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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종신보험 포화상태, 보험회사 불안한 미래
[비즈니스] 종신보험 포화상태, 보험회사 불안한 미래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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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올린 생명보험사들이 의외로 웃음을 아끼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국내 23개 생보사는 지난해 2조821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1993년 이후 고착된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깨고, 2001년에 이어 2년 연속 거액의 순익을 거둬들인 것이다.
저금리 때문에 죽을 맛이라더니 대체 어떻게 된 까닭일까. 생보사가 지난해 거둔 성과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초점은 순이익의 성격과 처리 방법이다.


생보사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금융감독원 이준호 경영분석팀장의 분석은 명쾌하다.
종신보험의 판매가 늘어 수지가 개선됐다는 것이다.
종신보험은 가입 후 2년 동안 보험금 지급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책임준비금을 적립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보험료에서 보험사가 사업비로 확보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난다.
이준호 팀장은 이밖에도 “보험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금리 역마진이 줄어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생보사의 이익은 비차익, 이차익, 사차익으로 구성된다.
이들 각각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 손익이 움직인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구조는 단순하다.
비차익은 직원 월급이나 연구개발비 등 보험사가 쓰기 위해 보험료에 미리 반영해둔 예정 사업비와 실제 사용한 사업비의 차이에서 생긴다.
마찬가지로 이차익은 보험사가 미리 정해 놓은 예정이율과 실제 자산을 운용해 얻은 투자수익율의 차이에서 발생하고, 사차익은 보험료 산정에 적용한 예정 사망률과 실제 사망률의 차이로부터 나온다.
지난해의 경우 비차익, 이차익, 사차익이 모두 증가했다.


지난 5월23일, 생명보험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생보사 재무구조 문제점 진단’이란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경희대 성주호 교수는 이러한 이익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성주호 교수는 “당장의 이익만 볼 게 아니라, 미래의 현금흐름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상최대 순이익의 일등공신인 종신보험 자체에 함정이 숨어 있다.
종신보험은 가입 후 2년 동안 책임준비금을 쌓지 않아도 돼 보험사에 유리하지만, 3년차부터는 준비금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성 교수는 “보험사 입장에서 종신보험은 판매 후 2년까진 흑자, 3~7년은 적자, 7년 이후는 흑자”라고 말한다.
지난해 거둔 순익의 대부분이 나중에 써야 할 것을 미리 당겨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성 교수는 “잠시의 소나기에 좋아할 게 아니라 앞으로 닥칠 가뭄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생보사의 향후 수익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지난 몇 년간 생보업계를 먹여 살린 종신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근접했다.
종신보험의 팽창이 멈춘다면 그 동안 집중적으로 판매해둔 기존 상품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구나 종신보험을 대체할 히트상품이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저금리도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는 8월 시행될 방카슈랑스를 최대 도전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방카슈랑스가 한국 보험 시장에 어떻게 작용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소형 보험사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성주호 교수는 방카슈랑스가 보험업계 전체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판단한다.
성 교수는 “방카슈랑스는 은행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은행을 통한 판매 비중이 커지면, 유지·관리비를 나누어 갖자고 보험사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사업비에 포함돼 있는 유지·관리비는 주로 보험사의 인재개발이나 자산운영 노하우 개발에 쓰인다.
유지·관리비를 은행에 떼어 주게 되면, 보험사의 장기적인 성장 탄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성주호 교수는 이처럼 앞으로 예상되는 ‘가뭄’에 대비해 예정이율을 더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5%대에 있는 예정이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1990년대 일본의 보험사들이 줄줄이 파산한 것도 예정이율 경쟁 때문이었다.
예정이율을 낮춰 자산운영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정이율 인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쟁점이다.
많은 보험사가 지난 12월부터 예정이율을 이미 0.5~1% 내려 놓은 상태다.
보통 예정이율이 1% 포인트 인하되면 보험료가 15~20%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경험생명표가 적용돼 보장성보험의 보험료가 최대 30% 인하되어야 하는데, 보험사들의 예정이율 인하로 보험료가 제자리로 돌아갔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사업비 과다책정 사례를 적발해 시정조처를 내린 것도 생보사에 대한 불신을 더 깊게 했다.
금융감독원 상품계리실 강길만 팀장은 “올 1~3월 출시된 상품을 심사해 보니 거의 대부분의 보험사가 사업비를 과다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측에서 앞으로 사업비가 많이 들어갈 것 같다고 해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험사들은 이미 사업비에서 비차익을 많이 가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예정이율 인하는 또 다른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성주효 교수는 또 보험사의 내부유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거둔 이익을 계약자 배당이나 주주 배당에 쏟아 부을 게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특히 주주들의 경우, 그 동안 만성적인 적자로 배당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당장 이익 배당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재무구조 개선이 기업의 내재가치를 높인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독당국이나 많은 전문가들도 내부유보를 늘려 재무구조 개선을 촉진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실제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급여력 비율이 감독 기준인 100%를 겨우 넘기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파산시 계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급여력 비율이 최소한 200~300%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딴 데 있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보험은 계속성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보험사들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 내부유보를 늘리는 것은 좋지만, 쌓아둔 돈을 엉뚱한 데 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연행 사무국장은 직원들에게 주는 거액의 성과급을 대표적인 경우로 들었다.
삼성생명이 지난 1월 직원들에게 200~300%의 성과급을 지급한데 이어, 5월엔 교보생명이 기본급의 5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조연행 사무국장은 “계약자의 돈으로 만든 과실을 관리자들이 빼먹는 격”이라고 말한다.


2조원이 넘는 흑자를 손에 쥔 생보사들의 처지가 이래저래 편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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