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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인물]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3.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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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IT학’ 정립해볼 터


지난 7월 그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7개월이라는 짧은 임기가 아쉽다는 말부터 던졌다.
‘준비된 장관’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그에게 거는 기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철(55) 전 정통부 장관은 이제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인생에 가장 보람찬 순간들을 만들어 주었던 IT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IT학’이라는 깃발을 치켜들었다.
최고의 프로젝트를 지휘한 연구원으로서, 이땅의 통신산업을 일군 경영자로서, 통신정책을 이끄는 장관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이 이제는 학문의 토대로 바뀌는 셈이다.



요즘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면서요.

강의를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의 석좌교수를 맡았습니다.
강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내가 경험은 있지만 학문적으로 정립된 게 아니니까 좀 다른 걸 해보자고 이야기했지요. IT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30%, GDP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IT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IT선진국이 됐고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갈지 누군가는 정리하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특히 이번 선거만 봐도 월드컵, 촛불시위, 선거로 이어지는 변화의 물결의 모태는 IT입니다.
단지 효율성, 비용 등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IT가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이런 IT에 대해 학문적으로 한번 정립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IT학’이라는 걸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거죠. 이걸 정보통신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학, 미디어학, 통계학을 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협동과정 형식으로 하는 겁니다.
세계 최초의 시도라 그분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감성’을 매우 강조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평등, 참여, 감성 공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감성 공유가 하나의 파워를 형성했고, 그것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고,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래서 이것을 학문으로 한번 검증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최첨단 통신기술 전문가, 살벌한 경쟁을 거친 경영자, 관료를 거친 그가 네트워크의 가장 큰 힘을 ‘감성’으로 본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IT분야의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어떤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까?

IT로 가장 많이 변할 수 있는 분야는 서비스 산업입니다.
IT로 앞으로 90% 이상 더 바뀔 거에요. 이런 때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득을 얻게 되지요. 그런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영화 한편을 잘 만들면 자동차 몇만대 파는 것만큼 수익을 거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그런데 현대자동차의 매출을 5배로 늘리려면 아마 수십조원이 들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잘 만들게 하려면 몇년 동안 몇천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되지요. <매트릭스 리로디드> 보셨습니까?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내용보다도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이 좋아요. <스타워즈>도 그렇고, <토이스토리>가 그렇고요. 그런 영화는 90%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그런 영화를 만드는 메카가 꼭 할리우드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IT를 이만큼 발전시켰고, 그러니 우리가 그런 영화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말씀하신 영상사업에 좀 더 중점을 두셨겠네요.

그렇죠. 장관 시절에 픽사, 루카스, 디지털 도메인 등 디지털영화에 강점을 가진 영화사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어요. 그 사람들도 관심이 높더군요. 현재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기술도 좋고 손재주도 좋은 데다, 정부차원에서 이야길 꺼내니까 아주 좋아하는 거죠. 그래서 대전시와 양해각서(MOU)도 맺고 그랬는데, 그게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영상사업에는 엄청난 기술과 연구가 뒷받침돼야 하잖아요. 여기에 작가들, 제작자, 기획자, 감독, 마케팅하는 사람들도 많이 필요하고요. 그런 인프라와 사람들을 한 단지에 모아 집중적으로 한번 키워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하면 정말 세계적인 수준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러려고 보니 돈이 필요해서 그때 기업으로부터 돈을 좀 모았죠. 그게 IT펀드를 만든 주목적이었어요.


IT펀드를 조성하면서 ‘집중투자론’을 강하게 설파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러곳에 찔끔찔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하나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면, 그게 잘 안 돼도 분명히 남는 게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적어도 몇년 후에 다시 싹틀 토양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그걸 위해 기업들이 투자하자고 했죠. 다행히 서너개 기업이 쉽게 취지를 받아들여서, 그때 5천억원을 모아서 지난해말에 금고에 딱 넣어놓고 나왔습니다.
(웃음) 그 돈 가운데 2천억원은 장학금에, 3천억원은 영상사업 집중육성에 쓰기로 계획했죠. 아마 지금은 그때와 용도가 조금 달라졌겠지만 원래 펀드를 조성한 취지는 그랬습니다.



정부가 통신정책을 펼칠 때 가장 중심을 두어야 할 분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통신정책을 세우려면 세 가지를 봐야 합니다.
통신사업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제조업 등 연관산업, 그리고 새로운 정보화를 통한 사회의 발전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서로 물려 있어요. 통신사업이 잘 되면 연관산업도 커지고, 그러면 그것을 이용한 정보화도 원활해집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아프면 셋이 다 아프죠. 지금이 그런 위험한 때인데 통신사업이 아프면 제일 먼저 제조업체가 타격받고 그러면 정보화도 멈춰 버립니다.
이 사이클이 계속 선순환하도록 유지하는 게 정부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하나라도 처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돼요. 특히 통신사업이 처지면 돈줄이 말라 버리지요. 그래서 저는 통신요금 인하에 찬성하지 않아요. 고객과 국민을 위해 요금인하를 주장하는데, 그러면 통신사업자가 망하고 결국은 통신서비스가 엉망이 되고 맙니다.
결국은 국민들이 치러야 할 비용은 더 높아져요. 요금을 내리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통신3강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어요. 환경을 만들어 줘야지, 기업에게 하나하나 역할을 주는 건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해요. 가급적 정부가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은 거지요. 꼭 3강을 고집하는 것도 이상한 겁니다.
자연스럽게 3강이 되면 좋은 거지만, 딱 셋만 해야 한다고 울타리치고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도록 만드는게 정부 정책이 되면 안 되지요.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통신사 사장, 장관 등 여러 경험을 하셨는데, 언제가 가장 즐거우셨나요?

미국에서 6년 정도를 일하면서 정말 빠르게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 젊은 나이에 누구보다 보수도 많이 받고 인정도 받았지만 ‘몸을 파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한국 국방과학연구소로 왔지요. 그때는 정말 신명을 바쳐서 일했던 것 같아요. 보수도 미국에서 일할 때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보람이 있었어요. 그때 군용으로 CDMA를 이용한 라디오기술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성공했거든요. 그런데 워낙 엄청난 장비계획이라 미국 제품을 들여오려는 사람들의 음해공작이 엄청났어요. 결국 미국 제품과 우리가 만든 걸 놓고 테스트를 했는데, 우리가 만든 것이 보기좋게 이겼어요. 같이 만든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눈물 흘리고 그랬지요. 그때가 가장 보람 있었어요.


PCS서비스가 처음 도입되던 때를 우리나라 통신산업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던 때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그렇죠. KTF 때도 참 재미있었어요. 꼭 3년 있었는데, 정말 투쟁의 3년이었고(웃음) 고행의 3년이었지만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당시에 다들 PCS 3사 가운데 한솔이 가장 잘할 거고, 그 다음으로 LG가 잘할 거라고 예측했거든요. KTF는 KT가 있으니까 망하지는 않을 거다 하는 정도였고. 그때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3년 동안 직원들이 휴일을 한 번도 쉬지 못했어요. 그래도 정말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그때 회사가치가 35조원쯤이었는데, 제가 직원들한테 회사가치를 60조원까지 올리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지요. 당시에 주가가 30만원까지 오른 적이 있는데, 제 말 믿고 주식을 팔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아직도 미안하죠.(웃음)


앞으로 다른 계획은 없으십니까.

얼마 전 백양사의 서옹 큰스님과 친견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참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참사람의 요체는 진정한 자유로움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자유로움만 가지고는 발전할 수가 없답니다.
뭔가 욕심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남의 행복의 위해 늘 욕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자유롭다는 거지요. 지금은 그런 삶을 사는 구상만 하고 있습니다.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1967년 경기고
1971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1973년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석사)
1976년 미국 듀크대(공학박사)
1976~1982년 NASA 통신위성 및 미국방부 지휘통신자동화체계 설계
1982~1991년 국방과학연구소 통신연구실장, 정보통신부장
1991~1996년 한국통신 통신망연구소장
1997~2000년 KTF 초대 사장
2000~2002년 KT사장
2002년 7월~2003년 2월 정통부 장관
현재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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