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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읽기] 박정희정권의 공과
[경제읽기] 박정희정권의 공과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 승인 2003.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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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 그 주된 이유다.
과연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로 박정희정권의 경제업적은 지나치게 과대 평가된 면이 적지 않다.
군사정권이 1961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무려 30년 이상이나 지속된 데다,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던 언론이 박정희정권의 업적을 끊임없이 찬양하면서 국민들을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군사정권 아래에서 오랜 세월 영화를 누렸던 경제관료들의 영웅담이 가세해, 군중세뇌로 오도된 신화만이 남게 된 것이다.
박정희정권 경제업적의 첫 번째 신화는 뭐니뭐니 해도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시동이 걸려 있었다.
성장률이 57년에 7.6%, 58년 5.5%, 59년 3.9%를 기록하여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이미 들어서 있던 것이다.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릿수로 안정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되던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4·19혁명으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군사정권이 선전했던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올랐다.
또한 물가 역시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완벽하게 은폐되고 말았다.
두 번째 신화는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개발계획의 역사는 57년 4월 ‘전원개발 5개년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탄전종합개발 10개년계획’과 ‘재정금융안정계획’이 그 뒤를 잇는다.
중장기 경제개발계획도 이미 58년에 수립에 들어갔고, 2년 뒤에는 ‘경제개발 3개년계획’을 성안하였다.
민주당정권은 이것을 토대로 61년에 ‘5개년 개발계획’(62~66년)을 수립하여 공표했다.
불균형성장전략이 도입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사실 민주당정권의 것을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57년부터 갑자기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우리 정부는 부족한 식량과 재정 등을 미국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 미국 정부가 원조중단을 통보하였고, 우리 정부로서는 자력갱생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56년에는 수출장려보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수출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각종 산업정책 및 경제정책에도 눈을 돌렸다.
원조에만 의존하다가 자력갱생에 나서자,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소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 번째 신화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에는 오류가 없었던 것처럼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이와 사뭇 다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발산업 육성을 언명하면 몇 년 안에 가발산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합판산업 육성이나 섬유산업 육성을 외치면 그 산업들이 온통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60년대 후반, 차관산업 육성에 나섰을 때는 차관도입으로 설립한 기업들이 대부분 3년 안에 망했고, 결국 국민경제 전체가 심각하게 흔들려야 했다.
70년대 후반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힘차게 부르짖었는데, 이것은 박정희 정권의 온갖 시혜를 입었던 고위관료 출신조차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중화학공업의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엄청난 국민경제적 자원이 ‘산업합리화조치’라는 미명 하에 여러 차례 퍼부어져야만 했다.
그렇다고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업적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며, 정책실패도 있었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할 따름이다.
또한 이런 눈부신 경제업적 뒤에는 물가폭등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고, 금융기관 활동 정지, 증권파동, 화폐개혁 등 작은 정책실패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말이 훌륭하면 기수의 실력이 좀 뒤떨어져도 잘 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의 뛰어난 능력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잠재력이 그만큼 뛰어났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정권의 잦은 정책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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