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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LG카드 대주주는 무죄? 유죄?
[포커스] LG카드 대주주는 무죄? 유죄?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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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업 포기로 지분 채권단 이전…LG증권에 불똥, 직원·소액주주 반발 ‘LG투자증권 전직원 및 10만 소액주주 연계투쟁’ 결의대회가 열린 12월17일 저녁7시. KBS 88체육관에 마련된 연단에서 소액주주 남정자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LG라는 브랜드 때문에 LG투자증권 주식을 샀어요. LG건설에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해서, 증권주가 10년 전엔 5만원 넘게 갔던 기억을 되살려 애들 학자금이나 마련할까 하는 생각에 샀어요.”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진다.
“카드 사태가 왜 증권사에 영향을 미치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제가 가진 지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증권사 직원 여러분, 다른 소액주주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 이날 LG그룹은 금융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LG그룹과 채권은행단은 LG그룹이 카드와 투자증권을 포함한 금융업 전체를 포기하고 카드에 대한 자본확충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그룹 계열사들이 카드에 8천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단, 유동성 지원에 대해선 “연내에 LG카드를 계열 분리하고 LG카드를 인수할 금융사가 결정된 뒤”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틀 뒤인 19일, 공정거래위는 LG그룹 계열사들이 LG카드에 8천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한 데 대해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비금융 지주회사나 자회사가 금융계열사 지분을 취득하는 것과 달리, 사모사채나 기업어음을 매입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LG 관계자는 “인수회사가 결정되고 유동성이 지원되면 LG카드 신용이 높아져 회사채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며 “회수하지 못할 채권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카드 사태는 구씨 가문이 책임져라? 이날, LG투자증권은 이사회를 열어, 보유하고 있는 LG카드 주식 8.09%의 매각을 카드채권단에 위임하기로 결의했다.
LG카드와 증권을 매각하기 전에 개인대주주와 계열사 보유지분을 채권단에 매각 위임하기로 카드채권단과 LG가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LG카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LG계열사는 증권뿐이다.
LG가 금융사업 포기선언을 한 뒤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됐다.
LG지주회사와 구본무 회장 등 대주주들의 지분이 LG카드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LG투자증권은 졸지에 단일주주로선 최고 지분을 가진 LG카드의 대주주가 되어 버렸다.
LG카드 지분은 구본무 회장 등 구씨 가문의 개인대주주가 15.9%, LG증권이 8.1%를 가지고 있다.
LG투자증권 노조와 소액주주들은 구씨 가문이 사재를 출연해 증권이 떠안은 카드 지분을 가져가라고 요구한다.
LG카드의 기업 지배권은 구씨 가문이 행사했는데 왜 책임은 증권이 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투쟁결의대회에 참가한 안양의 한 소액주주는 “그룹 지배구조야 어찌됐건 상관없다”며 “우량회사였던 LG증권을 원래 가치대로만 돌려놔 달라”고 말했다.
LG증권 김붕락 노조위원장은 “구씨 가문이 LG카드 상장으로 엄청난 차익을 내놓고는 손실이 나자 지주회사로 빗장을 걸고 자기들의 손실만 줄였다”고 비난했다.
그는 “LG그룹이 150억원의 정치 비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했는지, 기업가치를 훼손해 주주가치를 부당하게 가로채지는 않았는지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의 금융사업 포기선언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주회사 전환으로 발생한 LG의 지배구조 변화를 봐야 한다.
지난해부터 LG는 고 구인회 창업주의 장손인 구본무 회장쪽 회사와, 창업주의 방계 혈족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일가의 회사로 계열분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LG는 구본무 회장쪽이 지배권을 가지는 전자, 화학, 생활건강, 텔레콤, 칼텍스정유, 데이콤 등 12개 계열사(계열사의 자회사 제외) 지분을 매입했다.
대신 방계 혈족이 맡은 LG전선쪽 회사, 즉 전선, 극동도시가스, 칼텍스가스, 니꼬동제련 주식은 팔았다.
LG전선쪽 회사들은 반대로 자사 주식들을 사들이고 (주)LG쪽 회사의 지분은 팔았다.
현행 법상 대기업 지주회사가 보유할 수 없는 금융회사들의 지분은 개인대주주와 LG투자증권, 2개의 축을 중심으로 모았다.
구 회장측은 LG증권 지분의 4.4%를 구씨 가문이 보유하고 16.8%를 전자, 상사, 건설이 보유하는 방식으로 금융부문에 대한 지배구조를 유지했다.
올해 들어 구씨 가문의 LG카드 지분 거래 상황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7월의 유상증자를 제외하면 구인회 창업주의 직계 자손들은 샀고, 방계 혈족들은 팔았다.
직계 자손 중 구본무 회장만 79만주를 매도했다.
반면 그의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은 135만6880주를 샀다.
반대로 방계 혈족들은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또 11월 초부터 LG카드 현금서비스 중단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카드 지분을 대량 매각했다.
지주회사 덕에 계열사 전이 막았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들의 대량 매도가 LG카드 현금서비스 중단 사태 직전에 집중된 것을 보고 특수관계인들이 미공개 내부거래를 알고 미리 판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LG측은 지분 정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구씨 가문의 전체 지분에 거의 변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LG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구씨 일가가 보유한 카드 지분은 총 16%로 현재상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12월19일 기준으로 LG가 밝힌 구씨 일가의 카드 지분은 15.86%다.
방계 혈족이 판 지분을 직계 혈족이 거의 다 사들였다는 뜻이다.
구씨 가문이 보유한 카드 지분은 전량 1원에 카드 채권단에 넘어간다.
결국 LG카드 경영실패로 인한 손실은 직계 자손만 진 셈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이것이야말로 지주회사 시스템의 장점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강조한다.
한국 재벌 시스템의 위기는 한 계열사의 위험을 다른 계열사가 보전해 줌으로써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LG가 지주회사로 개편되고 그 외 계열사가 분리되어 나가면서, LG카드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LG투자증권 직원과 소액주주들은 억울하단다.
대주주들은 LG카드 지분만큼 ‘유한’ 책임을 지고 손을 뗐는데, 증권은 카드와 함께 운명공동체로 묶이면서 졸지에 카드쪽의 부실을 ‘무한’ 책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원과 소액주주들은 “카드의 부실은 구씨 일가가 가져가고 증권은 원래 가치를 되찾아 정상가격으로 새 사주를 찾게 하라”고 요구한다.
LG증권의 우리사주조합은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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