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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한나라당과 재벌 ‘짝자꿍’
[포커스] 한나라당과 재벌 ‘짝자꿍’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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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집단소송제와 출자규제 연계 주장…진짜 속내는 계좌추적권 폐지인 듯 한나라당이 이번 국회 회기에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을 통과시키는 대신 출자총액규제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정해 공정거래위원회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김성식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13일 “증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져 투자자들이 기업투자의 적정성 여부를 따질 수 있게 되는 만큼, 기업의 건전한 투자까지 가로막고 국제적으로 유례가 없는 출자규제는 없애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회계제도 개혁으로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면 결합재무제표와 연계해 회계장부를 통해서도 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를 포착할 수 있다”며 “계좌추적권 시한을 재연장해 개별기업에 대한 규제를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13일 MBC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집단소송제와 출자총액제한제는 목적과 기능이 전혀 다르다”며 “증권 집단소송제가 도입돼도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공정위와 참여연대는 SK 분식회계를 계기로 기업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회계제도 개혁을 재벌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막기 위한 계좌추적권과 연계시키는 것도 타당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한나라당의 방침에 대해 즉각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은 결국 재벌 비호당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만약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조건으로 한다면 차라리 빈껍데기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2000년 말부터 참여연대의 주도로 진행되어 온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입법운동은 지난 7월2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발행주식 수의 0.01%를 확보하거나, 시가총액 기준 1억원어치의 지분만 확보하면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2004년 7월부터, 2조원 미만 기업은 2005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증권 집단소송제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런데 불과 며칠 후인 7월30일 여야정책협의회는 이를 번복해 2005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의 법 적용을 제외 또는 유보하고, 소제기 요건 중 ‘소액주주 50인 이상이 보유한 주식취득가액 1억원 이상’ 규정은 추후 검토하기로 합의하면서 원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게다가 뒤늦게 자민련 김학원 의원이 ‘법원의 담보제공 명령권 조항 추가’를 주장하고, 이를 근거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처리를 늦추면서, 법사위 심사소위 합의안 통과가 세 차례나 지연됐다.
법안심사소위 합의안 제출 이후 재계의 치열한 로비와 여야 정책위 의장들의 법안수정 요구로 인해 입법심의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연내 입법이 무산된다면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의 시행시기가 1년 더 미뤄지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16대 국회의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어 제도 도입 자체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야기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증권관련집단소송법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연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번 회기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당장 손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을 손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여론의 비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한 제도 변경은 내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공략할 가능성이 많다.
그보다 한나라당이 이번 연계방침을 통해 실질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계좌추적권 폐지’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나라당에서 이미 “계좌추적권 시한 연장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마당이어서 오히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무기로 계좌추적권 폐지와 ‘거래’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미 껍데기인 집단소송제보다 계좌추적권을 폐지하는 것이 한나라당에겐 훨씬 실효성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연계방침을 발표한 것도 이런 거래를 염두에 둔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공정위에게 계좌추적권은 핵심적인 권한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공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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