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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공룡 “공공의 적은 정부”
2. 두 공룡 “공공의 적은 정부”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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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 각종 제약…“소비자 편의 불구 기술발전 저해” 한목소리 KT에게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야심찬 서비스가 하나 있다.
하나의 휴대전화로 유선망과 이동통신망을 모두 이용하는 ‘원폰’ 서비스다.
휴대전화에 블루투스칩을 내장하고 각 가정에 블루투스 액세스포인트를 설치해, 휴대전화를 걸게 되면 실내에서는 유선전화망인 PSTN(공중통신망)을 이용하고, 실외에서는 다른 휴대전화처럼 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똑같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지만 실내에서는 블루투스를 통해 유선전화망을 쓰기 때문에 집 안에서 쓰는 전화에 대해선 값싼 시내전화 요금만 내면 된다.
이른바 하나의 단말기로 유·무선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는 통합 서비스의 한 형태인 것이다.
이 서비스가 알려지자 정통부는 고민에 빠졌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은 KT가 시내전화망을 이용한 결합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시내전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가 그 힘을 다른 시장으로 전이시키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다.
원폰 서비스는 바로 그 조항에 저촉되는 서비스다.
시내전화와 이동통신을 하나의 휴대전화로 이용하도록 해 이용자에게 요금인하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놓기만 하면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SK텔레콤을 비롯한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반대도 거세다.
때문에 정통부는 원폰 서비스를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다.
유무선 결합 신규 서비스 번번이 좌절 그러나 KT가 반발하고 나섰다.
유무선 통합 서비스는 시대의 대세인데 언제까지 결합 서비스를 금지할 것이냐는 게 골자였다.
실제로 원폰 서비스는 해외에서 블루폰 등의 이름으로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게다가 KT는 서비스 출시가 여의치 않자 “원폰 서비스는 유무선 통합 서비스가 아니라 단지 다기능 폰을 판매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는 게 아니라, 2가지 망을 이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파는 것이라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KT는 이런 논리를 앞세워 내년 초에 원폰 판매를 강행할 예정이다.
다기능 폰을 파는 데 정부 허가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KT와 SK텔레콤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정부라는 얘기는 이 때문에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KT의 시내전화망과 SK텔레콤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결합 서비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KT와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이 너무 강해져 더 이상의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이들이 가진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다른 통신시장까지 평정하면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발전이 이뤄지자 판단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법이 사업자의 독주는 막아야 하겠지만, 소비자에게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발전까지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종훈 통신정책팀장은 “여러 상품을 단순히 묶어 파는 번들 상품은 계속 금지해야 하지만 네트워크의 발전이나 단말기의 발전 등 기술발전으로 생기는 결합 상품은 궁극적으로 풀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원폰 서비스도 단말기 기술발전에 의한 단말기 컨버전스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막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SK텔레콤 역시 정부의 규제로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
우선 이동통신을 이용한 결합 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라 요금정책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SK텔레콤의 요금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꼴찌 사업자인 LG텔레콤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풀어 주면 SK텔레콤이 요금을 낮춰 시장 싹쓸이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LG텔레콤은 SK텔레콤과 요금 경쟁까지 하다가 완전히 시장에서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하는 수 없이 정부는 LG텔레콤을 살리기 위해 SK텔레콤이 마음대로 요금을 내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내년에 실시하는 번호이동성 제도도 순차 적용으로 인해 SK텔레콤은 1년 동안 손이 묶인다.
따라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KT와 SK텔레콤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는 정부가 얼마나 규제를 풀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두 사업자의 성장 열쇠, 정부 손 안에 규제를 휘두르는 정부 역시 속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두 사업자의 독주를 막자니,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막는 측면이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발전으로 상상치 못했던 서비스까지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KT가 민영화되면서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사업권이라는 패를 들고 사업자들을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카드도 잘 먹히지 않는다.
이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은 없다는 사실을 통신사업자들도 깨닫고 무작정 사업권에 덤비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큰 사업을 할 만한 주체는 이들밖에 없다는 사실도 정부의 칼끝을 무디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선배들은 통신3강이라는 명쾌한 구도를 선호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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