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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돋보기]개성공단 조급증을 버리자
[북한경제 돋보기]개성공단 조급증을 버리자
  • 이용인/ <한겨레> 기자
  • 승인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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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 대한 기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호의 내용처럼 북한과 현대아산은 10월 초 ‘개성공업지구 세금규정 및 노동규정’을 발표했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과 현대아산은 앞으로도 10여개 정도의 추가 규정을, 그것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남쪽 중소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이던 개성단지 분양가도 평당 15만원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통일부 장관이 직접 언질을 주었다.
북미관계 경색 속에서도 개성공단 상황이 이처럼 우호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자 여기저기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해 6월 착공해 내년 분양, 2007년 입주라는 개성공단의 로드맵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더 빨리 일정을 앞당기라고 재촉한다.
정부도 내년 4월 선거를 의식해 분양을 앞당길지 모른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성단지 사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조급증이다.
개성공단이 실질적인 남북경협의 시금석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조급증을 고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남북경협의 역사를 볼 때 “개성공단마저 실패할 경우”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개성공단 사업 추진의 세 축인 남한정부·현대아산 그리고 실제 입주할 남한기업, 그리고 북한은 서로 조급해한다.
최악의 경우 어느 순간 서로의 이해관계가 삐그덕거리면서 판 자체가 깨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남한 기업들의 문제점을 지적해보자. 현재 개성공단 입주희망 신청서를 제출한 기업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모두 12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이들이 남한에서 경쟁력을 잃고 탈출구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1200여개 기업이 과연 북한에 들어가서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있을까? 이들은 대외적으로 또는 공식적으로 개성공단이 낙관적이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낙관적이라고 얘기해야 희망 기업 수가 부풀려지고, 정부지원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 남북경협 전문가는 “설마 정부가 우리를 망하게 하겠느냐, 현대가 건재하면 우리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전한다.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성공단에 기대를 거는 것을 뭐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0년과 2001년 유행처럼 번지던 중소업체들의 대북경협 가운데 성공한 모델이 거의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가를 올릴 ‘재료’쯤으로, 아니면 남북협력기금에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구체적인 협력 모델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이들은 달라붙었다.
결국 “북한 사람들이 시장 마인드가 없어서”라는 편리한 핑계를 대고 이들은 하나 둘씩 철수했다.
물론 정치적 변수가 남북경협을 얼어붙게 만든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지만 이런 중소기업들의 준비 안 된 안일한 북한 진출도 그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조급한 진출이 이후 미래의 남북경협에 계속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성공한 모델이 없다는 가장 큰 약점이 이후 개성공단에 진출하려는 다른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이는 전체적으로 다시 남북경협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해외진출보다 더 꼼꼼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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