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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칼럼]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
[리드칼럼]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
  • 오종남 통계청장
  • 승인 2003.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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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살 것으로 기대되는 나이는 남자 37살. 여자 40살이다.
”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남자 37살, 여자 40살이면 이제까지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반반씩이라는 거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3년 고령자 통계’에 있는 내용이다.
그 나이가 되면 이제부터는 꺾여 내려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온라인 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규에 의한 정년은 56살이지만, 응답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정년은 37살”이라고 한다.
남자 나이 37살이면 젖먹던 시절을 다 포함하더라도 인생의 절반밖에 살지 않은 나이다.
아니 사회에 나온 이후부터 계산하면 불과 10여년밖에 살지 않은 나이에 벌써 직장에서 떠나야 할 나이가 됐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남은 생은 어떻게 살게 되는 걸까? 장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나날을 살게 되는 건 아닌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2년 사망원인통계’로 확인해 보면, 우리나라 40대 남자의 사망률은 여자의 3배이며,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무려 9배에 달한다.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받은 스트레스와 음주로 인한 질병이 결국 높은 사망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무사히 ‘힘든 40대’를 넘어선 이들 앞에는 ‘고령화사회’라는 더 험한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하는 세대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1년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76.5살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80살에 달해 “여성 팔순(八旬)시대”가 열렸다.
이런 장수 추세가 계속된다면 “청춘 l00살”도 꿈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환갑잔치를 하려면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또한 예부터 드물다 하여 고희(古稀)라고 불리는 칠순잔치도 주위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할 형편이다.
예전에는 60살이 되면 세상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여생(餘生)을 편안히 보내는 것을 행복한 노후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장수시대에는 60살 이후의 생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남아 있는 여분의 시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노후의 생애는 여생이 아니다.
찬란한 황혼처럼 아름답고 귀중한 생애의 한 부분인 것이다.
통계청의 ‘2002년 사회통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노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주위에는 아직도 “자식들이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또는 “나라에서 노후보장책을 마련해 주겠지”하는 기대로 대책없이 노후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 준비가 있다”는 사람은 64.5%에 불과하다.
그래도 69.2%에 이르는 남자는 여자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가야 하는데도 남자보다 25% 포인트나 적은 44.2%만이 노후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의 노후 생계를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998년 조사시에는 89.9%였다.
그러나 2002년에는 70.7%로 4년 동안에 19.2%포인트나 줄어 들었다.
이처럼 노후를 본인 스스로, 또는 정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풍조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효(孝)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식의 부양에 의존하는 소위 ‘자식보험’은 급속히 깨지고 있다.
반면에 국민의 세금으로 지탱해야 할 ‘사회보험’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이런 마당에 오래 살게 되었다고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이제는 건강하고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위해서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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