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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동차-‘노랑차’에서 고급형 SUV까지
3. 자동차-‘노랑차’에서 고급형 SUV까지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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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첨단차 ‘붕붕’ 국내 자동차산업은 50년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산업’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에 들어서 거의 폐차상태에 이른 군용트럭과 지프 등 미군에게 불하받은 차량이 전국에 운행되면서 비로소 산업으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5인승 미니 합승버스 2천여대를 만든 것이 번창의 전부였다.
이 합승버스는 서울에서 운행될 때는 노란색 페인트 칠을 하고 다녔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노랑차’라고 불리기도 했다.
자동차산업은 1962년 정부의 본격적인 자동차공업육성 계획에 따라 기틀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그해 생산 규모는 고작 2600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거의 모든 부품과 외장재를 미국과 일본 등에서 들여다 조립만 하는 데 불과했다.
60년대만 해도 자동차는 일반 국민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때 먼지 내며 털털거리면서 국도를 달리던 서울∼부산간 버스요금은 3만4천환. 당시 쌀 한 가마니가 8만환이고, 자장면 한 그릇이 1800환이었으니, 웬만한 부유층이 아니고는 감히 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요금이었던 것이다.
포니 이어 스텔라, 국산차 대중화 열어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은 현대자동차가 76년 출시한 ‘포니’다.
현대차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국내 기술진의 힘으로 이뤄낸 최초 작품이다.
한국인의 취향과 체격, 그리고 도로 사정에 맞는 경제형 차인 데다가 내구성이 좋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에게 마이카 시대의 가능성을 열어준 차였다.
포니가 나온 뒤 승용차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했던 중형차는 밀려나고 소형차시대가 열릴 정도였다.
하지만 포니의 탄생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현대차가 포드와 자본 협력에 실패하면서 독자적인 모델 개발이 시급해지자 내놓았던 자구책이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지만 현대차로선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여기에 그해 7월 에콰도르에 5대가 처녀 수출되면서 포니는 자동차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물건’이 되었다.
당시 포니의 차값은 227만3270원이다.
그래도 자동차의 대중화는 다가오고 있었다.
국산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차종으로는 단연 현대차의 ‘스텔라’가 꼽힌다.
스텔라는 83년부터 97년 단종되기까지 무려 14년 동안 판매돼 국내 최장수 모델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은 ‘9가지 시리즈’가 출시될 정도였다.
더 재미있는 건 새로운 베스트셀러카 ‘쏘나타’의 시초가 스텔라였다는 사실이다.
‘프라이드’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대중화의 선두 차종이다.
당시엔 생소했던 해치백 스타일이 주는 독특한 디자인의 매력과 파격적인 가격은 아직도 대중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실제로 프라이드의 런칭은 특이했다.
설계는 일본의 마쯔다가, 생산은 기아에서, 판매는 포드에서 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포니의 경쟁상대로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차의 위상을 한껏 높이기도 했다.
특히 5도어나 왜건은 미국시장에서 포니에 이어 인기를 끌었던 아반떼를 견제하기 위한 발 빠른 변신으로 평가된다.
80년대 중반에는 수출 주력 모델이 많이 등장했다.
현대차는 ‘엑셀’과 ‘프레스토’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시장에 뿌렸다.
대우 역시도 월드카 프로젝트를 내세워 ‘르망’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심지어 르망의 이름은 ‘르망 24시간 레이스’로 유명한 프랑스의 지명을 딴 것이다.
특히 현대차가 85년 내놓은 야심작 ‘쏘나타’는 5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치면서 미국시장에 최근까지 가장 많이 팔리는 한국 차로 유명하다.
티코·마티즈, 최고 연비로 인기 구가 91년 출시된 ‘티코’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승용차로, 연비절감 효과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특히 97년 IMF 쇼크 이후에는 ‘티코’나 ‘마티즈’ 등 경승용차가 최고의 인기 모델로 등장했다.
특히 이들 경차는 서유럽을 타깃으로 제작돼 유럽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마티즈는 유선형의 디자인에 화려한 컬러로 폭넓은 인기를 모았다.
특히 깜찍한 마티즈 디자인은 서유럽 딜러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대단했다.
2000년에는 폴란드에서만 6만4066대를 팔면서 동유럽 시장 ‘베스트 카’로 꼽히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국내 시장에선 지금도 단연 최고의 연비 차종으로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 2000년 들어서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모델이 많았다.
현대차는 기존의 아반떼에서 쏘나타에 이어 스포츠유틸리티(SUV) ‘싼타페’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전략을 적중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국내에서도 SUV 열풍을 몰고 왔다.
기아차의 ‘쏘렌토’와 쌍용차의 ‘렉스턴’은 SUV 열풍을 잘 이용해 인기 차종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에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친환경적 차량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한다.
완성차 메이커들도 안전하고 쾌적한 차를 만들기 위해 연료전지나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등 저공해·무공해 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1. 1960년대 = 코티나, T-600 새나라자동차가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 승용차를 SKD 방식으로 생산해 최초의 국산 승용차가 탄생된다.
이후 현대차가 포드와, 아시아차가 피아트와, 기아산업이 독자적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면서 자동차시장이 4원화 체제에 접어들게 됐다.
2. 1970년대 = 포니, 피아트 현대차는 76년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 포니를 출시하며 처녀 수출에 성공해 국내 자동차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78년 새한자동차는 산업은행의 보유지분이 대우그룹에 넘어감으로써 대우차로 출범했다.
3. 1980년대 = 스텔라, 쏘나타, 프라이드, 르망 89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되면서 기아는 프라이드로, 현대는 포니에 이어 엑셀과 프레스토로 수출 전략 기지인 미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대우는 르망을 앞세워 유럽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4. 1990년대 = 아반떼, 세피아, 티코, 마티즈 한국은 96년에 28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춰 세계 5위 생산대국으로 부상했다.
반면 IMF 쇼크로 내수시장이 붕괴하면서 기아차와 대우차가 몰락하고, 삼성차와 쌍용차가 매각되는 혼란의 시대를 맞게 됐다.
5. 2000년대 = 싼타페, 쏘렌토, 라세티, SM5 국내시장이 현대차의 독주시대로 접어들었다.
현대차는 자체 기술력만으로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EF쏘나타와 아반떼, 싼타페 등은 한국차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
6. 2010년대 = 싼타페(연료 전지차) 미래지향적 첨단 장치의 개발로 한층 안전하고 쾌적한 저공해 차나 대체에너지 차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완성차업체들도 대부분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차 등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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