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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융사기…돈세탁… 꼼짝마!
2. 금융사기…돈세탁… 꼼짝마!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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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관·금융사, 적발 솔루션 도입 적극적…경제범죄 전문화, 시장규모 급팽창할 듯 사기 덕에 돈 버는 기업이 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사기 적발 솔루션,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가 그러하다.
한국에선 사기 적발 컨설팅업체 이센트릭, 음성기술업체 예스테크놀러지, CRM(고객관계관리)업체 이씨마이너가 외국산 사기 적발 솔루션들을 들여와 국내에 팔고 있다.
시장은 넓다.
사기 때문에 돈을 잃는 기업들, 사기범을 잡으려는 국가기관이 모두 이들의 고객이다.
이센트릭 신영석 사장은 “미국에선 사기, 배임, 횡령 같은 직무관련 범죄로 기업들이 매출의 6%를 잃고 있다”고 CFE(Certified Fraud Examiner)협회 2002년 연례보고서 내용을 전한다.
한국에선 데이터 분석이 많은 조사·수사기관들과 카드사, 보험사 등 경제범죄 손실 규모가 큰 금융사들이 사기 적발 솔루션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사기 적발 솔루션은 용의자들의 연관성 여부, 금전 거래 관계, 물건의 소유권 이전, 운송 수단, 전화통화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자동 분석해 준다.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관세청, 예금보험공사, 검찰청 같은 정부기관부터 삼성카드, 신한카드, 현대해상보험 같은 일반기업까지 이 기법을 쓰고 있는 곳은 알게 모르게 많다.
삼성카드, 지난해 카드범죄 5757건 적발 효과는 좋다.
삼성카드는 사기 적발 시스템을 통해 2002년 한 해에만 5757건의 신용카드 범죄를 적발했다.
돈으로 따지면 381억원에 해당한다.
이 시스템 도입 뒤 3년 동안 삼성카드가 경찰과 협조해 잡아낸 신용카드 범죄자는 500여명에 이른다.
어떤 범인은 카드 범죄를 저지르다가 현장범으로 잡히기도 했다.
삼성카드의 한 관계자는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사기 적발 시스템을 구축한 뒤 신용카드 범죄자의 범죄심리 자체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삼성카드는 더 지능화, 복잡화하는 카드 범죄를 잡기 위해 올 11월 미국 ACI의 PRM(Proactive Risk Manager)이라는 솔루션을 들여와 기존 시스템에 접목하고 있다.
수사기관도 이 시스템의 효율성에 눈뜨고 있다.
최근 서울지검은 일선 검사들을 대상으로 애널리스츠 노트북이란 영국 i2의 솔루션 교육을 실시했다.
이런 IT기술은 마약자금이나 정치자금의 돈 세탁 경로, 불법적 정보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에 효율적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수사국, 마약수사국도 이 솔루션을 애용한다.
아이러브유 바이러스가 유포됐을 때, 콩코드기 추락사건 때도 이 솔루션이 수사에 사용됐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만한 시장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 성장세는 뜻밖에 높지 않다.
이 분야 전문기업인 이센트릭의 매출 추이를 보면 1999년 5억원, 2000년 29억원, 2001년 21억원, 2002년 30억원으로 증가세가 기대보다 낮다.
기업문화의 미성숙. CFE협회 한국지부 성태경 회장(경기대 교수)은 그것을 첫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 기업에선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기업주, CEO라는 것이다.
현재 검찰 수사 중인 사건 목록만 봐도 그렇다.
SK글로벌 분식회계, 계열사 CB(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한 삼성그룹 이건희 가문의 편법적 지분 상속 논란, 5대 대기업 모두가 거론되는 정치비자금 제공 의혹…. 여기서 두 번째 원인이 발생한다.
사법부와 정부가 경제적 파장 운운하며 기업, 기업주에 관대한 처분을 내리다 보니 기업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조차 정치적인데 범죄가 제대로 차단될 수 있겠습니까?” 성 회장은 반문한다.
범죄로 발생한 손실은 은근슬쩍 국민한테 전가된다.
성 회장은 보험 사기를 예로 든다.
보험 사기를 많이 당한 보험사는 그 피해액을 보전하기 위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간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보험료를 올렸다가는 고객을 잃을 터. 보험사는 일단 부실을 쌓는다.
정부가 해결사로 나서길 바라면서.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가 터진 뒤 밝혀진 은행권 파행대출 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국내 경제범죄 적발 사업, 아직 개척단계 성 회장의 분석이다.
“소비자, 기업이 직접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모럴헤저드가 나타납니다.
피해는 결국 세금을 내는 국민이 간접적으로 받게 됩니다.
” 간접적인 피해에 대해선 다들 둔감하다.
그래도 현장에선 이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희망을 꺾지 않는다.
IT, 금융산업의 양면성 때문이다.
스마트카드, 인터넷쇼핑 같은 이기의 확산은 기술적으로 더 전문화된 범죄를 양산한다.
금융기술, 산업의 발달 역시 그렇다.
일선 조사·수사 기관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전문화된 경제범죄,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의 비중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센트릭 신영석 사장은 2005년 이후를 바라보며 사업을 전개한다.
“올해부터 이익 발생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IT, 금융기술이 더 발달하고 이를 방지하려는 정부 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하면 시장은 연 1천억원 단위로 늘어나게 될 겁니다.
” 시장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시장 규율이 바로 설수록, 기업 손실에 대한 시장의 민감성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한국도 언젠가는 규율이 제대로 선 선진시장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젊은 기업인들은 아직 개척단계인 경제범죄 적발 사업의 미래에 자신의 시간과 자산을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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