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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죄 기업 CEO는 무죄? 유죄?
1. 범죄 기업 CEO는 무죄? 유죄?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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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 책임 범위 여전히 논란거리…외국에선 벌금형 등 다양한 법인 제재 병행 기업범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예를 들면, 장부를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누가 그 벌을 받아야 할까. 분식회계를 직접 실행한 경리직원? 아니면 담당이사나 기업 최고경영자(CEO)? 그것도 아니면 법인인 기업 자체? 사적 이득을 노린 개인범죄라면 당연히 행위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위해’ 또는 ‘경영판단에 따라’ 한 것이라면 문제가 애매해진다.
많은 기업범죄에서 실제 처벌받는 사람이 의외로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
형법에서 ‘범죄’는 기본적으로 법인보다는 자연인을 전제로 한다.
반면 피해자나 가해자를 콕 찍어내 말하기 어려운 게 기업범죄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아직은 기업범죄에서 실무직원이 처벌받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피고용인은 기업이란 거대 조직에서 부속품과 같은 처지로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중대한 과실이나 자기 판단에 의한 고의까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상의 “감독소홀 책임 처벌은 잘못” 많은 경우 범죄 책임은 CEO에게 돌아온다.
의사결정 구조상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억울해하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최근 기업인 구속 사례가 빈발하자,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인 형사처벌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란 도발적인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한마디로 사법당국이 CEO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용역 의뢰를 받아 연구 작업을 진행한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형법 적용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행정적 규제나 민법적용 등 다른 규제 수단이 있다면 먼저 이를 활용해야 한다.
검찰이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남발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 교수는 “기업이 작고 단순할 때는 돌아가는 일을 CEO가 모두 파악할 수 있지만, 기업이 커지고 업무가 고도화, 전문화되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말한다.
때문에 불법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감독업무 소홀 책임만을 물어 CEO를 처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전 교수는 “기업범죄의 특성상 정밀한 수사가 어렵다 보니 손쉽게 처벌할 수 있는 CEO를 걸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오히려 “기업인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교수는 우선 “기업인에 대한 지나친 형사처벌이 경제위축을 가져온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기업주나 CEO를 처벌하지 않는 한 기업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직접 행위자인 일반 직원을 처벌하면, 기업 입장에선 다른 사람을 찾아 대신 고용하면 그만이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져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벌금을 비용으로 처리하면, 그만큼 세금혜택까지 볼 수 있다.
오히려 범죄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주주만 피해를 보는 결과가 된다.
이태원 강원대 교수는 “기업주와 CEO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우리의 기업 현실에서, 법인만 처벌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며 “법인에 초점을 맞출 경우 기업범죄로 실제 이득을 챙긴 주범들은 법인을 내세워 빠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CEO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일부 법학자들은 우리 상법에도 이사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선 경영자의 책임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법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기업이 구성원의 개별적인 책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회, 경제적 발전으로 기업이 이미 구성원의 개별적 의지를 뛰어넘는, 거대한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위협적인 실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법인의 형사처벌은 범법행위에 대한 응징보다는 범죄예방에 현실적인 목적이 있다.
기업은 철저하게 이윤동기에 움직일 수밖에 없고, 자연인이 아닌 탓에 내적 성찰이나 도덕적 반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형벌을 가함으로써 범죄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업에 가할 수 있는 형법적 제재수단은 사실 별로 없다.
기업을 감옥에 가두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벌금형이 유일한 제재수단이다.
우리나라도 일부 법률이 법인에 대한 벌칙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태훈 교수는 “환경범죄는 행위자뿐만 아니라 법인도 처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 양벌규정이다.
행위 당사자를 처벌하면서, 법인도 덧붙여 처벌하는 것이다.
법인만 처벌하는 경우는 아직 없다.
벌금형이 기업범죄 예방에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벌금을 사업에 필요한 비용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외국에선 벌금형 이외에 법인에 대한 다양한 형법적 제재수단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벌금제다.
1억원의 벌금형을 내렸다면 이를 주식으로 납부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의 실제 주인인 주주에게 직접적인 손해가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일반 주주의 기업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기업범죄를 어렵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주주가 범죄행위의 당사자가 아니란 점에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사전예방 위한 유인책도 검토해볼 만 이밖에 기업에 대한 보호관찰제도와 강제적 자기규제제도가 있다.
기업 보호관찰제는 일반 범죄자의 교화에 활용되고 있는 기존 제도를 기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1억원의 벌금형이 내려지면 이를 유보하는 대신 보호관찰 60일을 선고하는 식이다.
보호관찰을 선고받은 기업은 해당 범죄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의무준수프로그램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보호관찰팀이 이 프로그램의 준수 여부를 평가해 법원에 보고한다.
기업 자체의 체질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간섭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강제적 자기규제제도는 이보다 다소 완화된 형태다.
기업 스스로 준수사항을 정하고 이를 감시하는 기구도 기업 내에 두어 자율적으로 체크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범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려면 이러한 형법적 수단말고도 다양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사전예방을 위해선 사외이사제, 외부감사제 강화 등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기업윤리의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미국은 자체적으로 준법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기업은, 범죄가 발생해도 벌금액을 낮춰주는 식의 유인책을 두고 있다.
민사법적인 제재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기존 손해배상청구권을 대폭 강화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가 대표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형사정책연구원 유병규 검사는 “면책을 조건으로 진술을 받아내는 ‘유죄협상제도’ 도입이나 기업범죄 전담 전문수사조직 신설 등 수사체계 정비와 함께, 늘어나는 기업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본격적으로 검토해 활용할 단계가 됐다”고 말한다.
표/ 범죄 연루 기업인의 죄명 분포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1981∼99년) 죄명/기업인 수 뇌물죄(형법, 특경법)/49 횡령죄(형법, 특경법)/11 알선수뢰죄(특경법)/8 상호신용금고법/6 사기(형법, 특경법)/3 조세범처벌법/3 부정수표단속법/2 변호사법/2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2 정치자금법/1 배임수증죄(형법, 특경법)/1 업무방해죄/1 외환관리법/1 국토이용관리법/1 기타/15 * 1981∼99년 발생 정경유착 및 부패관련 범죄 355건 중 연루 기업인(CEO) 수 *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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