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비즈니스] 건설업계 “화려한 날은 가고…”
[비즈니스] 건설업계 “화려한 날은 가고…”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3.07.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택시장 대세하락 국면 진입…토목·플랜트사업 확장 등 다각화 고심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는 경제학 격언이 있다.
하물며 ‘화려한 만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2~3년 동안 주택시장 과열은 건설업체들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대형 건설업체들의 재무구조는 몰라보게 개선됐고, 신용등급도 상승했다.
대우건설 등 경영난을 겪던 기업들은 건실한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주택시장 호황이 가져다준 혜택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하지만 호황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건설업체들은 고민에 빠졌다.
집을 짓는다고 하면 너도나도 사겠다고 덤비는 ‘행복한 시기’가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건설업체들은 주택시장 호황기에 인원을 늘리고 조직을 확대했다”며 “주택사업 환경이 바뀌면서 업체들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D사, L사, K사, P사 등 건설업체에서 컨설팅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대응이 빠른 건설업체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주택시장 호황 이후를 대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재건축 규제 강화, 수주물량 급감할 듯 주택시장 호황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가운데 몇 달이 지나도 빈 집으로 남아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지역 분양시장 청약열기가 급속히 식고 있다.
7월3일부터 실시된 서울지역 6차 동시분양에서는 일반분양 1925가구 가운데 133가구가 최종 3순위 청약까지 미분양 물량으로 남았다.
가장 많은 청약자가 집중된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도 최근 2년 중 최저 수준인 5.7대 1을 기록했다.
이는 2001년 상반기 평균 청약경쟁률 6.3대 1보다 낮은 수준으로 주택청약시장이 크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기관에서도 최근 주택시장이 대세하락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벌집모형 이론’을 근거로 주택시장이 불황 직전 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벌집모형 이론은 일반 경기 흐름과 주택시장을 연계하는 모형으로 주택 가격과 주택 거래량 변동 관계를 6개 국면으로 나눠 호황, 불황 여부를 진단한다.
김현아 박사는 “현재는 거래량이 줄면서 주택가격이 보합세를 보이는 불황 초기 국면”이라며 “내년 상반기부터 거래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본격적인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원도 심지어 “최근 2~3년 동안 너무 많은 주택이 공급돼 불황이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벌집모형 이론이 국내 주택시장에 적용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5.23 대책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었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더구나 건설업체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던 재건축 시장이 정부의 규제로 제동이 걸린 점이 부담스럽다.
건설업체들도 서서히 주택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대형 건설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능력 10위 안에 드는 업체들은 대체로 10조원 이상의 수주물량을 확보한 상태”라며 “항후 3~4년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주물량이 소진된 이후에도 현재 주택사업 비중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올 7월 이후부터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주물량이 급속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택시장이 다소 침체되더라도 삼성, 대림, LG 등 메이저 건설업체들은 주택사업 비중이 30~40% 수준이고, 나머지 토목, 플랜트, 해외사업 등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입장이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정홍관 연구원은 “메이저 건설업체들은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택시장 침체기에도 영향을 덜 받는다”고 밝혔다.
물론 대형 건설업체라도 주택시장 침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분양 시장이 침체되면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는 배짱을 부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동시분양에 나온 아파트의 평당분양가는 1017만원으로, 평당매매가 902만원보다 12.8%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의 경우 서울 지역의 분양가는 평당 778만원으로 평당가 880만원의 89.5%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시세를 추월하면서 분양가가 시세보다 10% 이상 비싸진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물산 이종섭 차장은 “내부 매감재를 옵션화해서 분양가를 내리는 등 실수요자 위주의 접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사업환경 악화…앞날 캄캄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주택시장이 침체되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인 토목, 플랜트 사업 비중을 늘리겠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주택사업 비중이 60~70%로 메이저 건설업체로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12조원 이상의 수주물량을 갖고 있어 3~4년 동안은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지만 그 이후에는 대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와 관련해 중장기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리모델링 사업을 비롯해 토목, 플랜트 사업을 늘리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벽산건설도 주택시장 비중이 80~90%로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
벽산건설 강상수 차장은 “토목, 플랜트 사업 확대를 위한 회사 내 대책팀이 꾸려진 상태”라며 “당장 주간사로 참여하지는 못하더러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토목, 플랜트 부문에서 시공 경험을 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강 차장은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라고 해도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주택 부문의 매출도 줄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주택사업으로 급성장한 중견 건설업체들도 저마다 토목, 플랜트 부문 진출을 통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토목, 플랜트 부문이 주택시장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공공부문 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는 한 시장규모가 갑자기 커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최저가 낙찰제가 확대되고, 민자 유치 사업의 수익 보장률도 떨어지면서 공공 부문 역시 사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수익성 확보와 사업 다각화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실제 월드건설은 최근 안정적인 현금 수입 확보를 위해 사이판에 있는 호텔을 인수하기로 한 바 있다.
중견 건설업체인 SR개발은 중국 주택시장에 진출했다.
이 업체는 지난달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아파트 1528가구를 분양했다.
SR개발은 2005년까지 총 5400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해외 진출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해외 사업은 ‘안에서 벌고 밖으로 나간다’는 속설처럼 수익성이 높지 않은 편이고, 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그만큼 리스크가 큰 사업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건설업체들은 저마다 주택사업 호황 이후를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