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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온라인 바둑, 유료화 1년
[비즈니스] 온라인 바둑, 유료화 1년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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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체 유료화 1년 성공적 평가…다양한 부가서비스, 신규 콘텐츠 발굴이 관건


국내에서 ‘바둑 좀 둔다’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3년 전 한 조사 기관은 국내 바둑 인구를 1천만명으로 집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군대에서 바둑돌 한번 잡아 본 사람까지 포함한 것”이란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공배’를 뺀 바둑 인구를 ‘계가’해 본다면? 물론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자신의 기력을 파악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바둑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은 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바둑은 아직도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기엔 흡입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한가로이 바둑판 앞에 앉아 수담을 나누는 건 여전히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바둑을 다시 활성화시킨 주역은 PC통신과 인터넷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애기가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낸 것이다.
바둑업계는 500만 바둑 인구 중 100만~150만명이 정기적으로 바둑 사이트를 이용하는 ‘e애기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e바둑계에 또 다른 획을 긋는 사건이 지난해 중반에 일어났다.
업계 1, 2위를 다투던 네오스톤 www.neostone.co.kr과 사이버오로 www.cyberoro.com가 유료화의 깃발을 내걸고 새로운 수익 모델에 도전한 것이다.
바둑 팬들의 거친 항의가 연일 이어졌다.
일부 회원들의 이탈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국내 바둑계에 조용한 파란을 일으킨 온라인 유료화의 성과는 어떻게 됐을까.


사이버오로, 지난해 11억원 매출 올려

지난해 7~8월에 걸쳐 유료화에 들어간 주요 업체들의 이용료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대략 월 5천원 안팎의 회비를 내야 한다.
50만원 안팎의 회비를 내는 평생 회원으로 가입하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평생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에 대국실은 이용할 수 있지만 생중계나 기보 해설, 홈페이지 강좌 등이 제한된 월 3천원 안팎의 저렴한 요금제도 있다.
일부 업체는 500원 정도의 요금으로 하루 동안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소액 요금제도 운영한다.
또한 엠게임의 넷바둑 www.mgame.com처럼 게임포털 사이트의 서비스 중 하나로 바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대국 서비스 등은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월 5500원의 골드 회원에 한해 기보 저장이나 생방송 보기 등의 부가 서비스를 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들 업체가 한 해 동안 거둬들인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대표적인 업체들의 성적표를 뭉뚱그려 보면 일단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우선 회원수 면에서 국내 1위 업체인 네오스톤은 8월초 현재 2만명 가량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전체 220만 회원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비율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대국 서비스를 여전히 무료로 제공하는 상태에서 ‘전적 보기’와 ‘대국 초청’ 등 10여가지 기능을 유료로 제공하는 방식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한 번 이상 유료 서비스를 이용한 회원은 6만명에 이른다.


한국기원의 자회사인 세계사이버기원의 사이버오로도 나름의 성과에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다.
지난해 7월15일 사전 예약을 거쳐 8월1일부터 유료화에 들어간 사이버오로는 유료화 한 달 만에 3만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회원들의 로열티가 높은 마니아 스포츠란 바둑의 특성이 입증된 것이다.
애당초 세계사이버기원 쪽은 연말까지 3만여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면 손익을 맞출 것으로 내다봤으나, 불과 한 달여 만에 이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힘입어 사이버오로는 지난해 3만5천명의 유료 회원에 1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공적인 ‘착점’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다른 사이트보다 늦은 지난해 3월 문을 열었음에도, 모기업인 한국기원이 주관하는 각종 프로 기전의 생중계 서비스와 기보 관람 등을 제공한 점이 짧은 시간에 많은 회원을 확보한 비결로 꼽힌다.


세계사이버기원 류승필 팀장은 “대부분의 온라인 바둑 서비스 업체들은 유료 회원을 통한 수익이 전체의 80% 이상이다”며 “몇몇 게임포털 업체들과의 제휴도 추진 중이므로 빠르면 올 가을께부터 새로운 수익원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엠게임의 넷바둑은 다양한 부가 서비스로 수익을 올리는 대표적 사례다.
바둑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접속한 회원들을 자연스레 주력 서비스인 고스톱이나 포커 등으로 유도할 수 있는 데다 아바타 등을 통한 수익도 꽤 짭짤하다.
이 밖에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등 내로라하는 프로 기사들이 주주로 참여한 대표적 무료 바둑 사이트 타이젬 www.tygem.com도 오는 하반기부터 유료 서비스에 들어갈 방침이다.
타이젬은 일단 올해 안에 4만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프로 기전 생중계 독점권 비판도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마니아 스포츠라는 바둑의 특성상, 유료 회원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그 다음부터는 급격한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
유료화 원년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던 주요 사이트들이 올해 들어 유료 회원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에 대해 넷바둑의 성준호 마케팅팀장은 유료화에 대한 회원들의 인식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성준호 팀장은 “기본적으로 회원들은 온라인 바둑은 무료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이 때문에 넷바둑도 초기에 바둑 서비스 유료화를 고려했다가 정책을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처에 널려 있는 무료 사이트들도 이에 한몫하고 있다.
특히 게임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바둑 서비스의 경우, 전문 바둑 사이트처럼 다양한 서비스는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수담을 나누기엔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좀 더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로 유료 회원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네오스톤의 주민호 팀장은 “지금의 수익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며 “다양한 부가 서비스와 안정적인 시스템, 신규 콘텐츠 발굴 등을 통해 회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유료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사이버기원 류승필 팀장 또한 “온라인 바둑 업체들의 마케팅 능력이 아직까지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다양한 제휴를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조심스레 꺼내 들기도 한다.
이른바 한국기원의 ‘독점’ 때문에 바둑 콘텐츠 보급이 불균형하다는 지적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한국기원이 프로 기전 생중계나 기보 관람 등의 콘텐츠를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어 특정 업체가 이득을 보고 있다”며 “바둑계를 위해 대국적 견지에서 공평한 콘텐츠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져야 업계가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온라인 바둑판의 ‘공정한 계가’를 주문했다.


지난 7월말, 타이젬이 주최하고 동양생명이 후원하는 총 상금 1억40만원의 ‘동양생명배 타이젬 바둑 오픈’이 9월께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기전이 유료화 1년을 맞은 시점에서 국내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었다.
그만큼 국내 온라인 바둑 인프라가 탄탄히 구축됐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다.
유료화 1년을 맞은 온라인 바둑 업계가 재도약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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