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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대청마루
[맛집] 대청마루
  • 석창인/ 치과의사
  • 승인 2003.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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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와인과 조우하다

맛있는 식당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거나 미식가들이 유난히 많은 특정 직업군이 있다.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 의료계, 법조계, 언론계, 종교 지도자, 교수 등이 바로 그런 직업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생활 수준과 연관되어 자생적으로 미식가들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접대문화가 만들어 낸 웃지 못할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접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같은 값이면 동급 최강의 식당을 찾기 마련이며, 이는 경향 각지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의 하나이다.
그러나 문제는 접대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일곱 가지 대죄의 하나인 ‘탐식’에 빠지는 경우이다.
평수를 줄여서 이사를 가지 못하는 것과 배기량 줄여서 새 차를 사지 못하는 현상처럼 인간의 탐식욕은 절대로 하향성을 갖지 않는다.
맛 없는 엉터리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 받는 모욕감은 예상 액수에 미달한 부조금를 받았을 때 갖는 배신감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새 정부 들어서 공무원 접대비 상한이 결정되자, 관가 근처의 식당가는 새 메뉴를 짜느라 부산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접대비 상한에 맞추어 식단을 짜 달라는 일부 공무원들의 부탁은 애교를 넘어 식당의 경영 문제에까지 ‘참여’하려는 ‘참여의 과잉’ 즉, ‘참견’은 아닐지 모르겠다.


여의도 방송가에서 가까운 원효로 북단에 방송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청마루’가 있다.
상호에 어울리지 않게 협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소프트웨어만큼은 양반가의 상차림 그 이상이다.
자비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방송국 직원들이 굳이 강을 건너서까지 찾는 이유는 오직 가격 대비 맛의 탁월함 때문이다.


이 집의 수 많은 메뉴 중에서 대표 선수는 와인에 재운 통삼겹살과 항정살, 그리고 청국장이다.
우리나라에 와인 바람이 불기 전부터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 온 전대진 사장은 구입 원가에 최소의 마진을 붙여서 와인을 제공한다.
아마도 전국에서 와인 가격이 가장 싼 식당이 아닐까 싶다.


항정살은 돼지의 목덜미 살이다.
일명 천겹살이라고도 하는데 지방이 천겹 정도로 촘촘히 마블링이 되어 있어서 그 고소함과 씹는 육질감은 소고기의 ‘샤또 브리앙’보다 한참 윗길이다.
모든 돼지고기와 채소류는 농가와 전속 계약을 맺어 최상의 것만 제공받으며 청국장은 집에서 직접 띄워 만든다고 한다.


와인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대나무통에 담겨 나오는 전통 ‘죽통주’를 반주로 삼아도 좋다.
은은한 대나무 향이 도시의 소음을 잠재우고 바람에 일렁이는 산사의 대나무 소리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 대청마루

전화 02-704-8105
위치 용산전자상가 별관 앞, 원효대교 북단 현대자동차 A/S 센터 근처
메뉴 와인 통삼겹살 200g 7천원, 항정살 200g 8천원, 죽통주 4천원, 맛보기 칼국수 2천원, 청국장 4천원, 동태찌개 2인분 9천원, 돌솥비빔밥 4천원, 콩비지찌개 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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