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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알짜기업 진로의 ‘진로’는?
[비즈니스] 알짜기업 진로의 ‘진로’는?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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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가치 높아 청산은 면해…외국계와 토종 채권단 대립 속 홀로서기 묘수 없어 지루하게 끌어오던 진로 문제가 일단 ‘회생’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지난 8월27일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진로의 운명을 좌우할 채권자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양대 채권자인 대한전선과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300여 국내외 채권자들이 참석했다.
당초 이날 집회에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해외투자자들의 진로 채권 보유 규모가 밝혀질 예정이었지만 9월24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1차집회에 대한전선과 골드만삭스가 참석한 것은 의미가 크다.
양대 채권자의 발언이 진로의 앞날은 물론 다른 채권자들의 이익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날의 최대 관심사는 삼정회계법인이 내놓은 실사 결과였다.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결과에 따르면, 진로의 계속기업가치는 1조3232억원으로 나왔고 청산가치는 6279억원으로 계속기업가치가 6953억원이나 더 높게 나왔다.
이에 따라 진로는 청산절차를 밟지 않고 법원의 관리하에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법원은 실사 결과에 따라 진로에 “사업을 계속한다”는 내용의 정리계획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로써 진로는 2003년 12월까지 정리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회생 이유 “청산 해봐야 실익이 없다”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결과에 대해 진로 관계자는 “어차피 청산을 해봐야 채권단에게 돌아가는 몫이 작기 때문에 계속 회사를 유지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또 다른 진로 관계자는 “법정관리하에서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높게 나오는 실사 결과는 단지 형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장 회사를 매각할 경우 건물과 기계를 포함한 자산가치가 보수적으로 평가돼 당연히 계속기업가치보다 낮게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로를 청산할 실익도 명분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진로만을 놓고 보면 법정관리회사임에도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002년에는 영업이익이 1100억원을 넘어섰고, 2003년에는 7개월간 960억원에 이른다.
단순히 영업이익만을 놓고 본다면 청산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일 뿐만 아니라 연간 영업이익이 1천억원이 넘는 알짜기업 진로가 법정관리까지 가게 된 사연은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로는 당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계열사를 확장하고 진로가 모기업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경영미숙으로 계열사가 부실화되면서 모기업인 진로마저 무리한 자금지원으로 동반부실을 초래하게 됐다.
결국 지난 97년 한보와 삼미그룹 등의 부도로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진로의 자금사정이 악화돼 98년 화의인가 결정을 받고 2003년에 결국 법정관리까지 가게 됐다.
이원 진로관리인도 “관계회사에 대한 무리한 자금지원과 자구계획의 실패가 진로를 법정관리까지 오도록 만들었다”고 밝힌다.
진로의 계열사 자금 지원규모를 살펴보면 98년 9월말 기준으로 출자금 1208억원, 대여금 1조3262억원, 지급보증 7482억원으로 모두 합치면 2조1952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조4천억원은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고 지급보증금 가운데 상당 부분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화의절차 개시 후 진로는 부동산 매각, 대여금 회수, 외자유치 등 자구안을 실시했지만 자금조달 목표액인 520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2천억원만을 마련했다.
게다가 2000년 2월에는 얼라이드 도멕사와 합작 설립한 진로발렌타인스 위스키사권과 자산을 1400억원에 양도했지만 이 자금을 화의채무에 사용하기보다는 자기채권 매입에 사용해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이원 관리인은 “당시에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화의조건이 제시됐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2003년 3월말 화의인가 조건대로 채무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해지자 채권자 가운데 하나인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2003년 4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진로가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갈 때만 해도 말이 많았다.
세나인베스트먼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할 시기에 진로는 이미 외자유치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진로 관계자는 “세나인베스트먼트를 앞세운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투자유치를 방해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골드만삭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장 큰 이유로 진로 관계자는 “진로 자체로만 봤을 때는 수익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진로가 매각 절차로 들어가면 골드만삭스가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영향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진로가 나름대로 자력으로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는데 골드만삭스가 자신들만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단 진로는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를 초과하기 때문에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진로가 계속기업가치를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우선 금융비용이 영업이익을 훨씬 넘기 때문에 채권단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삼정회계법인 실사 자료에 따르면, 93년부터 2002년까지 영업이익 누계액은 7500억원에 이르지만 이자비용은 1조2100억원으로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의 2배 가까이 된다.
때문에 진로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관계회사에 대한 지급보증의 상당 부분 면제와 정리채권 등의 일부 출자전환, 이자율 감면 등의 조치가 필수적이다.
이런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11년간 영업활동에서 창출된 현금 1조4천억원으로 현재의 총채무 2조3천억원을 상환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운영자금의 안정적인 조달이 불가능해 계속적인 회사 운영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최근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외국 투자회사들이 진로 채권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최근 JP모건은 무담보채권 932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골드만삭스가 2800억원의 무담보채권을 가지고 있으니 외국계 채권은 총 5800억원에 이른다.
이들 외국계 채권을 모두 모으면 거부권 행사 조건인 총무담보채권 1조4천억원의 3분의 1을 넘게 되어 마음대로 진로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진로 관계자는 “제3자 매각을 통해 몇 배의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이 채권 매입에 열을 올린다”고 설명한다.
이자비용에 자금 조달없인 운영 불가능 물론 최대 담보권자인 대한전선이 외국계 투자회사들을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지 않다.
대한전선은 6월과 7월에 총 2595억원어치 진로 채권을 사들여 총 담보채권 3500억원의 4분의 1을 확보했다.
이로써 대한전선도 외국계 투자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정리계획안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게 됐다.
최근 양상을 보면 마치 진로 문제는 대한전선과 외국계 투자회사의 대리전으로 비춰지고 있다.
사실 수익성이 높은 회사가 법정관리로 들어갈 경우는 ‘제3자 매각’이 정형화된 공식인데 외국계투자회사와 대한전선 가운데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진로가 매각될 경우 국내 사업 부문과 일본 사업 부문의 분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어쨌든 진로는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결과로 ‘청산’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은 피하게 됐다.
하지만 채권자들과 법원의 판단에 따를 뿐 진로가 스스로 일어서는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이원 관리인은 “신상품 개발을 통해 공격경영을 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듯하다.
침몰하는 ‘진로호’의 운명은 진로가 12월12일 제출 예정인 ‘자구계획안’에 대한 채권단의 반응에 달려 있다.
진로사태 일지 1997년 9월 진로그룹 부도 화의 신청 1998년 3월 진로 화의인가 결정 2003년 4월 골드만삭스 계열 세나인베스트먼트 법정관리 신청 2003년 5월 진로 법정관리 결정 2003년 6월 진로 채권신고 마감 2003년 8월 진로 제1차 채권자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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