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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G7 후폭풍 몰려오나
[포커스] G7 후폭풍 몰려오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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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달러' 딜레마 속 아시아 국가들 통화절상 압력 더욱 거세질 듯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역시나 ‘한국시장’은 한국에 있지 않았다.
‘유연한 환율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G7 재무장관 회의 성명서가 날아든 직후, 국내 외환시장은 두바이발(發) 쇼크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장이 새로 열린 9월22일 하루 동안 원/달러 환율은 16.8원이나 떨어져 34개월 만에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직접적인 기폭제는 물론 엔화가치의 가파른 상승이었다.
이날 장중 한때 엔화가치는 111엔대 전반까지 단숨에 뛰어오르기도 했다.
정부당국은 “엔화에 연계된 원화절상 심리를 경계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보냈지만, 놀란 시ㅔ장을 진정시키기엔 힘이 부쳤다.
불똥은 700선 고지를 뛰어넘으며 거침없이 질주할 것 같던 주식시장으로 이내 옮겨 붙었다.
이날 하루 종합주가지수는 33.36포인트나 주저앉고 나서야 블랙먼데이를 마감했다.


급기야 다음날엔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 부총리는 “환율이 시장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투기세력을 응징해야 한다”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환투기 세력을 들먹이며 시장의 비이성적인 과민반응을 탓한 셈이다.
24일엔 외평채 발행한도 증액계획이 발표됐다.
외평채 발행한도를 2조8천억원에서 4조원으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당장 발행이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시장은 이를 두고 일종의 ‘시그널이펙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시아 각국 정부가 단호한 의지를 밝히고 나선 것도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한몫했다.



환율, 한국 경제 펀더멘털과 정반대 움직임

여기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전격적인 원유생산량 감소결정 소식은 얼핏 보아 양날의 칼인 듯했다.
겨울철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인 만큼 향후 정유사들의 결제수요가 늘어나 환율의 하방경직성을 다소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환율의 급작스런 하락세에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이 가져올 파급효과 또한 무시할 수만은 없다.
환율 급락이 수출에 미치는 충격이 큰 데다 여기에 유가쇼크마저 더해지면 환율하락이 가져올 물가안정 프리미엄까지 일거에 없애 버릴 위험이 있는 탓이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팀장은 아직까지 경상수지나 성장률 전망에 반영하기는 이르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유가상승이 지속된다면 성장률 전망치 조정이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어쨌거나 최근의 원/달러 환율 급락세는 우리의 경제 펀더멘털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G7 재무장관 회의결과가 미칠 파장은 꼼꼼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번 G7 성명서가 85년 달러화 약세를 공식화한 플라자 합의의 재판이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증권의 전종우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세계경제 상황이 다소의 디플레 압력을 맞이해 구매력 자체가 약화된 상황이므로 일국의 일방적인 통화강세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나친 달러 약세는 자칫 세계경제 회복을 더욱 더디게 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엔화가치의 일방적인 급상승을 가져온 플라자 합의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는 달러화의 약세 기조가 이어져 왔다는 점도 시장의 과민반응을 탓하는 데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실제로 시간이 흐를수록 G7 성명서의 의미는 나라 밖에서도 조금씩 퇴색하는 분위기다.
미국 주요언론에선 달러의 일방적인 약세기조가 자칫 미 국채의 최대 보유국인 아시아 국가들의 국채매입 감소로 이어질 경우, 금리상승을 부추겨 미국 경기회복에도 부메랑 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제조업 부문의 지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겐 역풍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셈이다.


그럼 전반적인 달러화 약세 기조가 유지되는 속에 이번 G7 성명서는 한 차례 시장에 충격만을 안겨준 채 서서히 그 의미를 잃어갈 것인가? 여기엔 되짚어봐야 할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절상 압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미국 스노 재무장관은 여전히 ‘강한 달러’ 정책을 버리지 않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유연한 환율정책을 통한 달러약세 기조와 ‘강한 달러’ 정책? 이 둘은 얼핏 보면 모순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굿모닝신한증권의 김일구 연구위원은 “강한 달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봐야 한다”는 쪽에 주목하는 편이다.
“강한 달러란 곧 달러 가격이 높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달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자국의 통화를 마구 풀어야, 다시 말해 외국에 대해 일방적인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건 사실 기축통화의 숙명이다.
문제는 바로 ‘적당한 적자’ 수준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G7 성명서에 담긴 진짜 의미는 미국의 적자 규모가 위험수준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미국 스스로 이제 공식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계경제에 시한폭탄이 될지도 모를 미국 적자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대략적이나마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현단계 세계경제가 처한 근본적인 딜레마를 놓고 볼 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활동공간 자체가 그리 넓지 않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럽·일본 불황으로 강한 달러 조율 힘들어

남은 문제는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이런 ‘근본적인’ 요구를 원만하게 조율할 정치적인 합의를 이루는 길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유럽, 일본 등의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80년대 중반과는 달리, 지금의 상황은 자칫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훨씬 큰 탓이다.
그만큼 견고한 ‘합의’를 이루기는 더 힘들다.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G7 성명서 역시 매우 불안정한 합의에 불과하다”며 여러 요인들에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정책은 자연스레 내수를 부양하는 쪽으로, 다시 말해 아시아 지역에 ‘퇴장’되어 있던 달러화를 미국으로 되돌리는 쪽으로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관건은 아시아 국가들이 과연 버블을 야기하지 않고 적정한 수준의 내수부양을 어떻게 이루어 내는가이다.
일본의 실패 경험이 새삼 중요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85년의 플라자 합의 당시에도 미-일 두 나라 사이에는 약 220엔에서 200엔 정도로 엔화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지만, 결과는 2년 안에 120엔대로 곤두박질친 선례가 있다.
갑작스럽게 내수부양에 뛰어든 일본 정부가 89년경 뒤늦게 긴축으로 돌아섰지만, 이미 부동산 문제 등이 폭발한 뒤의 일이다.
김일구 연구위원은 “최근 중국이 일본의 내수부양 실패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을 읽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불균형 조정과 세계경제 성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세계경제가 당면한 근본적인 고민거리다.
여기서 이번 G7회의에 중국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한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나머지 선진국들로서는 중국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당근’을 쥐어준 셈이다.
물론 그 반대편엔 중국이 달러 약세라는 큰 틀을 용인하게 함으로써 세계경제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 틀에 끼어들기를 주저하는 중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역내 갈등이 한층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건 물론이다.


어쨌든 이번 G7 성명서의 합의 강도 여하를 떠나 세계경제의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아시아 국가들로선 더욱 위험한 줄타기 시험대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
시장이 출렁일 여지가 더욱 커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쯤 되면 시장의 출렁임은 이미 ‘과민한’ 반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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