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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인터넷 서점, 무릎 꿇다
[포커스] 인터넷 서점, 무릎 꿇다
  • 임채훈
  • 승인 2000.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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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책 공급 중단 선언…예스24 등 일부 “도서정가제 지키겠다”
지난 10월27일 국내 300여 단행본 출판사 연합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는 난데없는 소문을 확인하느라 어수선한 오후를 보냈다.
국내 인터넷 서점의 선두인 예스24 www.yes24.com가 할인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소문이었다.
할인판매를 유지해야 한다고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곳에서 도서정가제를 지키겠다고 나왔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문에 대해 당시 예스24는 두손을 저었다.
“할인율을 낮출 수는 있어도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은 사실이 됐다.

기로엔 선 인터넷 서점 문화관광부의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촉발한 도서정가제 논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전까지 인터넷 서점은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였다.
주변 여건이 인터넷 서점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네티즌의 90% 이상은 인터넷 서점의 할인판매에 지지를 나타냈다.
또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등 법안의 국회 상정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했던 교보문고 관계자조차 “법이 통과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교보도 할인판매를 할 것”이라고 밝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서점들은 교보의 할인에 대비해 책 가격의 할인비율을 더욱 높이는 등 시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싸움은 결국 인터넷 서점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한다는 교보문고 목소리는 각종 공청회에서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싸움의 반전은 그동안 뒤에서 목소리를 내던 한국출판인회의가 전면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한국출판인회의 소속 181개 출판사는 지난 10월12일 임시총회를 열어 16일부터 인터넷 서점에 대한 도서공급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송인서적 같은 도매상들에게 ‘인터넷 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의서도 받아냈다.
인터넷 서점 측은 처음엔 엄포로 생각했다.
출판사나 도매상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예스24 이강인 사장은 “다른 오프라인 서점과 달리 인터넷 서점은 출판사와 도매상 모두 현금거래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유동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송인서적 이규영 사장도 “인터넷 서점과 거래액은 송인서적 전체 거래액수의 10∼15%를 차지한다”며 “어느 정도 현금 융통성에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인터넷 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않는 것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매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인터넷 서점은 도서공급 전면 중단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출판사와 도매상에서 책이 들어오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들은 당황했다.
와우북 www.wowbook.com 황인석 사장은 책 공급이 중단된 지 일주일째인 지난 10월23일 “비축도서가 어느 정도 있어 아직 서비스에 차질은 없지만 곧 어려워질 것 같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알라딘 www.aladdin.co.kr 김종석 마케팅팀장은 “일부 출판사가 책을 공급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여러 여건상 지속적으로 공급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비스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 도서는 서점에서 직접 구입해 이용자에게 공급하고 있다”며 힘든 상황을 호소했다.
예스24 박지수 이사도 “지금 막막한 상황”이라며 서비스에 차질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황이 돌변하자 일부 인터넷 서점들은 먼저 나서서 한국출판인회의에 화해 제스처를 보냈다.
어떻게 해서든 서비스 중단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와우북 황인석 사장은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과도하게 할인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10% 수준에서 할인을 유지한다면 한국출판인회의도 타협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약간의 희망을 갖고 상황을 바라봤다.
하지만 한국출판인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출판인회의 유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승용 홍익출판사 사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2002년까지 도서정가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타협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예스24와 협상하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났다.
예스24 박지수 이사는 “처음에는 할인율을 10% 수준으로 낮추면 한국출판인회의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인회의는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그래서 할인율을 5%로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출판인회의에서 돌아온 대답은 ‘할인율 0% 외에는 타협불가’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예스24의 투항이 몰고올 파장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모색하던 지난 10월27일 오후 인터넷 서점에는 출판인회의의 공문 한장이 날아들었다.
재고가 거의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에 차질을 빚고 있던 인터넷 서점에게는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정가제를 유지할 것, 마일리지를 실시할 경우 책값의 10% 미만에서 할 것, 배송료는 각자 알아서 판단할 것. 위 세가지 사항에 동의한다는 것을 서면으로 제출하지 않으면 공급 중단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또 11월1일부터 인터넷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의 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출판인회의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예스24는 손을 들고 말았다.
예스24 박지수 이사는 “출판인회의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지킨다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책을 공급하는 측과 공급받는 측의 합의에 불과한 것”이라며 이용자들 항의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와우북도 이런 출판인회의 요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몇몇 서점들은 이런 요구에 거부의사를 밝히며 끝까지 할인판매를 유지할 태세다.
알라딘 김종석 팀장은 “이제 알라딘이 선봉에 서야 할 때”라며 “북스포유, 북파크, 크리센스 등이 알라딘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고 말한다.
알라딘 조유식 사장은 “할인율을 얼마로 정할지는 인터넷 서점이 알아서 할일이지 협상대상이 절대 아니다”라며 “싸움이 장기화돼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할인판매는 양보할 수 없다”고 결연한 의지를 강조한다.
이어 조 사장은 “출판인회의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뒤에 있는 교보문고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며 “싸움을 한다면 교보문고와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싸움을 그만두고 링에서 내려온 예스24나 전투태세를 더 강하게 갖춘 알라딘이나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스24는 인터넷 서점의 가장 강한 매력이었던 할인판매를 포기한데다 소비자와 약속까지 어겼기 때문이다.
알라딘은 옆에서 싸우던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공급중단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서비스를 포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할인판매를 유지하겠다는 인터넷 서점은 여론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용자들 의견이 어떤 강도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예전 할인판매점에서 책을 싸게 팔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여론을 등에 업고 할인판매는 계속된 예가 있는 것을 이들은 기억하고 있다.
모든 인터넷 서점이 무릎을 꿇을지 다시 달려나갈지는 결국 이용자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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