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경제읽기] 외환위기를 다시 보자
[경제읽기] 외환위기를 다시 보자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한 방송은 태풍 ‘매미’에 대한 피해를 막을 수 없었나를 방영하면서, 과거 재난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어찌 태풍뿐이겠는가, 모든 재난은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겪었던 가장 큰 경제적 재앙인 ‘환란’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해 두었을까? 환란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과 교훈은 무엇인지, 국민이 고통을 겪었던 만큼 심각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논의했던 적이 있었을까?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며 의례적인 논의에 그치고 만 것은 아닐까? 경제학계는 지금도 이 논의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늦지 않았다.
환란 원인에 대한 종합적이고 본격적인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
환란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진행된 전형적인 ‘쌍둥이 위기’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국내 경제학자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이 둘을 구분해 원인과 과정을 분석한 경제학자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외환위기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쌍둥이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 둘만 정확하게 구분하더라도, 환란의 원인과 전개과정은 비교적 쉽게 밝혀낼 수 있다.
우선, 외환위기는 외환보유고의 고갈이 불렀다.
외환보유고의 고갈은 당연히 국제수지 적자의 누적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국제수지(경상수지) 적자는 1996년 한해에만 230억달러에 이르는 등 환란 전 불과 4년 동안의 누적규모가 무려 435억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93년 외환보유고의 두 배를 훨씬 넘는 규모로서,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국제수지 적자는 왜 갑자기 눈덩이처럼 커진 것일까? 당연히, 국내 총공급능력을 벗어난 초과수요가 갑자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초과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실제로 94년에 22.1%, 95년 32.0%, 96년 11.3% 등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렇다면 수입을 이처럼 급증시킨 초과수요는 왜 발생한 것일까? 그 원인은 재정지출의 폭발적 증가에 있었다.
95년에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42.5%에 달해 경제성장률의 4배를 넘었고, 96년에도 17.8%를 기록해 경제성장률을 두 배 이상 초과했었다.
다음으로, 금융위기는 신용수렴원리의 작동에 의해서 빚어졌다.
한보사태가 터지자,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손충당금과 지불준비금을 더 쌓아야 했으며, 자기자본비율도 높여야 했다.
추가적인 대출이 어렵게 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회수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회사채의 차환발행조차 어렵게 되는 등 직접금융시장 전체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들은 사채(私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금융기관 예수금도 자연스럽게 인출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은 대출을 더욱 회수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신용창조의 역과정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통화량이 신용승수만큼 줄어드는 압력이 작용했으며, 이것이 한계기업은 물론이고 흑자기업조차 무너지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삼미, 대농, 기아, 한라 등 유수 재벌들까지 줄줄이 무너진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론 기업의 시설과잉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재정지출의 급증은 일시적인 경기호조를 일으켰고, 경기호조에 영향을 받은 기업들은 시설투자를 확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재정지출 확대는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었고, 국제수지 악화는 재정긴축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경기는 하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하강은 당연히 시설투자의 과잉을 불렀고, 이것은 기업의 경영수지를 크게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이미 96년 하반기부터 심각하게 벌어졌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한보사태가 터짐으로써 신용수렴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가 금융위기였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