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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외국자본 밀물, 금융주권 위태
[포커스] 외국자본 밀물, 금융주권 위태
  • 박현/ <한겨레> 경제부 기
  • 승인 2003.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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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 급증, 점유율 심각한 수준…순기능보다 부작용 커 대응책 마련 서둘러야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장악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과 투신사가 외국 자본에 잇따라 넘어가고,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금융계에서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계의 주요 인사들은 국내은행 및 자본시장을 외국계에 송두리째 넘겨줄 경우 나타날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은 크게 은행·증권·투신·보험사에 대한 직접 투자와 주식시장을 통한 포트폴리오 투자 등 두 가지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외국인 투자촉진법의 제정, 외국인의 국내기업 인수합병(M&A) 전면 허용, 주식·채권시장 개방 확대 등의 정부 정책을 계기로 투자 규모를 급격히 늘려 왔다.


우선 직접 투자의 경우 은행권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는 1996년 말 19억달러에서 2002년 말에는 104억달러로 급증했다.
현재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탈 지분율 48.5%), 외환은행(론스타 51%), 한미은행(칼라일-제이피모건 36.6%) 등의 경영권이 외국계에 넘어간 상태이며, 하나은행(알리안츠 8.16%), 국민은행(뱅크오브뉴욕 9.4%) 등에는 외국계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제일·외환·한미은행과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총자산은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은행 총자산의 26.7%에 이른 상태다.



주요기업 외국인 지분율 50%~70%대

증권·투신 등 자본시장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직접 투자도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브릿지·서울 등 6개 증권사가 외국계에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도이치증권 등 4개 현지법인과 UBS증권 등 16개 외국계 증권사 지점이 국내에 진출해 있다.
이들의 국내 증권시장 점유율은 주식위탁거래대금 기준으로 지난해 말 현재 14.5% 수준이다.
투신사의 경우에는 최근 미국의 금융그룹인 푸르덴셜이 업계 4위인 현투증권을 인수하면서 외국계 점유율이 급증했다.
100% 순수 외국계 자본으로 구성된 투신사로는 슈로더·도이치 등 4곳이며 외국계가 20~60%의 지분을 보유한 합작 투신사도 신한BNP파리바 등 7곳에 이른다.
외국계 투신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수탁고 기준으로 30% 수준이다.


보험업의 경우 외국계 생보사 11개, 손보사 12개가 국내에 진출해 있다.
외국계 생보사의 국내 보험시장 점유율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지난해 말 현재 10.5%를 기록하고 있으며, 손보사는 2% 수준이다.


포트폴리오 투자에서는 외국 자본이 훨씬 더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시가총액은 지난 97년 10조원대에서 올해 10월 말 현재 133조원대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의 비중은 97년 14.6%에서 올해 10월 현재 40.1%로 늘어났다.
특히 삼성전자·국민은행 등 주요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50~70%대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은행권의 경우 은행산업 내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고,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관치금융의 폐해가 감소될 수 있다.
증권·투신의 경우에는 펀더멘털(기초여건)을 중시하는 투자패턴이 정착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외국 자본의 진출 양상이 이런 긍정적 효과만을 기대하기에는 과도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멕시코 등 주요국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진출 정도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은행시장 개방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1999년 현재 외국인 소유 은행의 자산비중은 미국, 일본, 독일이 각각 5%, 6%, 4%에 불과하며, 태국·말레이시아·멕시코도 각각 7%, 18%, 20%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50%다.
금융 중심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비교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우리나라(26.7%)의 은행시장 개방 정도가 매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증권시장의 경우 각국의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과 대만이 각각 19%, 20% 수준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10%, 36% 수준이다.
외국 자본 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 자본 진출에 따른 부정적 효과로 무엇보다도 위기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는다.
은행은 지급결제 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위기 발생시 시스템적 리스크가 매우 크게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요 은행이 외국계에 넘어갈 경우 전체 금융시스템 위기 해소나 국가 금융정책과의 조화를 위한 금융기관 간 협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강종만 금융연구원 박사는 “금융시장 불안정시 외국계 은행은 단기적 이익에 치중하는 독자적 행동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카드채 해결 과정과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한도설정 방침에 대해 외국계가 독자적으로 행동했던 사례에서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위기가 발생할 경우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철수할 경우 나타날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외국 자본이 주식시장에서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까지 교란된다.
이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가 경험한 바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견딜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그 어떤 나라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자금공급 위축 우려, 대외 변수로 인한 국내 주식시장 변동성의 일상화,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 국부 유출 등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최근 금융계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국계 자본의 국내시장 진출과 잠식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며 “외국기관이 들어와서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시장 자체를 주도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신용 및 외환정책이라는 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거인들과 싸우는데 똑같은 조건으로 싸우는 게 바람직한지, 금융산업만 무조건 개방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 컨소시엄·연기금 활용 등 모색해야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들이 주도했던 프라이빗에쿼티펀드시장에서도 국내기업들이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프라이빗에쿼티펀드는 저평가된 기업이나 상품을 매수한 뒤 가치를 높여 되팔아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로 벤처 및 전통기업, 구조조정대상, 인수합병, 부동산, 부실채권 등 투자처에 따라 인수합병펀드, 벌처펀드, 바이아웃펀드 등으로 불린다.
론스타와 뉴브리지캐피털은 국내시장에서 은행뿐만 아니라 부동산, 기업 등을 대상으로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과실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외국계가 구조조정시장이나 자산운용시장을 주도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셋이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부의 정책을 지켜보겠다”고만 대답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도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년에도 우리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는 인수합병”이라며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이나 바이아웃(Buyout) 등과 관련한 전문인력들이 양성된 만큼 이제는 우리가 주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현재 부동자금이 400조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누군가 물꼬를 틀 경우 자금이 몰려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국내 거대은행이나 투신·증권사를 인수할 주체가 외국 자본말고는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런 논의가 우량 금융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재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최근 들어 금융회사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이나 연기금 활용, 국민주 형태의 민영화 방안 등이 대응책으로 논의되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 소유 은행의 민영화 계획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은행지분을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에게 이전한 뒤 나중에 전략적 기관투자가에게 매각하는 방안 △특별펀드 조성 후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승유 행장도 LG카드 등의 인수 문제와 관련해 “국내금융산업의 리더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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