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글로벌] 유럽 -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총리 취임
[글로벌] 유럽 -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총리 취임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력 방송사를 여럿 손안에 거느리고 있는 미디어재벌 출신에다 평소 거침없이 보수우파 성향의 행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름난 실비오 베르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다시 전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7월1일부터 올해 말까지 6개월간 윤번제 유럽연합 의장을 맡게 된 것이다.
올해 연말까지 유럽연합 가맹국 내에서 벌어질 크고 작은 일들의 커다란 향방은 모두 베르루스코니 총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연합 내 이웃나라들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은 자연스레 베르루스코니 총리가 유럽연합의 산적한 난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에 쏠려 있다.
하지만 우선은 우려의 목소리가 무척 높은 편이다.
현재 베르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엔 옛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두 극우정당이 당당히 참여하고 있다.
상당한 우파 성향을 띤 그에게 극우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일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유럽헌법 확정 등 역내문제 산적

게다가 그는 평소 러시아와 이스라엘까지도 유럽연합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돌출행동을 보여 주변국들을 늘 긴장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또한 아라파트 수반이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신을 자주 펴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 정세에 기름을 붓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이쯤 되면 가맹국 정부수반이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맡는 게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이탈리아 차례가 되자 주변국들이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해됨 직하다.


실제로 지난 6월초, 베르루스코니 총리는 의회 내 다수권력을 이용해 총리 집권기간 동안 각종 민형사소송에서 면책특권을 부여받도록 하는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여 국내외로부터 한바탕 강력한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가 면책특권 통과에 집착하게 된 것은 80년대 동안 각종 국영회사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재판부를 거액의 돈으로 매수한 혐의가 드러남으로써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루스코니 총리는 자신의 완전한 통제 아래 놓여 있는 의회를 통해 면책특권을 인정받음으로써 이런 압력에서 벗어날 길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국내외의 반응은 무척 싸늘하다.
특히 윤번제 의장국 임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6월30일, 밀라노 법원은 의회를 통과한 면책특권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두고 심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재판부의 최종적인 심리 결과는 윤번제 의장국 임기가 끝나는 내년초나 되어야 나올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어쨌든 베르루스코니에겐 꽤나 신경이 거슬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더 큰 문제는 베르루스코니 총리가 의장직을 맡은 유럽연합이 과연 산적한 난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유럽연합 가맹국들 앞에 놓인 과제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들뿐이다.
우선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불거진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지역간의 관계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되찾지 못하는 한, 세계 정치의 불안정 요인이 더욱 커지는 데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진 탓이다.


특히 침체의 늪에 깊숙이 빠져 든 유럽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일도 베르루스코니 총리에겐 힘든 과제이다.
여기에다 2005년부터 가맹국이 10개 늘어나기 이전에 유럽연합의 미래상을 뒷받침할 유럽 헌법을 확정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지스카르 데스댕 전 프랑스 총리의 주도 아래 마련된 헌법 초안은 지난 6월초 공개된 바 있다.
현재 가맹국 내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초안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가맹국의 인준을 받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모두는 가뜩이나 위구심 어린 눈초리를 받고 있는 베르루스코니 총리를 냉혹한 시험대에 올릴 게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오히려 베르루스코니 총리에겐 다소 유리할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탈리아가 유럽 국가들 가운데 전통적으로 미국에 가장 가까운 태도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논거다.
실제로 베르루스코니 총리는 유럽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앞서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또한 평소 자유무역을 강조해 온 그가 유럽 경제를 대폭 손질하는 데도 적임자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 경제 회생책도 가맹국간 논란

그럼에도 대체적인 평가는 베르루스코니 총리의 의장 임기 동안 유럽연합이 더 큰 혼란에 빠져 들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힘이 실린다.
극우보수주의와 상당히 가까운 그의 정치적 색깔이 가맹국들의 다양한 이해를 조율하기는커녕, 자칫 끊임없이 이웃나라들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윤번제 의장직을 무기 삼아 이탈리아 경제만을 챙기려 나설 경우에도 문제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들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어려운 이탈리아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해마다 700억유로 상당의 공공사업을 벌여 나가겠다는 그의 계획은 큰 논란거리다.
재정지출 규모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유로랜드’의 대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비투자와 국방예산에 지출된 재원은 ‘유로랜드’의 재정적자 기준에서 아예 빼 버리자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경기회복을 위한 돌파구로 감세안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독일도 내심 이런 움직임을 반기기는 마찬가지다.
경기침체에 빠진 가맹국들 사이에서 이런 행보가 본격화할 경우,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3% 내로 엄격히 억제하고 있는 ‘안정성 협약’에 큰 손상을 주는 것은 물론, 그간 힘겹게 한고비 한고비를 넘어선 유럽통합 프로젝트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간 유럽 정치무대의 이단아로 군림하며 늘 화제를 몰고 다녔던 베르루스코니 총리가 앞으로 6개월간 그려갈 밑그림에 커다란 관심과 우려가 쏠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