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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 전자업계, 한국 뜨고 일본 지고
[비즈니스] 세계 전자업계, 한국 뜨고 일본 지고
  • 박효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3.08.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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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넘버원? 이젠 코리아! 세계 전자업계를 주름잡던 일본 전자업체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반면, 국내 전자업체들은 승승장구하며 세계 전자업계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지난 1981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VCR의 경우 일본 업체들에 비해 기술, 디자인, 브랜드 면에서 만년 2위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세계 생산량의 50% 이상을 국내 업체가 차지할 정도로 일본을 확실하게 따돌렸다.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등 디스플레이 분야도 일본 업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거나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던 텔레비전 시장도 디지털 텔레비전 부분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휴대전화에서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선두권까지 노리고 있다.
특히 반도체 D램과 휴대전화에 이어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 잡고 있는 PDP·LCD 등 디지털 텔레비전의 경우, 부품에서부터 세트에 이르기까지 핵심 기술력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어, 양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D램은 삼성전자가 지난 92년 일본 기업을 처음 추월해 세계 1위에 오른 이래 무려 12년째 세계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전자산업에서 차지하는 한국과 일본의 위상도 빠른 속도로 뒤바뀌고 있다.
일본 업체들, 합병 통해 살아남기 몸부림 일본 전자업체들의 경영 실적은 10여년간 이어지고 있는 경기 불황으로 갈수록악화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영 실적을 발표한 히타치는 지난 2분기 순손실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3배 이상인 3억2천만달러에 이른다.
히타치는 “아시아 지역에서 소비와 생산이 위축됐으며, 특히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타격이 컸다”고 실적 부진의 원인을 설명했다.
히타치는 또 미국 경기 위축과 일본 내 투자 감소도 실적 부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도시바는 2분기 순손실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배 수준인 3억달러를 넘어섰으며, 후지쓰도 같은 기간 3억4천만달러에 이르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NEC도 수요 위축과 주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2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90.3%나 감소한 7천만달러 수준에 그쳤으며, 일본 3대 전자업체인 미쓰비시전기의 2분기 실적도 순익이 23.3% 줄어든 6억달러 선에 불과했다.
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소니의 경우 지난 1분기만 무려 9억7800만달러에 달하는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휴대전화에서도 소니와 에릭슨의 합작법인 소니에릭슨은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시장인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그동안 수익에 상당한 기여를 했던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부문에서도 예전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소니의 이런 ‘몰락’에 대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소니가 과거에는 고성능 텔레비전 시장의 황제로 군림했으나 LCD와 PDP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읽지 못하는 등 시장의 흐름에 딱 맞는 제품을 내놓는 데 번번이 실패해 이 분야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지난 6월 소니의 신용 등급을 지난 85년 소니에 대한 신용 평가를 실시한 이래 처음으로 종전 Aa3에서 A1으로 낮추었다.
도시바와 NEC도 지난해 ‘세계 정보기술(IT) 불황에 따른 수익률 악화’를 이유로, 무디스로부터 신용 등급이 각각 A3에서 Baa1, Baa1에서 Baa2로 한 등급씩 하향 조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전자업체들은 생산 원가 절감을 위한 해외 진출, 또는 유사 업종간의 합병 등으로 ‘살아남기’ 작전에 돌입한 지 오래다.
도시바는 네덜란드 통신 회사인 KPN에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전화을 1만대 이상 공급키로 계약하는 등 유럽에서 휴대전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산요는 냉장고 부품 생산 자회사인 피에프공업을 쇼와패널시스템과 합병하고 그룹 내 반도체 업체인 산요실리콘전기, 칸토산요전기 등 4개사를 통합했다.
NTT·히타치·마쓰시타 등 3사는 광케이블을 이용한 온라인 차세대 가전 전자상거래를 실현하기로 합의했고, 도시바와 마쓰시타는 액정사업 부문을 통합해 ‘도시바 마쓰시타 디스플레이 테크놀러지’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반도체 D램과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성적은 더욱 참담하다.
D램의 경우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장 점유율 50%대에 육박했던 일본 업체들은 지난해에는 11%대에 머물렀다.
올해는 10%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국 D램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43.8%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본 업체들은 D램 사업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NEC는 영국 스코틀랜드 공장에 있는 2개의 일관가공생산라인(팹) 가동을 중단했고, 도시바도 D램 생산량을 30% 이상 줄였다.
후지쓰도 D램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현재 일본 기업 가운데 세계 D램 시장에서 5위권을 유지하며 그마나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기업은 NEC와 히타치의 합작사인 엘피다메모리가 유일하다.
디스플레이 부문도 마찬가지다.
브라운관의 경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이 세계시장을 지배했으나 한국 업체에 밀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마쓰시타와 히타치가 모니터용 브라운관 사업 철수를 발표했으며, 샤프도 내년부터 브라운관 텔레비전 생산을 전면 중단할 방침이다.
소니 역시 현재 일본 내 브라운관 생산 라인을 전면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엘지필립스디스플레이나 삼성SDI 등 국내 브라운관 업체들은 경쟁사의 퇴출 덕에 오히려 시장 지배력을 높여 가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두 회사의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은 60%에 달했다.
삼성·LG, 투자 규모 일본 앞질러 일본과는 달리 한국 전자산업은 세계적인 정보 기술 수요 침체 등에도 불구하고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해 수출이 연간 15% 이상씩 급신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 투자로 6조원, 연구 개발(R&D) 비용으로 매출액의 7.5%인 약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LG전자 또한 올해 휴대전화, 디지털 텔레비전 등 이른바 ‘승부 사업’에 시설 투자로 7700억원, 연구 개발에 약 1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는 일본 경쟁사들의 투자 규모를 큰 폭으로 넘어서는 수준이다.
주요 산업을 보면, PDP는 LG전자, 삼성SDI 등 국내 PDP 모듈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내년 4분기에는 생산량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졌다.
최근 일본의 PDP 시장조사기관인 TSR가 발표한 PDP 산업 보고서를 보면, LG전자와 삼성SDI 등 한국 업체들의 PDP 모듈 생산 점유율은 올 1분기 33.2%에서 2004년 4분기에는 40%에 이를 전망이다.
보고서는 LG전자의 생산 능력이 올 1분기 월평균 2만장(마더글라스 기준)에서 내년 4분기에 월평균 5만장으로 2.5배 늘어나고, 삼성SDI도 같은 기간 월 평균 1만7500장에서 월평균 4만2천장으로 2.4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 PDP 업체들은 2기 라인에 이어 3기 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05년부터는 LG전자가 월 13만5천대, 삼성SDI가 월 10만5천대로 세계 PDP 모듈 생산량의 5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LCD의 경우도 LG필립스엘시디와 삼성전자의 생산 능력을 더하면 이미 전 세계 생산량의 35%를 상회하는 시장 지배력을 갖췄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LG필립스엘시디는 22.0%의 점유율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10인치 이상의 대형 LCD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삼성전자(20%)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디스플레이서치는 2분기에도 LG필립스엘시디가 23.4%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1위를, 삼성전자도 하위 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20.7%의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상위권을 국내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시에 따르면, 올 2분기 노키아는 34.6%로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했다.
2위는 모토로라(13.4%), 3위는 삼성전자(10.1%)가 각각 차지했다.
LG전자는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소니에릭슨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5위에 진입했으나, 2분기에는 소니에릭슨이 LG전자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다시 5위에 복귀했다.
LG전자 우남균 사장은 “국내 전자업체가 차세대 캐시카우로 떠오르고 있는 디스플레이와 이동단말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세계적인 기술력과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부단한 연구 개발 노력과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한국 전자산업이 일본을 딛고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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