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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중소 ERP시장 토종 풍전등화
[비즈니스] 중소 ERP시장 토종 풍전등화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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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오라클에 이어 MS 국내 공략 시동…내년 대규모 물량공세 전망, 업계 초긴장 국내 전사적자원관리(ERP)솔루션 시장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 ‘토종 파워’가 흔들리고 있다.
외국산 제품들의 독주 속에서도 국산의 자존심을 지켜 온 중소·중견기업(SMB)용 ERP솔루션시장에 대형 외국계 기업들이 하나 둘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가장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다.
SAP와 오라클 등 대기업 ERP시장을 독식하던 업체들이 점차 SMB시장으로 영업망을 확장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MS가 자사의 ERP솔루션을 앞세워 국내 SMB시장에 직접 진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MS의 국내 협력사로 닷넷(.net) 기반의 ERP솔루션을 공급해 온 중소업체들은 한순간에 ‘밥그릇’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쯤되면 촉각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ERP시장의 판도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국내시장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ERP솔루션시장은 매출 규모 2천억원 이상의 대기업용과 2천억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SMB)용으로 나뉜다.
시장조사기관인 KRG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시장은 ERP 도입률이 70%를 넘어서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반면, 중소·중견기업은 40%대를 밑도는 도입률을 보이며 풍부한 시장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의 초점도 대기업에서 중소시장으로 옮겨 가는 추세다.
대기업시장 포화, 중소기업시장에 눈돌려 국내 대기업시장은 SAP와 오라클의 양대 체제가 굳건하다.
두 업체의 고객 점유율만 따져도 80%를 웃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들에 눈을 돌리면 사정이 다르다.
매출액 500억~2천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시장에선 이들 글로벌기업들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지만, 5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시장에선 국내업체들의 점유율이 88%에 이른다.
이 중소·중견기업시장의 경우 올해 1500억원, 내년에는 1600억원을 넘어서며 전체 ERP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전망이다.
외국업체들이 성숙기에 들어선 대기업시장 대신 SMB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MS로선 독과점 체제가 굳어진 대기업시장보다는 잠재력이 풍부한 SMB시장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 들어 SAP와 오라클이 잇따라 SMB용 ERP솔루션을 내놓고 시장 공략에 나선 터라, 마냥 관망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MS는 일단 ‘우회 진출’이란 모양새를 갖췄다.
MS는 지난 11월5일, 글로벌 파트너사인 ESG의 한국법인 ESG코리아를 통해 자사의 SMB용 ERP솔루션 ‘내비전’과 ‘아삽타’ 두 제품을 선보였다.
ESG코리아는 MS 본사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고 두 제품을 공급하므로 외형상으로는 MS의 한국지사인 한국MS와는 무관하지만, 실제로는 한국MS를 통해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인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ESG코리아의 행보도 빨라졌다.
지난 11월 초 영화회계법인과 ERP컨설팅 및 영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한 데 이어, 11월18일에는 아주대학교 산업대학원 내에 MS ERP솔루션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SAP와 오라클이 각각 국민대와 건국대 대학원에 ERP교육과정을 개설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ESG코리아는 아주대에 교육과정을 개설함으로써 제품 이미지를 제고하고 장기적으로 제품 구매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국MS는 아직 국내 ERP시장 진출에 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본사로부터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전달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MS가 내년부터 SMB용 ERP시장에 직접 나설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MS의 파트너사 담당 이상욱 차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내년 7월께면 파트너사를 확정하고 전담 사업부를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7월은 MS의 2005년 회계년도가 시작하는 시점으로, 한국MS는 매년 회계년도가 시작되는 7월 초에 국내 주요 솔루션 파트너들을 확정 발표해 왔다.
한국MS는 우선 3~5개의 국내 제휴업체를 선정해 SMB용 ERP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한국MS와 제휴관계를 맺어 온 나머지 국내 중소 ERP업체들은 한순간에 MS와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된다.
이를 의식한 듯 한국MS도 사업 진행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런 태도다.
이상욱 차장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제휴업체 선정 작업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기존 업체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우선은 역량 있는 일부 업체와 제휴를 맺겠지만, 기존 국내 솔루션 협력사를 위한 프로그램은 별도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돈독한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한국MS쪽은 자사의 ERP솔루션이 기존 협력사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MS의 ERP제품은 완제품이라기보다는, 국내 ERP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ERP환경을 제공하는 ‘플랫폼’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업체들이 MS의 ERP제품에 자사의 솔루션을 결합해 쓴다면 제품 개발과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MS쪽은 말한다.
이상욱 차장은 “SAP나 오라클 등 대형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선 MS의 ERP제품을 도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국내 제휴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ERP업계의 반응은 이런 MS의 기대를 빗나가는 듯하다.
MS의 시장 진출이 장기적으로는 국내 ERP업체들을 고사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이다.
한국MS의 솔루션 협력사인 국내 ERP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한국MS의 구체적인 시장 진출 계획이 나오지 않은 터라,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면서도 “경쟁 제품을 고사시키기 위해 물량공세를 펴 온 MS의 기존 전략을 감안할 때, MS의 ERP제품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업계, 서비스 차별화·해외시장 개척해야 MS는 ERP사업 진출을 위해 관련 업체를 인수하는 데 3조원을 이미 투자했으며, ERP 관련 기술개발에만 앞으로 10년 동안 6조2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다른 국내 ERP업체 사장은 “운영체제와 사무용 소프트웨어시장을 평정한 MS로선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며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핵심인 ERP시장에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국MS쪽도 “앞으로는 고객이 MS와 SAP를 두고 선택하는 때가 올 것”이라며 자사 제품이 통합 플랫폼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시사했다.
오히려 업계에선 이번 MS의 시장진출을 계기로 그동안 혼탁했던 시장을 정비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힘을 충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01년 산업자원부가 국내 중소기업 정보화사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 3만개 IT화사업’을 시작하면서, 국내 중소기업 ERP시장도 활력을 맞았다.
하지만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채산성이 떨어지고 덤핑수주와 허위계약이 난립하는 등 부작용도 커졌다.
따라서 국내업체들도 이번 기회에 관행처럼 유지된 출혈경쟁을 멈추고, 제품의 품질 향상과 서비스 차별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국내업체 가운데는 한국하이네트가 지난 2001년 12월에 베트남에 50만달러 규모의 ERP솔루션을 공급한 바 있다.
이 밖에 영림원소프트랩과 더존다스, 소프트파워와 코인텍 등이 일본과 중국 진출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국산 제품은 외국산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고객의 인식도 걸림돌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수한 고객 구축사례를 많이 발굴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김종호 영림원소프트랩 상무는 “값이 싸고 성능이 좋다고 아무리 말로 외쳐 봐야 소용 없다”며 “실제로 제품을 구축해 잘 쓰는 사례를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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