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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홈쇼핑 업계 반품 속앓이
[커버] 홈쇼핑 업계 반품 속앓이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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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자니 수익 떨어지고, 안 받자니 매출 떨어지고…


사례1 : 경기도에 사는 K씨는 ㄱ홈쇼핑에서 가죽의류를 구입한 이후 “치수가 맞지 않는다”, “색상에 차이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무려 8차례나 반품을 요구했다.
급기야 ㄱ홈쇼핑 사장은 가봉사가 직접 K씨의 집을 방문해 정확한 치수를 재고 희망사항을 반영한 ‘특별한’ 제품을 9번째 배송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K씨도 더이상 불만을 제기하진 못했지만, 이 사례는 ㄱ홈쇼핑에서 단일품목 최다 반품기록으로 남게 됐다.

사례2 : ㄴ홈쇼핑 고객상담실장의 하소연. “세트상품을 주로 구입해온 N씨의 경우 배송이 되기만 하면 한 가지 종류가 빠져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거예요. 문제는 10차례 가까이 세트상품을 반품하는 일이 되풀이됐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직접 검품해서 보내기도 했는데,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았어요. 당시엔 어찌나 억울하던지…”

반품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유통업계에서 반품 고민이란 늘상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여전히 연말이 되면 동창회에 나가기 위해 백화점에서 고가 모피를 구입해 입고 난 뒤 기한내에 반품하는 주부들이 있는가 하면, 신상품 시즌이 돌아오면 동대문 업자들이 백화점 옷을 본떠 카피본을 만들고 다시 물러달라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곳의 전쟁은 좀 더 특별해 보인다.
바로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을 근간으로 한 무점포 유통업계다.
우선 반품률부터 차이가 난다.
홈쇼핑 선발업체인 LG홈쇼핑과 CJ홈쇼핑은 자사의 반품률이 대략 16~17%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뒤늦게 사업을 개시한 현대, 우리, 농수산 등 후발 3사의 반품률도 식품비중이 큰 농수산을 제외하면 18%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프라인 유통의 대표주자격인 백화점의 반품률이 10%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셈이다.


또한 이런 수치는 반품률을 줄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인 업계 관행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협회(통판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TV홈쇼핑 선발사들의 반품률이 20%가 넘는다”고 말한다.
통판협회는 해마다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반품률을 집계하고 있다.


게다가 홈쇼핑의 반품률은 똑같은 무점포 유통업태인 인터넷 쇼핑몰들과 비교해서도 훨씬 높은 편이다.
전문몰의 반품률이 평균 4%, 종합쇼핑몰은 10%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접 물건을 만져보지 않고 사게 돼 반품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무점포 유통 중에서도 유독 홈쇼핑이 반품으로 골치를 썩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몰보다 반품률 훨씬 높아

이에 대해 LG홈쇼핑 신형범 팀장은 “무점포 유통은 기본적으로 반품과 교환이 없으면 장사를 하기 힘든 업태”라며 “그중에서도 TV홈쇼핑은 매체의 특성상 충동구매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제품을 소개하는 쇼호스트들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데다, 자칫 ‘마감임박’이라도 뜨게 되면 충동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야말로 농후하다는 것이다.
의류와 보석의 반품률이 30%를 웃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LG홈쇼핑의 한 MD는 “전체 의류상품을 통틀어 평균 반품률은 35%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반품으로 발생하게 되는 홈쇼핑업체들의 부담은 어느 정도나 될까. 아쉽게도 반품으로 인한 각 업체의 손실액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얽혀 있는 협력사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각 업체별로 반품관련 사항들은 일급 대외비에 속하는 사항이라 쉬쉬하는 것이 보통이다.


먼저 반품으로 인한 배송비용은 전액 홈쇼핑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홈쇼핑에서는 제품에 하자가 있어서 반품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고객들의 단순변심에 의한 반품도 무료로 수거해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한번 배송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대략 3200원 정도. 반품제품은 당연히 배송비가 이중으로 든다.
따라서 1개의 상품이 반품되면 홈쇼핑업체로서는 매출 없이 배송비만 7400원을 날리게 되는 셈이다.


일부 공급사가 직접 배송하는 설치제품을 제외하고 전체 배송의 80% 가량을 홈쇼핑 업체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반품으로 인한 총배송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한 배송비말고도 고객서비스에 드는 관리비용까지 포함하면 간접적인 손실도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무엇보다 반품처리로 되돌아온 제품을 새 것처럼 판매할 수가 없다는 점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홈쇼핑 직매입 상품 중에서 반품된 제품들은 주로 사내판매를 통해 직원들에게 50%까지 싸게 판매하거나 폐기한다”고 말한다.
특히 속옷은 한번 입었던 제품은 반드시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반품제품을 재활용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고 한다.
재활용하는 것보다는 아예 제품을 폐기하는 것이 회사 수익성 차원에서도 낫다는 것이다.


물론 홈쇼핑 업계는 그나마 평균 40%까지 육박했던 홈쇼핑 초기에 비해서는 반품률이 많이 줄었다며 자위하고 있다.
초기보다 반품률이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홈쇼핑이 장사가 잘되면서 대기업까지 홈쇼핑 판매를 노리기 시작한 데다 각 업체별로 품질면에서 함량미달인 공급사들과 계약을 모두 중단하면서 나온 효과라는 것이다.


예컨대 일부 업체는 지난 2000년부터 품질과 서비스 면에서 중대결함이 3차례 이상 발견된 공급사를 계약에서 탈락시키도록 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품질과학연구소를 설립해 보석 같은 경우 평균 3회 이상 꼼꼼히 검수를 받게 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상습범 리스트 만들어 특별관리도

하지만 전체적인 반품률은 줄었지만, 고객변심에 의한 반품이 이전보다 늘어 지금은 반품사유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형편이다.
개중에는 상습적으로 반품을 일삼는 악성고객들도 상당수여서 애를 태우고 있다.
사은품 당첨을 위해 반품을 일삼는다거나 명절때만 되면 5개 홈쇼핑 업체에 동시구매해 가장 빨리 배송이 되는 곳만 선택하고 나머지 업체에는 반품시키는 등 수법도 가지각색이다.


ㄷ홈쇼핑업체 관계자는 “10번 구매하면 6~7번은 반품하는 상습반품족들이 대략 500명 가량인데, 이들은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전한다.
특별관리에 들어간 고객이 주문하게 되면 다시 한 번 신중히 검토한 뒤 구매를 결정할 것을 권유하는 식이다.
업체별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할 만큼 악성고객 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업계도 조용히 ‘반격’에 나서고 있다.
CJ홈쇼핑은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의류와 보석품목에 한해 반품기한을 축소했다.
상품을 받은 뒤 30일 이내에 가능했던 것을 15일 이내로 절반이나 줄여버린 것이다.
반품기한을 줄이면 그에 따른 관리비용도 절감되기 때문에 업체로선 이익이다.
지난해부터 의류제품에 텍이 제거되면 반품을 못하게 하고 보석세트도 홀로그램으로 연결시켜 놓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우리홈쇼핑도 의류와 보석에 대한 반품기한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이 업체는 택배기사가 직접 고객에게 내용물을 확인시켜 주는 ‘고가보석 내품확인 서비스’도 실시해 보석품목의 반품률을 10% 가까이 끌어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반품과의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닫진 못하고 있다.
자칫 고객서비스가 줄었다는 인식을 갖게 해선 매출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선두인 LG홈쇼핑이 30일 반품기한과 선환불 후수거 원칙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몇 가지 반품불가 규정을 정해놓더라도 고객이 우기면 받아주는 것이 보통이다.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돼 분쟁사례로 비화됐다가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B&S 상품전략연구소 이학만 소장은 “초기 홈쇼핑 업체들이 유통업계 최고의 반품서비스를 구사한 것은 새로운 업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공격적 마케팅 차원이었다”며 “지금은 경쟁업체가 늘어나면서 업체간 서비스경쟁 차원으로 반품정책이 구사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일부 업체 반품비용 공급업체 떠넘겨

결국 수익증대와 고객서비스 유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쪽으로 홈쇼핑 업계의 반품정책도 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반품률이 높으면 수익이 떨어집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형성장이 중시됐지만 이제는 수익을 많이 따지는 분위기죠. 따라서 반품서비스를 잘해주는 것만이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 CJ홈쇼핑 이경화 고객상담실장의 말이다.
협력사간에 의류 사이즈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는가 하면, CRM(고객관계관리)을 구축해 먼저 구매고객에게 맞춤식 정보를 제공하는 등 티나지 않게 반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상당수 공급사들은 지나친 반품부담으로 허리가 휘고 있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컴퓨터 관련 제품을 공급, 판매하고 있는 한 홈쇼핑 방송전문대행사 관계자는 “이미 설치된 컴퓨터 제품은 반품이 되지 않는데도 소비자가 우기면 홈쇼핑 업체가 수용하는 식”이라며 “결국 부담을 떠안는 것은 공급사들”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을까봐 제대로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고가인 데다 반품규정이 까다로운 컴퓨터 제품인데도 고객변심에 의한 반품이 전체 반품 중 60~70%에 이른다고 밝혔다.
반면 제품불량이나 배송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경우는 20~30%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다른 공급사 관계자는 “반품시 홈쇼핑 업체가 배송비를 다 책임진다고 하지만 아예 계약을 맺을 때 공급사들로부터 배송비용을 포함해서 받기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이 결과적으로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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