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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칼럼]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
[리드칼럼]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
  • 이코노미21
  • 승인 200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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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이리 시끄러운가?


우리 사회는 같은 21세기를 호흡하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가 너무 다른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50대 이상이 자란 환경은 대부분 농촌이었다.
이런 농경사회 세대는 ‘수확 체감’ 세대다.
(선A)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이 느리고 산출도 크지 않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30~40대는 본격적인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자라온 세대다.
이들은 ‘수확 체증’ 세대다.
(선B) 이 세대는 앞 세대보다 정부정책에 대한 반응이 그만큼 빠르고 보상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10~20대는 PC와 휴대전화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성장해온 또 다른 인류다.
이들은 ‘수확 폭증’ 세대다.
(선C) 이른바 ‘무어(Moore)의 법칙’이 통하는 세대다.
이들은 단순히 부지런함을 뛰어넘어 경계없는 역동성을 보인다.
정부정책에 대한 반응도 초고속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가 함께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내전까지 겪고서도 수십년 만에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이와 함께 불과 십수년 만에 서슬퍼런 독재국가를 현직 대통령과 언론이 씨름하는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나라이기도 하다.
정부나 공권력에 대한 시각이 판이한 사람들이 한 시대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최근 NEIS를 둘러싼 갈등도 ‘국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들이 충돌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데 세대별로 집단별로 이렇게 다양한 의식 저변에, 이와는 정반대되는 동질감과 획일적 평등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현실의 복잡함이 있다.
GDP 규모 세계 13위의 OECD 국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제시대 동사무소제도, 파출소제도, 호적제도, 호주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자유무역협정(FTA)을 전혀 체결하지 않았고 금융노조가 존재하는 세계 13위의 수출대국이 바로 우리나라다.


이처럼 지난 수십년간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가 일상생활처럼 되어 버린 나라가 과연 조용할 수 있을까? 세대간 갈등이 단순히 입장 차이를 넘어서서 잠재의식과 사고방식의 차이로 자리 잡은 나라가,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복종과 저항의 집단이 함께 살고 있는 나라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모든 것이 평등화, 획일화되기를 요구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는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이 수두룩한 나라가 과연 평온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운 나라에서 국가 경영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은 ‘내버려두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끄러움을 겁내서는 안 된다.
흔들리지 않는 큰 비전을 제시하고,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틀이 확고하게 지켜지는 게임의 규칙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마음껏 토론하고 갈등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건강한 토론과 갈등의 끝에 결국 국민들은 ‘제시된 큰 비전’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변하지 않는 기본 임무들, 즉 아직도 해결 못한 주거, 교육 같은 국민의 기본수요를 충족하고, 곧 닥쳐올 통일에 대비하는 문제 등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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