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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재건축 시공권 경쟁입찰 ‘흔들’
[비즈니스] 재건축 시공권 경쟁입찰 ‘흔들’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3.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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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간 상대방 영업권 암묵적 인정…잡음 해소·투명성 확보 취지 무색


“경쟁사가 선점하고 있는 곳은 안 됩니다.
싸워서 이겨도 반쪽의 승리가 되기 때문이죠. 조합원 가운데 다른 시공사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른 생각을 먹게 되면 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삼성물산 강남사업소 김아무개 과장은 과거와는 달라진 건설업체들의 재건축 수주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건설업체 재건축 담당자들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7월1일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이 시행되면 재건축 조합에서 미리 시공사를 정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대형 건설업체들은 알짜배기 재건축 단지를 선점하기 위해 수주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대형 건설업체들이 한 사업장을 두고 수주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건설업체들은 비록 경쟁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더라도 ‘남이 찜해 놓은 곳’에 손을 대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형 건설업체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는 지금 시공사로 선정되더라도 상당수 단지에서 시공권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정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시공권을 인정받으려면 해당 사업장이 올해 6월30일 이전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거나 입법예고일인 2002년 8월9일 이전에 시공사로 선정됐어야 한다.
또한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조합원 50%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단지들은 시공권이 무효가 되고, 최종 사업승인이 난 이후에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다시 시공사를 선정하게 된다.


최근 시공사를 선정하는 재건축 단지는 대부분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곳으로 시공권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대형 건설업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재건축 수주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형 건설회사들이 올 상반기 중 재건축 사업을 수주한 단지는 약 40여 곳에 달한다.
업체별로 적게는 3~4곳에서 많게는 20여 곳에 이르는 재건축 단지의 시공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시공권 유지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막대한 홍보 비용을 지불하면서 재건축을 수주하는 이유는 일단 ‘찜’해 놓은 단지는 나중에 재선정하더라도 시공사를 바꿀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물산 재건축 담당자는 “시공사는 홍보비용뿐만 아니라 조합운영비, 설계비, 안전진단비 등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재건축조합에 빌려주고 있다”며 “최종 사업승인이 날 때까지 조합은 시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법적으로 시공사로 인정받지 못해도 재건축 조합과 건설회사 간의 계약 관계는 남는다”며 “한번 시공사를 선정하면 다른 업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나서지 않는 한 쉽게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LG건설 재건축 담당자는 “대형 건설업체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시공권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따라서 다른 업체가 수주했던 곳을 무리하게 뺏으려 하는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B업체가 선점하고 있는 재건축 단지에 A업체가 들어오려고 하면 업체간의 신뢰가 깨지면서 시장이 혼탁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서로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영업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 건설업체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상대방의 연고권 또는 영업권을 인정해 줄 경우 애써 도입한 공개경쟁입찰제도의 취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동안 재건축조합의 시공사 선정에는 별다른 법적 제한이 없었다.
때문에 재건축 조합 간부들이 임의대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정부에서는 재건축 조합의 시공사 선정 과정의 잡음을 없애고, 시공사 선정이 투명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개경쟁입찰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연고권을 인정해 주는 건설업계의 관행은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공동행위과 김치걸 과장은 “공개경쟁입찰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참여하면 시장경제를 제한하는 부당한 공동행위로 볼 수 있다”며 “담합 행위가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혐의 정도에 따라 시정명령이나 매출액 5% 이내 과징금 부과, 검찰 고발 등의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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