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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재테크 강의실 직장인·주부 문전성시
[현장리포트] 재테크 강의실 직장인·주부 문전성시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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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한마디 한마디 귀 ‘쫑긋’ 12월9일 저녁 6시45분 서울 신촌에 있는 한겨레문화센터. 저녁 7시에 재테크 강의가 시작될 예정인데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고작 8명.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에 8명밖에 없으니 실내가 썰렁하다.
이 때문인지 “지난번 강의에는 자리가 꽉 찼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냥 구질구질하게 살아라'의 저자 심영철 모네타 재테크팀장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2명이 더 들어와 10명을 간신히 채웠다.
최근 인터넷과 서점가를 뒤흔들고 있는 “10억 모으기” 열풍은 과연 지나가는 바람이었던가? 이렇게 썰렁하게 강의는 시작됐다.
그러나 빈자리에 대한 걱정은 단 15분 만에 사라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두 명씩 머쓱하게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자리가 가득 채워졌다.
직장인들이라서 제시간에 맞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역시 ‘10억 열풍’은 아직 살아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강사인 심 팀장도 “최근에는 업체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곳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며 “아예 회사차원에서 직원들에게 재테크 강의를 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한다.
제일 먼저 와서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강서구 방화동의 조아무개(32) 주부에게 강의 시작 전 슬쩍 질문을 던졌다.
“평소에 재테크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요?” “결혼 5년 만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는데 중도금 납입을 걱정하다 재테크 강좌를 찾게 됐어요. 특별히 재테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하도 재테크를 강조하다 보니 아무래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한 번쯤 강의를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집을 가진 사람들 얘기 아니에요? 아직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막연한 위기감에 주부들 공부 시작 과거에는 주부들이 꾸준히 통장에 돈을 모으면 언젠가는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남을 중심으로 한동안 불어닥쳤던 부동산 열기는 이제 주부들로 하여금 막연한 위압감을 갖게 하고 있었다.
조씨도 재취업을 생각해 봤지만 임시직으로 일을 한다면 급여가 정규직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재테크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여기저기서 ‘10억’을 외치는 소리에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한몫 했다.
최근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30대 초반의 직장인과 주부들 사이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심 팀장은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먼 곳에서 찾아온 분들이 많다”며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보편화된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재테크 강좌가 열리는 이 강의실은 비교적 작은 규모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직장인이 수강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오늘은 재테크의 하이라이트인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수강생들이 펜을 집어들고 강사인 심영철 팀장을 주시한다.
강의는 3회에 걸쳐서 이뤄졌다.
이미 진행 된 첫 번째와 두 번째 강의가 주로 금융상품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세 번째 강의는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로 진행됐다.
물론 강의에는 상황별 투자전략과 청약통장 활용법 등 아파트 청약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은 가볍게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의는 의외로 진지하게 진행됐다.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들을 살펴보니 여성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게다가 질문도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아무래도 재테크는 여성들이 관심을 많이 보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50분 간의 1교시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됐다.
최근 일고 있는 ‘10억 열풍’에 대해 목동에서 온 김아무개(50) 주부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한참 망설이다 말문을 연 김씨는 “우연한 계기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년 전 별 생각 없이 공덕동 삼성래미안 아파트에 분양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된 것이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1억8천만원에 24평짜리 아파트를 분양을 받았는데 지금 3억원 이상을 호가하니 순식간에 1억 이상을 남긴 셈이다.
이 일로 김씨는 본격적으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주식 강의와 재테크 강의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공부를 해 나갔다.
그러면서 김씨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은 10억원이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김씨의 열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제지 기자라고 하자 어디서 가져왔는지 신문에 난 땅 분양광고를 보여 주면서 “이곳 땅을 사는 것은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10억원 만들기 열풍 들불처럼 번져 10분의 휴식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투자유망 지역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자 수강생들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
보험회사에 근무한다는 한아무개(31)씨는 회사 동료를 데리고 올 정도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강의시간 중에 그에게 몇가지를 물어봤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직장문제로 상경하면서 집을 팔았는데 막상 서울에 오니 그 돈으로는 전세 아파트밖에 마련할 수 없어 재테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한씨는 “재테크 책을 부지런히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것은 천기누설인데…” 강사가 말끝을 흐리자 수강생들의 눈길이 강사에게 집중된다.
심 팀장은 날카로운 눈빛을 띄며 얘기를 이어간다.
“영종도와 송도 근처의 월곶이 앞으로 뜰 겁니다.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고 9호선이 개통되는 것이 상당한 호재거든요. 다만 아파트 단지 중간에 모텔이 들어서 있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죠.” 순간 수강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무래도 아파트 시세를 전망하는 데는 장기적인 안목도 중요하지만 주변환경도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이렇듯 2교시는 장기적인 투자가치가 있는 곳을 미리 알려 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1교시에 비해 조금 구체적으로 투자 유망지역 등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수강생들의 집중도는 한층 높아졌다.
모두가 강사의 말 한마디에, 때론 심각하게 때론 미소를 머금으며 학창시절에조차 볼 수 없었던 진지함을 띄었다.
2시간에 걸친 강의를 마치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이호석(32)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미혼이라 작은 돈을 밑천으로 집을 장만하겠다는 이씨는 “10억 열풍으로 인해 주위에서 돈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다”고 운을 뗀 뒤 “과거에는 부동산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젠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수강생의 상당수는 “재테크 공부를 게을리하면 남들에게 뭔가 뒤처지는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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