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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선진국형 장기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될까
[진단] 선진국형 장기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될까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3.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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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낮추려면 은행 유인책 필수 내년 1월부터 집을 사는 사람들은 집값의 20~30%만 먼저 내고 나머지는 20여년에 걸쳐 분할상환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서민, 중산층의 내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고 가계 대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장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된 장기 대출제도(모기지론)를 도입하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를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법안을 보면 정부는 내년 1월 설립되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칭)의 자본금 규모를 당초 1조원에서 2조원으로 늘리는 한편 주택저당채권(MBS) 발행한도도 자본금의 50배로 확대키로 했다.
20년 이상 장기로 빌릴 수 있는 주택대출자금이 최대 100조원까지 새로 조성되는 셈이다.
금융권에 장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변동금리 상품이고, 3년 만기 CD연동금리상품에 비해 금리가 1~2% 가량 높아 이용하는 고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부 은행에선 CD연동금리를 적용하는 최장 30년 만기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인기는 별로 없다.
금리변동 위험을 고객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중도에 상환하면 1~1.5%의 가산금리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 대출상품에 고정금리를 적용하지 못한 것은 조달자금과 대출자금에 불일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은행에선 보통 5년 이하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장기 대출상품을 고정금리로 빌려줄 경우 금리변동 위험을 고스란히 은행이 져야 한다.
하지만 모기지론이 도입되면 은행은 자금조달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은행은 고객에게 주택을 담보로 장기대출을 해주고 대출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넘긴다.
주택금융공사는 다시 대출채권을 담보로 최대 만기 30년짜리 MBS를 발행해 유동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금리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고, 고객들은 고정금리로 장기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올 1분기 현재 224조원으로 추정되는 주택관련 금융시장의 77%가 3년 이하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모기지론을 통해 향후 5년 내에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절반 가량을 20년 이상 장기대출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재경부는 내년 1월부터 신규 대출뿐만 아니라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도 고정금리 장기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소득공제 효과, 실질금리 6% 초반 예상 하지만 시중은행의 가계여신 담당자들은 고정금리 장기대출을 고객들이 선택할지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실제 농협이 지난 3월17일 시범적으로 출시한 ‘MBS장기고정대출’은 저조한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농협은 MBS 발행기관인 코모코(KoMoCo)와 함께 5월말까지 1천억원 규모로 판매할 계획이었지만, 6월말 현재 판매실적은 2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모코 김영만 팀장은 “이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3년 만기 변동금리 상품의 금리가 계속 떨어져 지금은 5% 후반까지 하락했다”며 “판매가 부진했던 것은 7.6%(11년 만기), 7.9%(15년 만기)로 기존 단기상품에 비하면 금리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민은행 서진석 과장은 “당분간은 금리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한 상황에서 표면금리가 높은 장기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할 만한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며 “고정금리라도 표면금리가 1~2% 정도 차이가 나면 고객을 끌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장기 주택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낮은 금리를 적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코모코를 대신하는 주택금융공사가 출범하면 금리가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는 코모코와 달리 공사로서 정부가 손실을 보전하기 때문에 국공채 금리와 비슷한 수준에서 MBS를 발행할 수 있다”며 “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하면 20년 만기 대출 상품금리를 7% 안팎에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연간 600만원까지 소득공제 효과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6% 초반으로 떨어져서 3년 만기 변동금리 상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출금리를 7% 안팎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주택금융공사가 낮은 금리로 MBS를 발행하는 것은 물론 대출채권 평가 및 유동화에 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
모기지론은 금융기관과 수요자가 직거래하는 은행대출보다 거치는 과정이 많다 보니 비용이 늘게 되고 자연히 금리가 높아질 수 있다.
주택금융공사 설립을 위한 TFT(태스크포스팀) 관계자는 “금융공사에서는 코모코가 외부기관에 맞겼던 담보자산 및 대출채권 평가를 직접 수행할 계획”이라며 “공사가 비용을 절감하고 거래과정에 발생하는 수수료 비용을 줄이면 대출금리는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은행 수수료 줄이는 게 관건 주택금융공사는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목표에 따라 금리를 최대한 낮추려 할 것이다.
하지만 수익의 상당부분을 가계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시중은행은 좀 다른 생각을 가질 만하다.
모기지론은 일반적으로 대출에 따른 리스크를 주택금융공사가 지고, 은행는 수수료를 받는 구조이다.
은행 입장에선 주택담보대출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안전하고 수익성이 좋은 자산운용 대상임을 고려할 때 모기지론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더구나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대출채권에 대한 은행의 유동화 수요도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주택금융공사 입장에선 대출금리를 낮추기 위해서 은행 수수료를 줄일 필요가 있다.
주택금융공사 준비팀 관계자는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는 은행 마진이 적어야 한다”며 “아직 은행 수수료는 정해진 바 없지만 0.5% 안팎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모기지론이 주택금융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낮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면서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
재경부 담당자는 “주택담보대출의 유동화 구조를 설계할 때 대출채권에 대한 리스크를 은행이 주택금융공사와 나누어 부담하면 은행은 수수료 수입뿐만 아니라 자산운용 수익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은행의 현금자산이 풍부하다면 대출채권을 넘기면서 현금 대신 MBS를 인수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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