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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국민연금, 수혈이나 수술이냐
[포커스] 국민연금, 수혈이나 수술이냐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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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안정화 방안 국회 통과 힘들 듯…구조 개선 급하지만 미룰수록 ‘화’ 키워 이건 한 자산관리 전문가의 농담이다.
그는 매일 저녁 조깅을 한다.
뛰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년여성. 그 시간, 그들의 남편은 회식 자리에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걱정으로 가슴이 무겁다.
한국 남자는 평균 72.8살, 여자는 80살까지 산다.
남편이 73살쯤 병에 걸려 수천만원을 쓰고 죽으면 늙은 아내는 그 뒤로 7년여를 노동력도, 노후자금도 없이 혼자 살아야 한다.
그는 젊은 미혼남녀를 만나면 남자는 연상녀, 여자는 연하남과 결혼해 남자는 술, 담배 끊고 여자는 술, 담배를 해야 경제적으로 백년해로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농담 같지만 현실적 조언이다.
이번엔 농담 같은 미래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겠다.
15살부터 64살까지를 생산가능인구로 봤을 때 이들이 65살 이상 노인을 먹여살리는 비율, 즉 노인부양비는 올해 11.6%에서 2020년엔 21.3%, 2030년엔 35.7%, 2050년엔 62.5%로 늘어난다.
거칠게 말하자면 올해엔 9명이 한 명의 노인을 부양하지만 2050년엔 1.6명이 한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그뿐인가. 2025년엔 45살 이상이, 2038년엔 50살 이상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연금괴담 시리즈의 예고편이다.
현실로 돌아오자. 연금괴담 1편의 씨앗은 바로 지금 뿌려지고 있다.
1인당 출산율 1.17명 시대, 이를 반영해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5년에 한 번씩 하게 되어 있는 재정재계산을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른 것이다.
더 내고 덜 받아도 울며 겨자먹기할 수밖에 그러나 이 방안은 국회 상임위 통과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월초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에서 의원들은 잇따라 정부 방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언론조사를 통해 반대 의견을 표명한 의원은 벌써 15명의 보건복지위원 중 8명에 이른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11월24일 열릴 상임위에서 정부의 방안에 찬성표를 던질 이는 한두명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현재로선 민주당 김성수 의원만이 소득대체율 53% 상향 조정을 전제로 찬성의사를 확실히 표명한 상태다.
몇몇 의원은 기초연금제부터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이원형, 김홍신 의원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다.
국민 열명 중 네명이 국민연금의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으니 기초연금제를 도입해 국가가 세수로 이들의 기초적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재원을 세수에서 조달해 전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연금, 기여금에 비례해 연금 급여를 주는 소득비례방식의 국민연금, 퇴직금으로 직장별로 자율 운영하는 기업연금 이렇게 3층 구조로 보강하면 현행 국민연금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정부가 내놓은 재정안정화 방안은 우리 노령연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면 구조부터 뜯어고친 다음 재정을 손보는 것이 순서일까? 이번에 재정 재계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재계산연도가 아닌 2004년에 새삼 재정안정화 방안을 실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터. 다음 재계산연도는 2008년, 국민연금 수령자수는 300만명을 돌파한다.
대부분 납부기간을 다 채운 수령자들이라 지금까지와는 달리 연금 전액을 지급 받는 사람도 늘어나게 된다.
재정 개선을 하지 못한 국민연금의 수지 불균형점은 더 가까워진다.
이때부터 연금괴담 1편이 시작된다.
1편에 등장하는 괴물은 기업, 노동자 등 현세대 연금가입자들의 이기심이다.
이들이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을 거부하면 후세대는 ‘그보다 더 내고 그보다 덜 받는 국민연금’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줄곧 연금구조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했던 한국사회보험연구소 김용하 소장(순천향대 교수)은 이번만큼은 재정안정화 방안 채택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구조를 바꾸더라도 현행대로 보험료 납입기간 소득의 60%를 계속 주면 재정 고갈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정 재계산을 늦출수록 수지 균형을 맞추긴 더더욱 어려워진다고 그는 경고한다.
연금괴담 2편은 국민연금 그 자신의 어마어마한 덩치와 성장속도에서 비롯된다.
앞으로 5년 뒤, 우리의 국민연금 규모는 세계 최대의 펀드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 연금기금(캘퍼스)보다 커진다.
이에 따라 국가가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비중도 전체 자산의 20%를 넘게 된다.
우량주 보유율이 높은 투자스타일로 보건대 10여년 안에 국민연금은 한국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기업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섣불리 예견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차치해 두자.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는 자산시장의 충격이다.
한국채권연구원 오규택 원장은 “가장 큰 문제는 급속히 커졌다가 급속히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 연금체제에선 2030년, 재정안정화 이후 체제에선 2045년부터 국민연금기금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때부터 국민연금은 엄청난 양의 주식과 채권을 팔아 가입자의 연금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불과 30년, 40년 뒤에 벌어질 일이다.
구조 개선 안될 땐 자산시장에 악영향 오 원장은 자산시장에 닥칠 충격파에 대비해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줄여놔야 한다고 말한다.
노령연금 구조를 3층 구조로 바꿔 재원과 급여지급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은 연금의 사각지대뿐 아니라 자산시장의 재난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1, 2편 괴담의 괴물들을 퇴치하지 못하면 연금괴담의 마지막 시리즈가 개봉된다.
거기서 중년을 맞이한 우리의 아들들은 20여년 동안 끝없이 떨어지는 주가와 끝없이 오르는 금리로 노후대책은커녕 아이들 학비도 마련하지 못해 쓴 소주잔을 기울일 것이고, 노년을 맞이한 우리의 딸들은 손 벌릴 데 없이 홀로 살아남아 산 채로 고려장당하고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 눈앞에 나타난 해법은 재정안정화 대책이다.
구조 개선이라는 해법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상태다.
눈앞에 있으나 미흡한 해법을 잡을 것인가. 근본적이나 멀리 있는 해법을 찾아 돌아갈 것인가. 11월24일, 국회 보건복지위 상임위에서 결정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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