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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그룹 정보팀, 그 베일을 벗긴다
[커버] 그룹 정보팀, 그 베일을 벗긴다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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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일상적인 경영활동과 별도로 정보팀을 가동하며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정보전을 펼치고 있다.
모 그룹의 정보팀은 국가 정보기관보다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다.


삼성과 LG, SK, 현대자동차 등 4대 그룹이 로비스트를 쓰는 일은 드물다.
대형 게이트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그룹에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그룹 총수에서 말단 사원까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실력자와 선이 닿는 사람은 누구나 차출하는 것이다.
삼성은 1년에 한 번씩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상대로 인맥 조사를 하는 이른바 ‘호구조사’를 실시한다.
정치인과 공무원, 법조인, 언론인 등 친분이 있는 사람을 모두 써내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정보 라인을 구축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기업의 정보조직은 단편적인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실체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Economy21'은 기업정보팀과 지하정보시장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주요 그룹 정보조직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재계는 물론 정관계·언론계 동향까지 수집

국내 기업정보팀의 모체는 80년대 중반 삼성물산과 대우종합상사가 각각 만든 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종합상사의 다양한 사업영역에 정보가 승패의 절대적 열쇠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보시장에서는 이 두 기업에서 활동했던 정보맨들을 ‘정보 1세대’라고 부른다.
요즘엔 회장 직속의 별도조직으로 순수정보팀을 운영하는 기업이 많다.
주로 삼성과 LG, SK, 현대차, 코오롱 등 재벌그룹들이다.
그만큼 기업정보팀의 활동영역과 비중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외에 몇몇 기업들도 정보활동을 하고 있지만, 주로 홍보팀에서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정보팀을 자랑하는 그룹은 두말 할 나위없이 삼성이다.
그 정보력은 이미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을 정도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의 정보력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심지어 국가정보원의 정보력을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할 만큼 실로 가공할 만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삼성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뛰어난 정보력 때문이라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시장에서는 삼성이 청와대보다도 김일성 주석 사망 등을 먼저 포착할 만큼 막강한 네크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정보력, 국가정보원 수준 평가

이처럼 삼성이 가동하는 정보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정보에 대한 삼성의 남다른 인식과 정보수집 활동의 적극성에서 나온다.
삼성에 다니는 모든 임직원은 사실상 삼성의 정보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의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자신들의 인적 인프라를 통해서 듣는 각종 이야기들 가운데 정보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여지없이 사내 전산망에 올린다.
이들 정보는 각 계열사 홍보팀에서 수집·분석해서 새롭게 가공한다.


삼성 정보조직은 그룹 구조조정본부(본부장 이학수 사장)의 기획홍보팀(팀장 장충기 부사장) 내에 있다.
이 팀내에서 순수 정보를 전담하는 부서인 전략지원그룹이 바로 삼성그룹 정보수집의 핵심조직이다.
그룹 책임자는 국정원 출신 변종경 전무이고, 차장급 이상 10여명의 베테랑들이 포진해 있다.
팀원들은 정보기관원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맥이 두터운 공채 출신의 순수 삼성맨이다.
전략지원그룹은 정계 및 관계, 재계는 물론이고 국정원, 검찰, 경찰, 군, 학계, 언론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인터넷 언론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성의 정보력은 기획홍보팀과는 별도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밑에 구성된 대외협력단에서 나온다.
대외협력단은 삼성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때 만들었던 조직이다.
윤석호 전무가 단장으로 있는 대외협력단은 정·관계 인맥이 두터운 200∼300명의 계열사 임원으로 구성된 비상설기구다.
각 임원들 아래 차장급 직원 1∼2명이 실무를 담당하며 뒤를 받치고 있다.
대외협력단은 한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정보회의를 열어 수집된 정보를 구조본에 보고한다.
그러나 전략지원그룹이 경계경보를 발하면 즉각 움직이는 비상대기 시스템이 확립돼 있다.
대외협력단 임원들의 활동실적은 해당 계열사 사장의 인사고과에도 반영되고 있어 계열사 사장들이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삼성은 계열사별로 별도의 정보팀을 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전국 5개 권역의 지방정보와 해외정보는 대외협력단과 해외지사 및 주재원, 연구원들이 수집하고 있다.


삼성은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 최근 기존의 정보조직과는 별도로 분석팀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분석팀은 각종 라인을 통해 보고된 정보와 사내 전산망의 잡다한 정보를 면밀하게 분석해 이른바 ‘가지치기’를 통해 최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는 이건희 회장에게 올라가고, 비공식적으로는 이재용 상무에게도 보고된다.



LG·SK, 정관계까지 활동 영역 확대

삼성에 이어 정보수집 활동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룹이 바로 LG다.
LG는 정도경영추진본부(본부장 강유식 부회장) 소속의 LG경영개발원 안에 경영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다.
전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정재호 부사장이 팀장이며 과장급 이상 10여명의 핵심인력이 정보수집 활동을 펼치고 있다.
LG의 경영정보팀은 경영자문이라는 전제하에 정계 및 관계, 재계, 증권 등의 동향 정보에 초점을 맞춰 활동한다.
다른 그룹의 정보팀 관계자는 “LG는 특히 대선과 총선, 국정감사 전망 등 정치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경쟁사에 대한 정보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귀띔했다.


LG는 지난 4월1일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정도경영추진본부로 개편하면서 국정원 간부 출신인 김동식 상무를 영입해 정보수집에 한층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 상무를 영입한 것은 IMT-2000 사업과 관련해 정보팀의 모든 역량을 동원, 사업자 선정에 주력했으나 사업자에서 탈락한 데 따른 충격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상무는 그룹내 정보맨을 상대로 정보수집 활동 및 방법 등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김 상무의 교육 덕택에 LG는 그 어느 때보다 심층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기업 정보맨들의 평가다.


SK그룹은 삼성이나 LG에 비해 정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그룹에는 별도의 정보팀이 없으며,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정보팀이 활동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올해초 조직개편을 통해 대외업무를 담당하던 CR(Corporate Relations) 부문을 사장 직속 CRC(Corporate Relations Center)로 승격시키고 정통부 공보관 출신 서영길 부사장을 영입했다.
이 CRC 내의 CR전략실(실장 이형희 상무)에서 정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CR전략실내 CR전략팀의 과장급 이상 정보맨 10여명이 정보를 수집한다.


SK텔레콤은 최근에는 최재원 부사장이 총괄하는 CC(Corporate Center)에 기존 정보팀과 별도로 경영전략실(실장 유현오 상무) 밑에 전략분석팀을 새롭게 가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팀에서는 재계 및 경제계 정보수집에서 정·관계로까지 정보수집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정보수집 활동 차원과 별도로 그룹의 민원해결 창구로 주요 언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도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K그룹이 정보력 강화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 구속 이후 정보팀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하고 있어서 경쟁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는 기획총괄본부(본부장 정순원 사장) 내에 전략기획실을 운영하고 있다.
우시언 상무가 전략기획실을 총괄하고 있으며, 그 밑으로 장재호 전략기획팀장이 정보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우시언 상무는 옛 현대그룹 정보팀 출신으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 밑에서 일했던 사람으로는 보기 드물게 현대차 정보팀에서 일하고 있어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CJ·코오롱 등도 별도 팀 운영

현대차는 사업 특성상 산자부를 비롯한 정부기관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협력팀의 정보력이 강하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에 신설된 마케팅총괄본부(본부장 최한영 부사장)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정보맨들의 중론이다.
마케팅총괄본부의 마케팅전략팀(팀장 김방신 부장)에서 5∼6명 정도의 인원으로 새로운 정보조직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보조직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정의선 부사장에게까지 보고서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 부사장은 우시언 상무와 다르게 정몽구 회장의 가신 격으로 정 회장의 지원 아래 그 위상이 점차 강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밖에 CJ그룹과 코오롱그룹이 삼성이나 LG, SK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별도의 정보팀을 운용해 나름대로 정보력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기업 정보팀들도 역시 삼성, LG, SK 등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CJ는 지난해 사설정보회사들의 정보거래 시스템과 동일한 방식의 정보망을 구축하려 했다가 포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롯데그룹 역시 그룹차원의 정보수집 활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그룹 홍보팀이 정보수집에 나서고 있으며, 주로 경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기업의 정보맨들은 학연과 지연을 총동원해 출입처 실력자들에게 접근한다.
핵심인사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업은 정보맨에게 절대 권한을 주고 활동비를 전폭적으로 지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정보맨은 “흔히 정보맨 한 사람이 쓰는 활동비는 한달에 최대 2천만원에 이르기도 한다”며 거의 무한대로 봐도 좋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정보라인의 강화가 결국 기업활동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기업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조직과 방법으로 모은 정보는 그 기업이 기업활동을 하는 데 주요한 정책결정의 자료로 활용된다.
이 정보가 기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그룹 K부장은 “최근에는 더욱 검증된 고급정보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정보팀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기업 사이에 경쟁이 강화될수록 정보팀의 위상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각 기업에서는 정보조직의 실체를 대외비에 붙이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고, 정보맨들의 대외활동에도 제약이 따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명이 확인된 정보맨들에게 이 확인 전화를 했을 때 이구동성으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앞으로 권력은 정보를 누가 정확하고 빠르게 많이 소유하느냐에 따라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늘날 기업 활동에 있어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보팀의 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손꼽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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