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커버] 핵폭탄급 대책 카운트다운
[커버] 핵폭탄급 대책 카운트다운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3.10.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지공개념 포함한 초강수 준비…금융권 여파도 예상보다 크지 않을 듯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동산 시장은 숨죽인 채 10월 말에 발표될 정부 대책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투기억제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치솟던 강남 아파트값도 상승세를 멈췄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 대책과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토지공개념’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내놓은 상태다.
노 대통령은 10월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 정부에서 준비하는 종합 대책이 부족하면 강력한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대통령이 언급한 토지공개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김수현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팀장은 “주택 과다 보유에 따른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는 것”이라며 다주택 보유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임을 시사했다.
1980년대 말에 도입된 토지공개념을 주택 부문으로 확대하겠다는 발상이다.


정부에서 단호한 대책을 준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 차례 대책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잠시 주춤하다가도 다시 급등세로 돌아서기를 반복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정부 대책이 발표된 다음에 바로 집을 사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정부의 ‘땜질식 처방’은 시장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아파트 투기 바람 전국으로 확산

올해도 아파트값은 어김없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부동산뱅크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올 들어 9월까지 14.6% 상승했다.
집값 상승세를 주도한 곳은 역시 강남이다.
지역별 매매가격 상승률을 보면 강동(28.3%)과 송파(26.2%), 강남(23.9%) 등 강남권이 20%대였다.
반면 강북(2.7%)과 성북(2.6%), 도봉(1.8%) 등 강북권은 1∼2%대에 그쳐 지역별로 극심한 격차를 보였다.


그렇다고 강남 아파트값만 오르는 건 아니다.
강남에서 시작된 집값 급등세는 목동과 분당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투기의 사각지대이던 부산과 대구 등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전국 아파트값은 지역별로 차별화 현상을 보이면서 평균 10% 이상 올랐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산과 대구의 아파트 분양가도 1년 동안 2배 가까이 올랐다”며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집값이 급등하면 거품이 커져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이 “투기 바람이 일부 전문 투자자는 물론 전 국민들 사이에 확산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부동산 시장은 수급 논리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보도 왜곡 전달되는 전형적인 투기장”이라고 단정했다.
“그동안 발표된 정부의 투기억제 대책이 약했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9·5 대책 등은 분명 시장에 부정적 효과를 줄 수 있는 악재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시장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호재로 둔갑했습니다.
실제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 제한이나 소형 평형 의무비율 확대는 재건축 아파트의 수익성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악재였죠. 하지만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올 들어 30% 가량 상승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집값안정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원은 “지금까지 정책 목표는 집값을 더 이상 오르지 않게 하는 데 있었다”며 “이제는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에서 집값 폭락이 불러올 충격에 겁을 먹고 몸을 사렸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집값 폭락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로 이어져 일본식 장기 침체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강력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죠. 하지만 강남 등 주택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에서 집값이 20~30% 정도 빠지는 것은 그리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 거품은 일본식 거품과는 다르기 때문이죠. 일본식 장기 침체에 대한 걱정은 과장된 것입니다.


집값 하락이 주택담보대출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별 근거가 없어 보인다.
현재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비율은 50%에 불과하다.
2002년 초까지는 70~80%까지 대출해줬지만 주택가격은 그때보다 50% 정도 올랐다.
박 연구원은 “10억원짜리 강남 아파트가 5억원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금융권으로 부실이 확산될 염려는 없다”며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기 원천봉쇄책 다각도로 모색

정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주무부처 장관들은 연일 초강경 발언을 내놓고 있다.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은 10월 말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집값 붕괴를 각오한 혁명적 조치를 내놓겠다”며 조만간 강력한 집값안정 대책이 나올 것임을 시사했다.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도 “정부는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서 강력한 대처를 할 것”이라면서 “부동산 투기꾼들은 정부와 맞서 싸우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토지공개념 도입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주택시장은 급격히 얼어 붙었다.


토지공개념은 지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택지 소유에 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등을 제정해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에도 극심한 투기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였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땅값이 20~30% 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토초세와 택지소유상한제는 각각 1994년 7월과 2002년 2월 위헌 판결을 받았다.
개발 사업에 따른 이익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환수하는 개발부담금도 올해 말까지만 적용된다.


위헌 판결을 받은 제도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직후 토지공개념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토지공개념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 없이 나온 발언이라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정창수 건교부 주택국장은 “위헌 판결을 받은 제도를 그대로 부활시킬 수는 없다”며 “위헌 시비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또 “토지공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제도는 아니며 그동안 거론된 부동산 관련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넓게 보면 기존 부동산 관련 법제에도 토지공개념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설명이다.


위헌 시비를 피하면서 공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제도로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보유세 누진 적용’이나 ‘주택거래 허가제’ ‘재건축 및 재개발 이익 환수’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존 부동산 관련 법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1가구 다주택 소유자들이 내는 보유세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지금도 다주택 보유자들은 1가구 1주택 보유자보다 세금을 많이 낸다.
정부에서도 이미 보유세를 전체적으로 2~3배 올리고, 고가주택에 대해서는 10배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과세표준이 시가에 비해 너무 낮은 상황에서 보유세를 어지간히 올려서는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윤진섭 '부동산뱅크' 취재팀장은 “현재 강남에 6억원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어도 보유세는 1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며 “10배로 올려도 1년에 100만원인데 아파트값 상승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1년에 1억원 이상 폭등하는 상황에서 100만원 정도 세금이야 푼돈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에 입각해 다주택 보유자들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금을 매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주택거래허가제는 기존 토지거래허가제 내용 가운데 주거지역 토지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면 된다.
지금도 토지거래 허가지역으로 지정되면 60평 이상 땅을 거래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래 면적을 줄이면 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주택거래허가제를 통해 실수요자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투기 수요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이 계속 오르면 최후의 수단으로 주택을 포함한 허가제를 도입할 수 있다”며 “이 경우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범위에서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및 재개발 이익 환수도 기존 개발부담금 제도를 확대 적용하면 된다.
정부는 이미 개발부담금을 재건축 사업에도 확대하는 방안을 기획예산처와 협의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집값 거품의 근원지인 재건축 아파트를 묶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건교부 토지국 관계자는 “올해로 끝나는 개발부담금 제도를 연장하고 개발이익의 25% 수준인 세율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세 하락 국면으로 돌아설지 주목

정부는 10월29일쯤 발표할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금융·세제·교육·주택공급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꺼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토지공개념 제도는 종합대책이 효과가 없을 경우 최후의 카드로 활용할 생각이다.
다만, 시장에서 예상 가능한 대책은 약효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강력한 대책을 묶어서 한꺼번에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정책 예고제로 1단계 대책이 효과가 없으면 바로 강도 높은 2단계 대책를 쓰겠다고 공언하는 식이다.


실제 토지공개념 도입을 ‘단지’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직후 강남 아파트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는 이전보다 3천만~5천만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나온 매물이 쌓이고 있다.
호가는 내렸지만 매수자가 없어 거래는 뚝 끊긴 상태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1가구 다주택자 가운데 은행 대출금이 많은 사람들이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밝혔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세입자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다주택 보유자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워팰리스 등 강남권 고가주택도 국세청의 세무조사 방침이 알려지면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인 닥터아파트 조사를 봐도 10월 아파트 매매가격은 서초구를 뺀 강남권 전체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 조사됐다.
구별 하락폭은 송파구 -0.22%, 강동구 -0.13%, 강남구 -0.07% 등이었다.
이 회사 김광석 과장은 “토지공개념 여파로 불안 심리가 확산되는 양상”이라며 “정부 대책이 나올 때까지는 호가 내림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의 투기억제 대책 발표 전후 강남 집값이 잠시 주춤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본격적인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지 여부는 정부 대책에 달려 있다.
김영진 사장은 “10월 말 토지공개념을 포함해서 강력한 대책이 발표되면 내년 초까지는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강한 대책이 나오면 다주택 보유자들이 호가를 낮춰서라도 매물을 내놓게 되고 매물이 계속 쌓이면 거래가 안 되더라도 호가는 계속 내려가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내년 초로 선을 그은 것은 대통령 재신임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앞두고 초강수를 둘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무려 4년9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전국 아파트값을 두배 이상 끌어올린 대세 상승 국면이 이제 막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