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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유통업계, 전단 마케팅
[비즈니스] 유통업계, 전단 마케팅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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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한해 수억부씩 배포…집객 효과 높아, 마케팅 예산 절반 할애하기도


몇 년 전 광주 지역의 한 백화점에선 직원들이 인근 아파트로 총출동해 광고 전단을 뿌리고 다니는 해프닝을 벌였다.
사연은 이렇다.
하루 전날 경쟁 백화점이 대대적인 사은 행사를 실시한다는 전단을 전격 배포한 것이다.
미처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던 이 백화점에선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곧바로 경쟁사에 대응할 만한 할인 행사를 기획하고 밤을 새워 전단 제작까지 마쳤다.


하지만 문제는 배포망이었다.
일요일은 전단지를 끼워 넣을 수 있는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전달할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결국 백화점 직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전단을 직접 전달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온라인을 활용한 마케팅 기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지만, 유통업계에선 여전히 종이의 위력이 막강하다.
광고 전단을 둘러싼 전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광고 전단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은 단연 오프라인 유통의 대표 주자 격인 백화점과 할인점이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빅3 백화점은 주 2회씩 광고 전단을 내보내고 대형 할인점들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 2~7회까지 낸다.
광고 전단은 직간접적으로 매출 상승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전단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수도권 12개 점포를 기준으로 2억부 가량의 광고 전단지를 뿌렸다.
롯데백화점 신재호 판촉팀장은 “전단은 다양한 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백화점 이용의 보물 지도와 같다”고 말한다.
현대백화점은 점포 수에 비해 전단량이 훨씬 더 많다.
지난해 서울 지역 6개 점포에서 나간 광고 전단이 무려 2억9120만부. 올해는 3억3280만부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삽지 과정서 경쟁사간 정보 빼가기 전쟁

전국적으로 점포수가 54개나 되는 신세계 이마트도 연간 전단 발행부수가 2억만부를 훌쩍 넘긴다.
기획 행사가 많은 백화점처럼 주 2회씩 꼬박꼬박 발행하지 않고 한 달에 두세 차례만 발행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이마트 방종관 마케팅팀장은 “현재 국내에 1500만 정도의 가구가 있다고 치면,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정기적으로 이마트 전단을 보는 셈”이라고 말한다.
이마트는 마케팅 예산의 절반 이상을 전단 발행을 위한 비용으로 쓰고 있다.


이렇게 광고 전단을 많이 발행하는 이유는 구체적인 고객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신세계가 백화점을 찾은 고객 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광고 전단을 보고 온 사람이 전체의 60%에 달했다.
내점 고객의 상당수가 구매 고객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출로 이어지는 효과도 크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TV나 신문 광고에 비해 지역 상권에 맞는 특화된 상품 정보나 이벤트 등을 알릴 수 있는 전단은 집객 효과를 높이는데 주요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TV나 신문 광고 비용은 줄여도 광고 전단은 쉽게 줄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인점에서도 광고 전단을 잘 만들면 10~30%까지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누가 더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전단을 내놓을지를 놓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곤 한다.
국내에서 유통업체의 광고 전단은 흔히 각 가정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집 주변에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두서너 곳만 있다고 쳐도 한 달에 20차례 이상 광고 전단을 보게 된다.
눈길을 끌지 못하는 전단은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단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걸까. 백화점에선 각종 기획 행사나 이벤트, 할인점에선 좀 더 파격적인 가격 정보가 성패를 좌우하곤 한다.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전단이 나가기 때문에 자사 정보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고 경쟁사의 정보를 빼내는 것이 다반사다.


경쟁이 심하게 붙을 때는 인쇄하던 전단을 전면 중단시키고 새로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예 인쇄가 끝난 전단을 조용히 폐기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마트 방종관 팀장은 “동일한 상품을 경쟁사에서 더 싼 가격에 내놓게 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번 제작할 때 비용이 7억~8억원씩 들기 때문에 정보에서 밀리게 되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정보는 주로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다.
‘삽지’가 잘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문사 영업지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경쟁사의 전단지를 커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까르푸 박지영 광고부장은 “전단 제작은 기획 단계부터 치면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계속 가격 조정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라며 “경쟁이 붙다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가는 경우도 많아 업체명을 가리면 어디서 나온 전단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게 팔 수만도 없기 때문에 아예 문제 아이템을 전단지에서 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쟁사에 맞서 더 이상 가격 조정을 하기 힘든 경우에 말이다.


전단을 다양하게 구성해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이나 환경보호 캠페인은 유통업체들의 전단지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 무더운 여름날 ‘얼음 위에 오래 서 있기’ 등의 이벤트로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아예 전단지 한켠에 할인 쿠폰을 만들어 이를 통해 방문율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쟁사가 쉽게 따라오지 못할 행사를 기획하는 것만큼 확실한 승부수는 없다.
이마트는 매출이 부진한 시기인 8월을 겨냥한 신상품을 해마다 미리미리 준비한다.
지난해는 김천, 상주 등 유명 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1천만송이 이상의 포도를 매일 직송해 남들보다 조금 빠른 시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내놨다.



단순 가격 정보보다 특화된 이벤트로 유혹

신세계 정병권 판촉팀장은 “할인점에 비해 백화점의 광고 전단은 ‘이미지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백화점은 고객이 대접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가격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백화점들이 전단지의 첫 페이지를 좀 더 비주얼하게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람 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단 한 사람 당신을 위하여.”(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세일은 파티, 행운이 숨어 있는 파티”(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들리세요? 바닷가의 파도 소리, 상쾌한 여름의 감각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롯데백화점 본점). 최근 백화점 3사가 내건 전단지 제목들이다.
갈수록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전문적인 패션 일러스트를 활용해 표지를 만들고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정보를 가미한 전단을 월 4회 발행하고 있다.
매거진과 카탈로그를 결합한 ‘매가로그’를 지향하고 있는 것. 이를 위해 20대 고객 중에서 패션 전문기자를 4명 뽑기도 했다.


한편 앞으로는 제작 비용을 최소화시키면서도 구매 적중률을 높이는 방향의 마케팅에 좀 더 비중을 둘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백화점 카드 회원을 대상으로 한 DM 발송을 강화하거나 인터넷 전단의 활용도를 높이는 식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에 비해 10% 가량 DM 발행 횟수와 쿠폰북의 두께를 늘렸다.
신세계도 DM 발송 예산을 올해 들어 20% 정도 늘렸다.


아울러 고객의 구매 취향을 꼼꼼히 분석한 뒤 DM의 내용을 달리하는 것도 갈수록 정교해질 전망이다.
한 달 전에 화장품을 구매한 고객이 이번 달에는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를 미리 예상해 보고 그에 맞는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불황 속에서도 매출 증대를 위한 유통업계의 숨은 노력은 이렇게 곳곳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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