디지털TV방식 위원회(Advanced Television Systems Committee)에서 개발한 DTV 전송방식. 1996년 12월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미국 표준방식으로 채택했다.


▲DVB : 1993년에 구성된 유럽의 디지털TV 표준화단체 DVB(Digital Video Broadcasting)에서 범유럽에 사용할 표준으로 개발한 전송방식. 1997년 3월에 유럽표준화기구(ETSI)에서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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