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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메모] 검은돈의 비경제
[에디터메모] 검은돈의 비경제
  • 이코노미21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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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가방, 사과상자도 모자라 이젠 트럭떼기까지.” 설마했던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오히려 경영에 차질이 있다며 수사를 빨리 마무리지어 달라고 합니다.
왜 재벌기업들이 정치권에 뒷돈을 줬는지,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면 적반하장입니다.
비정상적인 경영를 바로잡는 일은 경제를 살리는 일이지 결코 죽이는 일이 아닙니다.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업체인 에퀴터블에서 최근 흥미 있는 자료를 내놨습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을 적용해 본 결과 SK그룹은 합법적으로 75억원이라는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굳이 사과박스에 현금을 채우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인당 2억5천만원까지 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SK그룹 계열사들의 한도액 합계가 75억원이 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왜 SK그룹은 굳이 음성적인 방법을 택해야만 했을까요? 우선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할 때 생기는 부담감이 컸을 겁니다.
지지정당이 집권하지 못했을 경우 예상되는 보복이 두려웠겠죠. 집권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정권의 지원을 받을 경우 특혜 시비에 휘말리기 쉽다는 판단도 했을 겁니다.
통신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SK로서는 정부가 막강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었겠죠. 다른 재벌기업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정부의 입김이 센 기간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재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줬다고 강변하지만 직간접적으로 그 대가가 돌아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문제는 이 검은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겁니다.
거짓말해 본 사람은 압니다.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회계부정이 이뤄졌을 것이고, 그 부담은 다른 기업이나 개인에게 전가됐을 겁니다.
하청업체는 받아야 할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겁니다.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주주들의 피해도 당연합니다.
부당하게 부담을 떠안은 기업이나 개인은 연쇄적인 부정을 저질러야 했을 겁니다.
검은돈은 연쇄 효과를 일으켜 수십배 수백배 이상의 비용을 치르게 합니다.
공정한 경쟁을 한 기업은 탈락하고 부당한 행위를 한 기업은 성공하게 됩니다.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들의 반시장적 행태를 어찌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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